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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공 Jul 24. 2022

세 개의 섬, 마지막

여수 낭도 백패킹

우리는 3박 4일 여수 섬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 낭도로 향한다. 낭도는 차로 들어갈 수 있는 섬이라 금오도에서 백야도항으로 이동 후 버스를 타고 낭도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출출했던 우리는 백야도항 주변 식당에서 일단 밥부터 먹어야 했다. 여행이 3일째가 되니 챙겨 온 음식도 바닥이 났다. 가방에 하나 남아 있던 양갱을 둘이서 나눠 먹고 근처 백반집으로 들어갔다. 수십 년 된 괘종시계가 벽에 걸려 있는 오래된 식당이었다. 무심히 내어주시는 나물 반찬이 맛 좋은 곳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백야도항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지도 어플에서는 백야도항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세포 삼거리 정류장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 낭도로 들어가는 것으로 나왔지만, 세포 삼거리 정류장으로 오는 버스는 배차 간격이 1시간이 넘는 버스였다. 게다가 우리가 도착하기 조금 전에 막 버스가 지나간 참이었더라.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중간에 택시를 잡아타고 낭도로 들어왔다.

낭도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북적이는 인파였다. 지난 두 곳의 섬에서 조용한 섬 여행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기에 자그마한 섬인 낭도에서도 차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낭도에는 사람이 붐볐다. 차로 쉽게 들어올 수 있는 섬이라 관광객이 많았다. 수많은 관광객들로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우리가 기대했던 고즈넉한 섬의 풍경은 없었다. 마을 어르신들께서 주말이 되면 관광객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다고 하셨다. 섬으로 들어오는 도로가 생기고 낭도의 풍경이 변한 것이다.


붐비는 인파를 뚫고 걸었다. 낭도에 도착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배표를 끊는 것이었다. 낭도에서 여수항으로 가는 배표는 온라인으로는 예매가 되지 않아서 직접 매표소를 방문해야 했다. 매표소의 직원분께서는 표를 결제하다 말고 차로 갈 수 있는데 왜 배로 가려하냐고 물어보셨다. 이 배는 마을 주민분들 소수만 이용하시는 배로 여행객은 거의 타지 않는 배라고 하셨다. 차가 더 편한데 왜 고생을 하나 싶어 물어보시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또다시 버스를 한참 기다리며 이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배를 타는 것이 가장 간단하게 여수항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이었다. 지금까지 타 본 배 중 가장 자그마한 배를 예매했다.

우리가 이번 여수 섬 여행에서 방문한 개도, 금오도와 마찬가지로 낭도에도 유명한 주조장이 있다. 그곳에서 낭도 젖샘 막걸리를 두 병 샀다. 이번에 맛 볼 막걸리는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막걸리는 지역마다 맛이 다양하고 차이가 크다. 매 섬마다 막걸리 맛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낭도에 오는 다른 백패커들은 낭도 상산 쪽에서 1박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다음날 아침 7시 낭도항에서 배를 타야 해서 항구가 가까운 낭도 캠핑장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으로 북적이는 거리와 달리 캠핑장에는 자리가 많이 남아 있었다. 자그마한 우리의 텐트에 비해 과하게 넓은 사이트에 넉넉히 자리를 폈다. 우리는 막걸리의 차가운 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먼저 막걸리 맛부터 보기로 했다. 그는 이번 여행에서 먹어본 막걸리 중 이곳 막걸리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덕분에 막걸리 두 병을 금방 비웠다.

잠시 휴식을 마치고 가벼운 차림으로 낭도 트레킹에 나섰다. 캠핑장 맞은편엔 낭도 해수욕장이 있다. 귀엽고 작은 게들이 그곳에서 열심히 모래를 파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바쁜 것일까?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게들이 모래사장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 그들만의 세상에 푹 빠져 있는 게들을 한참 구경했다.

멀리 붉은 등대가 보여 방파제를 따라 걸었다. 햇빛이 그대로 내리쬐고 그늘이 없는 곳이라 이곳을 걷는 사람이 없어 조용했다.

붐비는 바닷가를 등지고 산길로 들어섰다. 공룡발자국 화석을 볼 수 있다는 해안 트레킹 코스가 있었다. 그곳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연은 모두의 것이니까 사람이 붐비는 것에 불만을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행을 오는 이유 중에는 복잡한 도시를 떠나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포함되기 때문에, 자그마한 섬 여행에서 예기치 않게 마주친 북적이는 거리는 우리를 당황스럽게 했다.

