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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공 Jul 13. 2022

세 개의 섬, 두 번째

여수 금오도 백패킹

금오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섬에서 또 다른 섬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3박 4일간의 여수 섬 여행으로 개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두 번째 여행지인 금오도로 향하고 있다. 개도에서 금오도로 바로 이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배는 텅텅 비어 있었다.


섬은 가까운 곳에 있는 섬들끼리도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금오도가 가까워지자 깎아지른 해안 절벽의 웅장한 모습이 우리를 마주 했다. 금오도가 보여줄 풍경이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우리는 금오도 비렁길 3코스를 걷기로 했다. 비렁길 3코스는 우리가 내린 직포항에서 바로 시작하는 트레킹 코스이다. 항구에서 걸어 나오면 바로 비렁길 입구가 나타난다. 3.7km의 짧은 코스로 직포항에서 학동까지 걷는, 해변으로 난 산 길이다. 매봉 정상은 거치지 않고 둘레로 천천히 걷는 길인데 바다로 쏟아지듯 형성된 바위 지형과 우거진 꾸밈없는 숲이 우리의 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비렁길의 나무들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걸음걸음마다 마주하는 나무의 종류가 달라졌다. 곧게 하늘로 솟은 나무, 비스듬히 서로에게 기댄 나무, 구불구불 물결치는 나무. 그렇게 숲의 모습에 시선을 팔다 보면 어느새 틈바구니에서 너른 바다의 풍경이 나타나곤 했다.

걷는 것이 너무 좋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다리에 무게가 실리는 느낌이 좋다. 걸음을 걷는 속도에 맞춰 느릿하게 풍경이 변화하는 것을 보는 것이 우리 여행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차가 없이 여행하는 우리에게는 걸음을 걷는 빠르기가 바로 우리가 여행하는 속도가 된다. 조금은 느리지만 그만큼 여유롭고 작은 것 하나라도 더 보고 이야기 나누며 걷는 것. 백패킹뿐만이 아니라 여행을 가면 우리는 무작정 많이 걷는다. 어느 순간 걸었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더라는 걸 깨달은 후로 가능하면 많이 걷고자 노력한다. 여러 가지 경험들도 중요하지만 그 장소의 분위기, 풍경, 그 순간을 기억에 많이 남기는 데에는 걸음 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금오도의 자연은 어딘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특히 바위들이 그러했다. 길가에 자리 잡은 독특한 바위를 보다가 또 어느새 바다 위로 난 데크 길을 편안히 걷기도 했다. 느긋이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등산로였다. 무거운 배낭만 아니었으면 비렁길 끝까지 걷고 싶었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풍경에 지루할 틈이 없더라. 

우리는 굽이진 산 길을 걷다가도 옆으로 판판한 바위가 보이면 냉큼 가서 배낭을 내리고 앉아 쉬었다. 힘들어서라기보다는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바위에 앉아 파도소리를 듣고 새도 바라보며 잠시 잠깐씩 휴식을 취했다.

비렁길 3코스의 끝에는 '한 접시 쉼터'라는 귀여운 이름의 전 집이 있다. 우리는 그곳에 들러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마침 금오도의 방풍 막걸리 맛도 궁금하여 방풍 전과 함께 주문했다. 금오도는 방풍나물이 유명한 지역인 것 같았다. 마을 쪽으로 걷다 보니 여러 군데에서 방풍나물이 빼곡히 자라고 있었다. 한참 땀 흘리며 걷고 나서 먹는 전과 막걸리는 당연하게도 최고로 맛이 좋았다.

금오도는 다도해해상 국립공원으로 야영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캠핑장에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느라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우리를 보고 지나가던 친절하신 마을 주민분께서 어디로 가냐고 먼저 물어봐 주셨다. 마을버스를 타야 할 것 같은데 버스가 자주 오냐고 여쭤보자 곤란한 표정을 하셨다. 마을 분들도 버스를 잘 이용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실제로 금오도에 있는 동안 마을버스가 지나가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르신께선 마을 주민분들만 이용하시는 샛길을 알려주셨다. 덕분에 언제 올 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정류장에 한참 앉아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어르신께서 알려주신 길은 학동에서 남면으로 바로 넘어가는 길로 밭과 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걷는 지도에는 없는 길이었다. 방풍나물들이 잔뜩 자라고 있는 길을 지나자 어느새 보송보송한 들풀이 우리 주변을 가득 채웠다. 넘어가는 햇살이 반짝반짝 비추는 사람의 흔적이 많지 않은 길을 걷는 기분이 행복했다.

계속 걷다 보니 갈증이 나고 더워 남면 하나로마트에 들러 간단한 간식거리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샀다. 지쳐가던 차에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이 다시 기운을 차리고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잠시 길가에 앉아 쉬며 자그마한 마을 풍경을 구경했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캠핑장을 향해 마저 걸었다.

비렁길부터 시작해서, 지도에 없는 샛길로 언덕을 넘고, 마을을 가로질러 도착한 캠핑장이라 그런지 마치 집에 도착한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는 천천히 짐을 풀고 허기진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이틀째 가방에 넣고 다닌 짜장라면을 끓였다. 캠핑에서 요리를 그다지 해 먹지 않는 우리라서, 짜장라면을 끓이는 일도 굉장히 큰 요리를 해 먹는 것처럼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백패킹은 가볍고 단순하게 하자는 생각으로 대부분 비화식에 간단한 음식만 먹으며 지내는데, 가끔은 이렇게 요리를 해 먹는 것도 재미있단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음식을 먹는 일은 매번 새롭고 기분이 환기되는 시간이다.

날이 밝아 하나로마트에서 사 온 시리얼을 두유에 타서 먹었다. 조용하고 편안한 아침이었다. 우리가 예약한 '써니 아일랜드 캠핑장' 사장님께서는 금오도에 와보고 이 섬이 너무 좋아 도시생활을 접고 아예 이곳으로 이사를 오셨다고 한다. 우리가 있는 동안 계속해서 정원과 사이트를 돌보시고, 캠퍼들에게도 한 마디씩 건네며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아침 배를 타기 위해서 버스 시간을 여쭤보았는데, 마침 아침에 배를 타러 나가야 한다고 이른 시간에 항구까지 태워주셨다. 안 그래도 버스시간 때문에 배를 놓치진 않을지 너무 불안했는데 덕분에 편하게 항구까지 올 수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짧은 인연에도 신세를 지고 감사한 마음을 품고 헤어지게 되는 일이 생긴다. 언제 보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음에도 이렇게 호의를 베풀어 주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최소한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우리는 다음 여행지인 낭도로 가기 위해 일단 백야도항으로 간다. 낭도는 차로 들어갈 수 있는 섬이라 배를 타고 들어가는 것보다 백야도에서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더 나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익숙한 마루로 된 객실에 앉아 다음 여행지로 향했다.


300mm - https://youtu.be/jFbJCfbog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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