brunch

봄맞이 청소를 하며

by ri

찬 공기에 손과 코끝이 시리고 몸을 잔뜩 웅크려야 했던 겨울이 가고 어느새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이 되었다. 아직 2025년이란 숫자에 적응도 못했는데 그러고도 벌써 4월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가볍고 얇아진 옷과 부쩍 온화한 날씨,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꽃봉오리를 보며 계절의 변화를 몸소 만끽해 본다.


해가 길어지면서 날도 따뜻해지고 활동량이 늘다 보니 저번 주에는 겨우내 생각만 하고는 쉽사리 하지 못 했던 냉장고 청소를 해치웠다. 평소 청소하기를 좋아하는 편인데도 냉장고 청소는 언제 했는지조차 가물가물했는데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는 마음으로 청소를 감행했다.


먼저 청소 전문가들의 조언을 얻고자 냉장고 청소에 대해 검색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들이 있었지만 그중에 미지근한 물에 식초를 섞는 청소법을 선택했다. 가장 간단하고도 위생적일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언뜻 집에 항상 비축해 두는 베이킹소다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청소 후 베이킹소다의 알갱이가 남을 수 있어 추천하지 않는다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마침 마트에서 식초도 산 지 얼마 안 됐겠다, 힘차게 냉장고 문을 열어젖혔다. 우선은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잘 먹다가 질려서 손도 안 데는 식재료를 버렸다. 그러자 꽉 차 보였던 냉장고 속이 금방 정리되어 보였다. 다음으로는 배달이나 포장하면서 받았던 작은 케첩이나 소스류의 유통기한을 확인한 뒤 한 곳에 모아두었다. 작지만 여러 곳에 나뒹굴면 그것처럼 꼴 보기 싫은 것도 없다.


그렇게 버릴 것들을 버리면서 1차 정리를 마치고는 냉장고 안을 깨끗이 비웠다. 그러고는 냉장고 선반을 분리해 주방세제로 거품 내 뽀득뽀득 세척했다. 물기를 말리는 동안 미지근한 물에 식초를 풀었다. 몇 번 쪼르르 식초를 붓자 시큼한 냄새가 퍼져나갔다. 참고한 영상에서는 1:1 비율로 하라고 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식초를 많이 안 써도 될 것 같아서 식초를 조금만 넣어서 식초물을 만들었다.


깨끗한 행주에 식초물을 충분히 적신 뒤 새하얀 냉장고 안 구석구석을 닦았다. 모든 먼지가 그렇듯 눈으로 볼 땐 깨끗해 보이지만 막상 젖은 수건이나 물티슈로 닦아내면 먼지가 묻어나듯이 소량의 먼지가 행주에 묻어났다. 평소에 냉장고 청소를 자주 하지 않기도 했고 그간 관리하지 못한 죄책감 같은 것도 없지 않았어서 한 곳을 서너 번 정도 반복해서 닦아냈다.


혹시나 식초 냄새가 나진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냄새가 나지 않았다. 식초는 천연 살균제 역할을 해서 곰팡이와 냄새제거에 좋다고 한다. 다음엔 물기를 닦은 선반을 하나씩 원래 자리에 끼우고 한편에 두었던 음식물과 식재료를 오와 열을 맞춰 다시 채워 넣었다. 냉동칸은 꽉 찬 상태라 딱히 손을 대지 못하고 냉장칸만 청소를 했는데 그래도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간단하고 준비물이라고 할 것도 없이 식초만 있으면 되어서 쉽고 간편하게 청소를 마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청소하기 전과 다르게 한결 차분하고 깔끔해진 냉장고를 보니 뿌듯한 마음이 밀려들면서 벌써 어제보다 건강해진 기분이 드는 착각이 들었다. 그동안 이렇게 쉬운 청소를 귀찮고 막연하게 손이 많이 갈 것 같다는 이유로 미뤘던 점을 반성하며 앞으로는 꾸준히 주기적으로 냉장고 청소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혹시 비슷한 이유로 냉장고 청소를 하지 못했던 분들이 계시다면 식초만 준비해서 어서 시도해 보시길 바란다. 간단한 데다 기분까지 좋아진다!


더불어 욕실 청소법도 공유해 보려고 한다. 이것도 여러 청소법 중에 골라 정착한 방법이다. 욕실은 크게 벽 청소와 바닥 청소로 나뉜다. 준비물 역시 간단하다. 베이킹소다와 주방세제, 치약만 있으면 된다. 먼저 벽 청소의 경우, 세라믹 재질로 된 벽타일과 변기는 베이킹소다와 주방세제, 물을 적당히 섞어 스펀지에 거품을 내서 닦는다.


바닥 청소는 베이킹소다에 치약, 마찬가지로 물을 넣는다. 솔로 바닥을 쓱싹쓱싹 밀어주고 무인양품의 타일 줄눈 브러시로 솔이 미처 닿지 않는 곳까지 시원하게 쓸어준다. 거기다 깔끔한 성격의 분들은 거울과 바닥에 남은 물기를 스퀴즈(스퀴지)로 제거한다고 하는데, 귀찮기도 하고 눈에 거슬리거나 물때가 심하게 생기지도 않아서 생략한다.


글에서도 느껴지겠지만 나는 청소하는 걸 즐긴다. 더러운 부분이 말끔해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희열이 있고 보람이 있지만 내가 생활하는 곳을 항상 쾌적한 컨디션으로 적절하게 유지한다는, 관리한다는 점이 가장 좋다. 뭔가 어른스럽기도 하고 책임감 있지 않은가. 요새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도 한 가지를 하더라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걸 살아가면서 여러 사례를 통해 거듭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방청소를 먼저 하라는 말이 있듯이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맞아 대청소를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4월을 맞이하는 것은 어떨까?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5화생로병사의 식단일 수도 아닐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