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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공 Aug 25. 2022

울릉도, 첫 번째

강릉에서 울릉도로 가는 길

울릉도는 어떤 곳일까. 쉽게 갈 수 없는 그곳. 두 달 전부터 울릉도 여행을 계획했다. 기다리는 두 달 동안 어서 떠나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나 괴로웠다. 울릉도로 들어갈 수 있는 항구는 강릉, 묵호, 포항, 후포 총 네 곳의 항구가 있다. 우리는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강릉항을 선택했다. 강릉에서 감자 옹심이도 먹고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며 하루를 보낸 후 울릉도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을까?

여행 전에는 항상 불안함에 힘들다. 울릉도로 떠나는 날짜가 다가울수록 그 불투명한 불안함이 유난히 커졌더랬다. 구체적인 걱정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마음이 작게 쪼그라든다. 하지만 일단 여행을 시작하고 나면 그 감정들은 사라지고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게 된다. 이미 시작되어버린 여행은 이제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행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마음껏 활개 치며 우리를 이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후 짐을 놔두고 가벼운 차림으로 안목해변까지 걸었다. 안목해변의 바다는 몇 걸음 들어가면 물이 목까지 차오르는, 가파르게 깊어지는 바다였다. 서너걸음 들어가면 바닥이 푹 꺼지면서 물이 깊어졌다. 날이 흐렸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둥실둥실 파도에 몸을 맡기면 하늘이 내게로 다가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아침 8시였던 배 시간이 오후 1시로 늦춰졌다. 우리는 물놀이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며 계획을 어떻게 변경할지 대화를 나누었다. 잠시 후 선사에서 전화가 왔다. 오전에 파랑주의보가 있어 배가 늦춰졌다고 하셨다. 배 시간은 더 늦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럼 안되는데. 울릉도는 쉽게 허락되는 섬이 아니구나 싶었다.


다음날 아침 선사에서 다시 문자가 왔다. 출항 시간이 또 한 번 늦춰졌다. 오후 3시 출발. 울릉도에 도착하면 저녁 6시가 지나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울릉도 버스 막차 시간은 저녁 6시 20분이었다. 우리가 생각한 박지인 현포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섬 여행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미리 여객터미널에 들러 표를 발권했다. 터미널에 가방을 두고 나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30분 정도 거리에 버섯으로 만든 버거를 파는 곳이 있어 해변을 따라 걸었다. 테이크아웃만 되는 매장이어서 방풍림의 평상에서 식사를 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우리는 저녁에 울릉도에 도착하여 어떻게 하면 좋을지가 걱정이었다.


드디어 울릉도로 가는 배가 들어왔다. 이른 시간에 출발하는 배를 편하게 타려고 강릉에 숙소까지 잡았는데, 아침에 출발하기로 되어있던 배는 결국 오후 3시에 겨우 탈 수 있었다. 그래도 결항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배가 자꾸만 미뤄져서 이러다 하루를 더 강릉에서 보내게 되는 게 아닐지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다.


어렵게 승선한 배는 그 울렁임으로 또 한 번 우리를 힘들게 했다. 서해나 남해의 섬에 갈 때는 느껴본 적 없는 아주 큰 울렁임이었다. 놀이기구처럼 연신 요동치는 배에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토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구역질 소리가 들렸다. 강하게 몰려오는 구역감을 참아내느라 온 몸이 땀에 젖었다. 멀미약은 아무 소용이 없더라. 3시간 동안 꼼짝 않고 눈을 감은 채 어서 빨리 울릉도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해질녘이 다 되어서야 드디어 울릉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배에서 내려 첫 발을 디딜 때의 기분이 이상했다. 드디어 울릉도에 도착했다. 항구에서 나오자마자 저동항 앞에 늘어선 노점들의 호박식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호박식혜로 울렁이는 속을 먼저 진정시켰다. 물 한 모금 마시기도 겁이 났던 시간이 지난 후 마시는 차가운 호박식혜는 말 그대로 꿀 맛이더라.

