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도전기
브런치에 에세이를 쓰면서 최대한 나를 숨기지 않고 쓰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조금 침울한 타이밍에 나야말로 내가 쓴 글을 보고 우울증이 돋아버렸다. 아니, 보통은 아무렇지 않은데 정말 가끔 호르몬의 영향인지, 외부적인 영향에서인지 바람이 드는 것처럼 급작스럽게 다운되는 주기가 찾아오면 그렇게 늪에 빨려들 듯 우울감에 쉽게 사로잡히고 만다. 그나마 해가 갈수록 이런 시간이 줄어들고 있고 가장 힘들었던 때를 지나왔다는 건 확신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우울은 내게 안부라도 묻듯이 잊지도 않고 불쑥 찾아오곤 한다.
그래도 이번 우울은 짧았다. 그랬던 데에는 무엇보다도 새로 시작한 운동의 영향이 컸다. 새해를 맞아 그토록 벼르고 벼르던 수영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배워야지, 배워야지 다짐만 하던 수영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미루다 가는 평생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러자 비로소 번쩍 정신이 들었는데 더 늙으면 수영복 입기도 괜히 더 민망할 테고 뭘 배우는 것도 시간이 더 걸릴 텐데 그러면 하루빨리 시작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길로 수린이들의 강습 후기들을 찾아 읽고 다양한 강습 영상들을 살펴봤다. 파란 수영장의 길게 뻗은 레인들, 하얗게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쭉쭉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어렸을 때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던 기억이 흐려진 건지, 아니면 그사이 용감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나도 잘할 수 있을 거 같다는 희한한 근자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기세를 몰아 바로 강습 신청을 했다. 그러고는 어떤 수린이의 추천을 받은 수영 가방을 주문했다. 다음으로는 수경을 골랐다. 요즘은 미러 스타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수경을 많이 쓴다고 해서 실착이 깔끔하고 예쁘다는 후기가 종종 있었던 흰색 바디에 노란색 렌즈로 선택했다. 택배로 온 수경을 꺼내서 처음 썼을 때는 별로인 것 같았는데 수영복을 갖추고 썼을 땐 후기에서 말한 대로 깔끔해 보여서 만족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수영복과 수모를 고를 때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강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서 강습용으로 많이들 추천하는 편한 스타일의 수영복 대신 내 눈에 제일 예쁜 수영복을 골랐다.
네이비 바탕에 은하수 느낌으로 반짝반짝 글리터가 포인트인 수영복으로 직접 입어보니 생각보다 어울려서 잘 샀다고 막 감탄을 하려는 찰나… 와 이 배, 실화냐? 그래도 물에 들어가면 어차피 안 보이겠다 정신 승리를 하기로 했다. 수모는 수영복에 맞춰서 흰 바탕에 노란 오리가 그려진 걸 샀다. 이렇게 나름 깔맞춤을 하고 수영장에 가면 밋밋한 기본 템으로 강습을 듣는 것보다는 확실히 더 수영 갈 맛이 난다고 할까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강습을 듣기 전엔 물에 뜨기만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의외로 발차기가 많이 어려웠다. 처음에는 힘만으로 발차기를 하다가 몸이 앞으로 나가지 않아서 짜증이 난 적도 있고 내 운동신경이 여기까진가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딱 한 달이 된 지금은 발차기로 지적을 받지도 않고 앞으로도 잘 나가는 걸로 봐서는 나름 감각을 익힌 듯하다.
발차기 감각을 익히는 데는 꽤나 시간이 걸렸는데 강사님이 지적한 부분을 최대한 고치고 그래도 잘 모르겠는 부분은 유튜브에서 강습 영상을 찾아보면서 강사들의 의견을 참고했다. 그렇게 수영 강습이 끝나면 마음대로 안 됐던 게 떠올라 잠시 의기소침해졌다가 침대 위에서 다시 숨쉬기와 발차기 연습을 했다. 수영 괜히 했나… 먼 산을 보다가도 다행히 막상 수영장에 가면 물놀이 나온 것처럼 재밌어서 수업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다 4번째 수업에서 드디어 강사님이 이제 숨쉬기와 발차기가 되는 것 같다고 팔 돌리는 걸 알려주셨다. 요즘은 사이드킥을 배우고 양팔을 돌리는 단계까지 왔는데 내가 뭘 잘못하는지 어깨가 아프다. 원래 자유형이 어렵다고들 하던데 그래도 제대로 배워서 잘하고 싶다. 칭찬을 듣고 싶다기보다는 뭐든 오래 하려면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내 경우는 특히나 내가 못하는 거엔 금방 흥미가 떨어지는 급한 성격이라는 걸 잘 알기에 그렇다.
아무튼 수영은 어렵지만 재밌는 운동이다. 이제는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면 신기하게 앞으로 잘 나가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다. 혹시라도 수영을 배우고 싶은데 망설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빠른 시일 내로 시작하시길 추천드린다. 아 그리고 수영하면 잠도 잘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