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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공 Sep 14. 2022

울릉도, 마지막

신비한 원시림을 걷다

울릉도에 있는 동안 아침은 매번 빵이었다. 전날 저녁 편의점에서 사 온 빵으로 간단히 아침을 하고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성인봉을 오르기로 한 날. 감사하게도 숙소 사장님께서 창고에 가방을 맡아주셨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가면 안 된다고 하시며 우리가 메고 있는 옆가방이 불편해서 어쩌냐며 염려해주시기도 하셨다.


관음도에서 햇볕을 많이 받은 탓인지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눈이 부었다. 약국에서 알레르기 약을 사고 봉래폭포로 가는 버스도 여쭤보았다. 둘이면 버스비나 택시비나 비슷하니 봉래폭포까지는 택시가 낫다고 말씀해주셔서 우리는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택시기사님께 봉래폭포에서 성인봉을 오를 수 있나 여쭤보았다. 길이 안 좋다는 말씀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목표는 봉래폭포가 아니라 성인봉인데, 괜히 봉래폭포를 보러 와서 성인봉에 오르지 못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길이 험해도 어떻게든 올라가보자며 걱정을 잠시 접어두고 봉래폭포로 향했다.


매표소에서 봉래폭포까지는 생각보다 꽤 거리가 있었다. 곧게 뻗은 나무로 둘러싸인 길은 천천히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곳이었다. 길 옆으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숲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언제 폭포가 나타날까 기대되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디뎠다. 

높이 뻗어 오른 나무가 있는 벤치에서 잠시 휴식했다. 봉래폭포로 가는 길에 만나는 숲은 성인봉 원시림에 들어서기 전인데도 이미 우거져 있었다. 곧게 자란 나무 둘레로 고사리가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숲의 밀도가 우리가 육지의 산에서 만나던 것과는 달랐다.

봉래폭포는 그렇게 크지 않은 규모였다. 3단으로 나누어져 층층이 떨어지는 폭포가 시원했다. 우리는 폭포 소리를 들으며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하고 걸어온 길로 되돌아 나왔다. 

봉래폭포 매표소 앞 매점에서 등산하며 마실 호박식혜를 한 병 사며 성인봉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여쭤보았다. 길이 잘 정비되어 있진 않지만 오늘 같이 날씨 좋은 날은 갈만할 거라고 하셨다. 우리는 알려주신 방향으로 걸어 등산로로 들어섰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등산로는 그다지 험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거진 수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나중에 성인봉에 올라 정상석을 보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성인봉은 984m의 해발고도가 꽤 되는 높은 산이었다. 등산길이 어렵고 험하진 않았지만 봉래폭포에서 시작하여 둘러가게 된 데다, 길이 꺾어지며 길게 이어져서 생각보다 많은 걸음이 들었다.

우리는 성인봉 원시림이 보고 싶어 이 산을 오르기로 했다. 울릉도 성인봉과 같은 원시림은 국내에 얼마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의 산이 녹화사업을 거치며 인공적으로 숲을 조성했다. 하지만 울릉도 성인봉의 숲은 자연 상태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오르면서 보이는 주변의 풍경이 낯설었다. 구불구불 멋대로 자란 나무와 땅을 가득 메우고 있는 고사리, 나무 위로 타고 오른 빛나는 이끼가 만든 신비로운 원시림의 풍경에 압도되어 우리의 걸음은 자꾸만 느려졌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우리의 발걸음은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었다. 산을 걷는 것은 지나가는 바람에도, 잠시 이어지는 평평한 길에도 고마워지는 시간이다. 물을 적게 챙겨 온 탓에 목이 마른 채로 등산을 하던 우리에게 시원하게 불어주는 산바람이 갈증을 해소해주었다.