버스가 아직도 다니는지 알 수 없었던 우리는 사동까지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계획대로라면 버스를 타고 현포로 가서 첫날밤을 보내야 했지만, 너무 시간이 늦어져서 그나마 가까운 박지인 사동까지 걷기로 했다. 지나는 길에 버스정류장이 있어 잠시 기다려보기도 했지만 도착 예정시간이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울릉도는 걷기에 편한 곳은 아니었다. 인도가 잘 없고 대부분 차도 위주로 되어 있는 데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어 이어진다. 그래도 우리는 잘 걷는다. 점점 길이 어두워져 헤드랜턴을 꺼내 앞을 밝히며 사동까지 느긋이 걸었다.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울릉도에 들어오는 배 시간부터 우리의 계획을 무너뜨려버렸다. 우리는 저녁에 도착하게 되어 하루를 날리게 되는 대신 돌아가는 배를 하루 미뤘다. 그러자 매일매일 세워뒀던 계획들도 반나절, 하루씩 미뤄지며 뒤죽박죽이 되었다. 여행은 원래가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번 여행은 유난히 내 마음을 따라주지 않을 것 같다.

사동까지 걸어오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렸다. 걷는 동안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사동에 박지가 없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다행히 딱 한자리가 남아있었다. 이곳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이 어두운 밤에 우리는 또 어딘가로 이동해야 했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텐트를 펼쳤다. 텐트를 다 치고 바다 앞에 테이블과 의자를 펴고 앉아 간식을 먹으며 비로소 휴식을 취했다.

날이 밝았다. 어젯밤에는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박지 주변을 조금 둘러보았다. 해안가에 앉아 빵과 두유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드디어 울릉도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동을 해야 했기에 다급하게 짐을 챙겼다. 텐트를 다 접었을 때쯤에는 비가 더 거세게 쏟아졌다. 다급하게 물건들을 처마 밑으로 옮겨두고 허겁지겁 가방을 쌌다. 가방을 짊어진 후 울릉도를 위해 준비해 온 새 우비를 꺼내 입었다. 우비를 입고 걷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거칠고 불편한 날씨에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내심 뿌듯하고 기분 좋았다. 여행을 다니면서 어느새 고생과 불편함에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버스를 타고 원래 계획했던 박지인 현포로 이동했다. 버스는 해안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울릉도를 돌았다. 멀리 거북바위도 보이고, 유명한 캠핑장소인 학포도 지났다. 현포에 내리자 솟아오른 송곳봉과, 거대한 대풍감이 우리의 시선을 빼앗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앞에 스노클링 하기 좋은 곳이 있다고 하여 대풍감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걸었다. 현포 박지는 샤워장도 있고 캠핑도 할 수 있어 우리에게 딱 맞는 곳이었다.

바다 가까이 텐트를 쳤는데 다시 비가 거칠게 퍼붓기 시작했다. 우리가 텐트를 친 자리에 물이 고여 하는 수 없이 텐트를 옮겨야 했다. 텐트 안에 꺼내두었던 물건들을 급하게 가방에 쑤셔넣다 싶이 담았다. 그러는 동안 텐트안에는 비가 몰아쳐 들어왔다. 매트와 텐트 바닥이 흠뻑 젖었다. 서두른다고 서둘러도 거세게 내리치는 빗발에 속수무책이었다. 빗 속에 텐트를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커서 몸이 절로 재빠르게 움직였다.

비가 와서 조금 주저했지만 투명한 울릉도 바다를 앞에 두고 바라만 볼 수는 없었다. 우리는 바다로 들어가기로 했다. 비에 젖은 짐을 내팽개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바다에 풍덩 몸을 던지자 어질러진 텐트와 물에 젖은 장비들 생각은 다 잊혔다. 현포 바다는 너무 투명하고 맑아서 비가 오는데도 시야가 깨끗했다.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이 보였다. 비 오는 흐린 날씨에도 이렇게 투명한데, 해가 뜨면 얼마나 잘 보일지 기대가 되었다. 우리는 점심때가 다 되도록 물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전체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주세요.

300mm - https://youtu.be/R0A6oujG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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