낭도에서 하룻밤 머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차를 타고 이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 많던 사람들은 해질녘이 되자 거의 사라졌다. 가게들도 저녁 8시가 되기 전에 하나 둘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우리들이 섬의 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돌아가야 하는 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오늘 밤 이 섬에 남기로 한 우리는 비로소 조용해진 섬을 만끽할 수 있었다.


숲과 바위섬을 보면서 붐비는 인파에 피곤해졌던 체력이 돌아오는 걸 느꼈다. 자연은 그런 힘을 갖고 있다. 낭도의 트레킹 코스는 숲과, 바위와, 바다를 만나는 길이었다. 암벽을 타고 내려가면 공룡발자국이 있다는 천선대 바위 해안이 나타난다. 누군가 일부러 조각해 놓은 듯 층을 이루며 부서진 바위가 개성 있는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공룡발자국 화석은 찾지 못했다. 돌이 파여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이것이 공룡 발자국일까?’ 열띤 논의를 주고받았지만 확실한 것은 없었다. 다시 각진 바위를 타고 등산로로 돌아왔다. 


운 좋게 짐을 놔두고 걸을 수 있는 날은 얼마나 몸이 가벼운지 모른다. 배낭을 이고 걸을 때의 그 무게감이 우리가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시시때때로 깨우쳐주어 좋다면, 가벼운 몸으로 숲 속을 걸을 때는 그  자유로움이 좋다. 얼마든지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된다. 작은 이파리와 나무들에도 더 많은 시선을 두며 걷는다. 

돌아올 때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로 걸어 내려왔다. 마을에는 제비집이 많았다. 바닷가 마을에는 유난히 제비가 많이 보인다. 마을 주민분들도 굳이 제비집을 치우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제비 둥지가 보였다. 어미 제비가 둥지 근처에 다가오면 아기 제비들이 입을 잔뜩 벌리며 밥을 달라고 졸라댄다. 아기 제비들이 밥을 먹겠다고 입을 한가득 벌리며 옹기종기 앉아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우리는 캠핑장으로 돌아와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먹었다. 여행 마지막 날인 데다 때맞춰 마트에도 들리지 못해 먹을 수 있는 것이 캠핑장에서 파는 라면뿐이었다. 저녁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텐트 안에 누웠다. 며칠간의 여행이 피곤했는지 나는 그보다도 한참 먼저 잠에 들었다.

해가 뜨는 것에 맞춰서 일찍 일어나 짐을 정리했다. 아침 7시 배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낭도의 모습은 언제 붐볐냐는 듯 조용하고 한적했다. 사람이 없는 해변에는 갈매기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해변을 지나 낭도항으로 향했다. 어제 매표소에서 말씀해주신 빨간 배를 찾아 승선했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자그마한 배였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마을 어르신들 밖에 안 계셨다. 항구와 갑판 사이의 간격이 멀어 직원 분께서 할머니들의 손을 한 분 한 분 잡아 배를 탈 수 있게 도와주셨다. 여수연안여객터미널까지는 배로 2시간 정도 걸렸다.

우리는 근처 분식집에서 김밥을 포장해 간단히 식사를 하고 기차를 타러 이동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KTX를 예매해두었는데 문제가 있었다. 내가 날짜를 착각해 잘못 예매한 것이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입석 금액을 추가로 결제하고 통로에 앉아 서울까지 와야 했다. 나 때문에 그를 고생시키게 되어 너무 미안했다. 기차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하며 돌아올 요량이었는데, 결국 서울까지 불편한 자세로 오게 되었다. 그는 같이 확인하지 않은 자신의 잘못도 있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었다. 불편하게 온 때문인지 집에 도착하자 저절로 숨이 탁 놓였다. 여행은 참 아이러니하다. 여행을 떠날 때는 그 설렘으로 하루하루 날을 세어가며 그날이 오길 고대하다가도,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할 수가 없다. 그는 이 맛에 여행을 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이렇게 3박 4일간의 즐거운 고생, 우리의 여수 섬 여행이 끝났다.


300mm - https://youtu.be/RTOYlmIes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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