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 떠나고 나는 도망을 선택했다.

8화

by 이로티

첫 학기의 성공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장학금과 과탑이라는 단어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기보다는,
오히려 나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나는 여전히 미성숙했고,
아직 내 삶을 스스로 감당할 만큼 어른이 아니었다.


그 시절의 내 중심에는 공부도, 미래도 아닌
한 사람이 있었다.
꽤 오랜 시간 함께했던 첫사랑이었다.
함께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그 관계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노력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계속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믿음은 너무도 쉽게 무너졌다.
그녀는 장거리연애에 지친다 이야기했다.

그저 떠나버린 그녀를 붙잡기 위해 달려간

그 자리에는 다른 남자와 손잡고 걷는

그녀가 존재했다.


나는 버려졌다.


몇 달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
수업에 앉아 있어도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고,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혼자 있는 느낌이었다.
성적은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1학기의 나는 사라졌고,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지갑 속에는
아직도 그녀의 사진이 남아 있었다.
버리지 못했다기보다는,
버릴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무너져가던 어느 날,
나는 아주 단순한 결론에 도달했다.
도망치자.
군대는 내게 의무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군대에 가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매일 무엇을 할지 정해져 있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적어도 선택의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된다.


입대 첫날,
머리를 밀고 거울을 봤을 때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기분.
그게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훈련병 시절은 버텼고,
이등병 시절은 익숙해졌다.
“네, 알겠습니다.”라는 말이
입에 붙어버린 A급 병사가 되었다.
그리고 군대에서도,
나는 또 한 번 사랑을 만났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 생각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 믿음 하나만으로도
그 시절은 버틸 만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선임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고,
운 좋게도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PX병이라는 보직을 맡게 되었다.

군대는 내게 도망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장사’라는 걸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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