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없이 자연에 머물며 논다.
헤드랜턴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자연에서 해가 진 뒤에는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서 걸을 수밖에 없다. 동그란 불빛 바깥은 시커멓게 된 먹칠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감각들이 예민하게 살아난다. 밤이 되면 깨어나는 새와 곤충들이 내는 소리가 귀를 번쩍 뜨게 한다. 발밑에 불빛을 비춰보면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처럼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울퉁불퉁한 바윗길을 걸어야 할 때는 발목이 삐끄덕 거리기도 한다. 한발 한발 조심해서 내딛는다. 그래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 하면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그저 텐트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다. 풍경도 보이지 않는데 무슨 산책이냐 물으면 작은 불빛에 의지해 걷는 동안 깨어나는 나의 감각을 느끼기 위한 산책이라 하겠다. 멀리 보이는 도시가 내가 자연에 나와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한다. 밤이 되면 그 도시에 불빛이 켜진다. 이곳에서도 보일 정도의 불빛들이라니, 내가 얼마나 밝은 불빛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곳은 칠흑처럼 깜깜하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낮에는 보는 산책이지만 밤에는 느끼는, 겪는 산책이다. 이것이 내가 자연에 가서 하는 놀이, 첫 번째이다.
백패킹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짐 풀고, 먹고, 자면 끝 아니야?
아니다. 자연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만 가지다. 그저 걷기만 해도 재미있는 게 자연이 아니던가. 한발 한발 걸음을 내딛는 속도에 맞춰 절대 같을 수 없는 자연의 풍경이 한 장 한 장 넘어간다. 시선을 위로 들면 멀찍이 산과 바다가 아름다운 선을 그리고 있고, 고개를 아래로 숙이면 야생화와 작은 벌레들이 바지런을 떨고 있다. 걸을 때 나는 바스락거리는 발소리도 좋다. 아스팔트를 밟을 땐 들을 수 없던 모래와 돌멩이가 바스러지는 소리. 그 소리가 좋아서 청각을 곤두 세운다.
물이 있는 곳은 또 얼마나 좋은가. 물이 흐르는 곳, 파도치는 곳은 자리를 잡고 앉아야 한다. 같은 파도는 두 번 오지 않는다. 지나간 물줄기는 다시 볼 수 없다. 강약 중강 약 리듬을 타는 물결을 보고 있자니 어찌 지루할 틈이 있겠는가. 그래서 물멍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물소리는 또 얼마나 좋은지. 쏴아 - 쏴아 - 물이 만드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대화도 없어지고 그저 그 소리에 빠져들 뿐이다.
발 밑에는 이름 모를 벌레들이 기어간다. 나는 벌레를 무서워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쫙 끼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을 가만히 보다 보면 생각보다 귀엽다. 벌레들의 움직임에 이 녀석들의 생각이 읽히기 때문이다. 길이 막혀있으면 이래저래 시도를 해보다 그도 안되면 다른 길을 찾아 뒤돌아 선다거나 앞에 가는 동료의 뒤꽁무니를 열심히 쫓아가다 조금 거리가 벌어지면 쏜살같이 거리를 좁히는 모습. 특히 바닷가에는 갯강구라는 무시무시한 녀석이 많다. 처음에는 바퀴벌레 같은 모습의 갯강구가 너무 무서웠더랬다. 발을 디딜 때마다 샤라락 사라지는 속도에 자지러졌다. 그런데 녀석들도 가만히 보면 귀여운 구석이 있다. 정말이다. 내가 갯강구 가까이 발을 딛자 쏜살같이 도망을 가다가 여러 마리가 바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다시 한번 가까이 다가가 보니 다른 갯강구들도 급하게 도망치다 몸을 던져 바위에서 떨어졌다. 달리는 것보다 굴러 떨어지는 게 더 빠르다는 걸 아는 거다. 조그마한 녀석들이 머리를 굴린다 생각하니 그게 귀엽더라.
숲과 물가에는 새들이 살고 있다. 바다에서 보이는 새, 강가에서 보이는 새, 산에서 보이는 새, 들판에서 보이는 새가 각기 다르다. 쌍안경을 들고 멀리서 새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새들이 얼마나 바쁜지 보고 있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바쁜 새들을 나는 편하게 구경만 하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나는 작은 조류도감이 있어 처음 보는 새가 있을 때마다 책에 표시를 한다. 이를 종추(종 추가)라고 한다. 자연에 다니다 보면 어느새 도감에 표시된 동그라미 수가 늘어나 있다. 생명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준다. 그들의 활력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내 안의 생명도 덩달아 기운이 나는 것 같다.
자연에 나왔으니 당연하게도 풍경을 보아야 한다. 의자를 들고 털레털레 걸어본다. 마음에 드는 풍경을 찾아 의자를 펴고 앉으면 내 것이 된다. 풍경은 멈춰있지 않다. 시시때때로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그 빛깔이 변한다. 하늘로는 새가 가로지르며 날아가기도 하고 구름이 물에 탄 잉크처럼 제멋대로 형태를 만들며 번져나간다. 그 아래로는 산과 도시가 펼쳐져 있다. 꼬리를 물고 달리는 자동차를 멀찌감치서 바라보면 도시에서의 일들은 남의 일인 것 마냥 멀게 느껴진다. 저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이번엔 물에 몸을 담가보자. 씻을 걱정 따위는 하지 말 것. 세면대 물을 머리에 들이부어서라도 어떻게든 헹굴 수 있다. 물에 들어가고 싶은 날은 들어가는 것이다. 발만 담글 수도 있다.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올리고 풍덩풍덩 달려들어가는 수도 있다. 같이 온 짝꿍과 물을 뿌리며 물장구치고 노는 것도 즐겁다. 물에서 노는 방법만으로도 만 가지가 나오지 않겠나. 바다나 계곡은 실내수영장의 고인 물과는 성격이 다르다. 물에 누워 둥실둥실 떠있으면 물살이 내 등을 받쳐 올리는 게 느껴진다. 하늘로 나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헹가레를 쳐준다. 하늘이 내 이맛전까지 내려왔다 되돌아가기를 반복한다. 생명을 가진 물은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자연은 우리를 품어 준다. 그러니 자연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의 고장 난 어딘가가 회복되는 것이 느껴진다. 무해한 자연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도 이처럼 놀거리가 차고 넘친다. 하루 꼬박 놀아도 부족하다. 자연에서는 어린아이가 된다. 작은 것 하나하나 모든 것이 즐겁고 새롭다. 임도에 핀 야생화 한 송이, 바위에 달라붙은 불가사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새소리. 모든 것이 의미가 되고 이야기가 된다. 이러니 자연에 나가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다. 결국 다시 도시로 돌아와야 하지만 자연에서 촘촘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돌아온 이곳이 더 살만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