드디어 성인봉 정상에 도착했다. 성인봉 정상은 조망이 좋지 않았다. 정상석 주변을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어 바위 위에 올라 까치발을 해야 나무 사이로 풍경을 조금 들여다볼 수 있는 정도였다. 후에 울릉도의 산은 나무를 함부로 베거나 정리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울릉도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을 줄 알았던 나는 조금 실망했지만, 오는 동안 만끽했던 원시림의 풍경이 너무나 좋아서 나름의 매력이 있는 산이라 생각했다. 하산하면서 한 번 더 숲 속에 들어갈 생각에 기대가 될 정도였다.

우리는 울릉도에 와서 아직까지 먹어보지 못한 따개비 칼국수를 저녁 메뉴로 이미 정한 상태였다. 도동 방향으로 하산하여 숙소가 있는 저동으로 이동 후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하지만 도동으로 하산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우리는 가파른 포장도로를 한참 걸어야 했다. 길의 경사 때문에 걸음이 저절로 비척걸음이 되었다. 도대체 이 길은 언제 끝나는 걸까. 내려올 만큼 내려왔다 생각이 되었는데도 경사진 도로는 끝날 줄을 몰랐다. 다리가 저릿저릿 아파왔다.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길은 이유가 있더라.

괴로운 하산길을 마치고 택시를 타 저동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기대하던 따개비 칼국수와 홍합 따개비밥을 주문했다. 사실 아주 맛있거나 특별한 맛이 있지는 않았다. 울릉도에 오면 다들 한 번씩 먹어보는 메뉴인 것 같아서 우리도 시도해 본 것이었는데, 기대만큼 맛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번쯤은 먹어봄직했다.


우리는 서둘렀다. 내수전으로 가서 어서 빨리 바다에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내수전으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텐트를 피칭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내수전의 바다는 이끼 낀 바위가 많이 보였다. 그 사이로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나는 햇빛 알레르기 때문인지 갑자기 머리가 아파 금방 물놀이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도 금세 해가 져서 내수전에서의 물놀이는 아쉽지만 짧게 끝내게 되었다. 

저동에서 내수전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기사님께서는 사동이 더 좋은데 왜 내수전으로 가냐고 계속 말씀하셨다. 사동에 가면 편의점도 있고 데크도 깔려 있는데, 내수전엔 아무것도 없고 바위 밟는 느낌도 안 좋다고 하셨다. 그 때문일까 내수전에 도착한 나는 끊임없이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내수전을 싫어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내수전은 생각만큼 좋진 않았다. 누가 박지 앞 바위 더미에 음식물을 버려둔 게 그대로 있었고, 냄새도 났다. 벌레도 돌아다녔다. 하지만 우리는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펴고 누워 잘 수 있는 것에도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내수전은 완벽하진 않았지만 충분했다. 

계획대로는 안되어도 매일매일이 좋았다. 해질녘이 되어 텐트에 누우면 '오늘도 좋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울릉도는 좋았다. 그는 숙소보다 텐트가 더 좋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샤워도 불편하고 좁은데도 텐트 안에 같이 있는 시간이 포근하고 아늑하다. 


울릉도 마지막 날, 우리는 저동항에서 배를 타야 한다. 저동항까지는 도보로 30분이 걸린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항구로 이동하기로 했다. 무심코 지나가는 길 곁에도 울릉도의 멋진 바위들이 줄지어 있었다. 유명한 장소가 아니어도, 그저 울릉도를 걷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는 기회가 생긴다.

우리는 저동에 도착해서 항구 근처에서 커피를 한잔하고, 이른 점심 식사도 했다. 뱃멀미가 걱정되어 점심을 거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오늘은 파고가 높지 않은 것 같아서 일단 고픈 배를 채우기로 했다. 


항구에 들어오니 여행이 끝났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길면서도 짧았던 이번 울릉도 여행이 끝났다. 울릉도를 떠나는 배는 마치 섬과 인사 나눌 시간을 주듯, 울릉도를 한 바퀴 돌아 육지로 나아갔다. 

300mm - https://youtu.be/y7pvTHtY6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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