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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공 Jul 05. 2022

세 개의 섬, 첫 번째

여수 개도 백패킹

KTX를 몇 년 만에 타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오랜만에 가장 빠르고 좋은 열차를 타기로 했다. 이번엔 멀리까지 가야 하니까. 우리는 여수에서 3박 4일 동안 세 개의 섬을 여행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 행선지는 여수 개도. 보통은 주차하기 좋은 백야도항에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여수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개도 화산항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열차가 정차하는 여수엑스포역에서 여수연안여객터미널은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여객터미널 앞에 여러 식당과 카페가 있어 우리는 식사를 하고 뱃시간까지 차도 한 잔 마시며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개도로 들어가는 티켓을 발권하고 배에 올랐다. 배들은 특이하게 좌석이 없고 온돌 바닥에 앉아 가는 형식의 배가 많다. 하지만 여객실에 사람이 가득 차 커다란 배낭을 들고 들어가 앉을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데크 위로 올라가 보았다. 데크 위에는 공원에 있을 법한 나무 벤치들이 잔뜩 놓여있었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가기로 했다. 바람이 강했지만 그런대로 있을만해서 바다 풍경을 실컷 보며 개도까지 향했다.

개도 화산항에 도착하자 내릴 준비를 하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그는 얼결에 양손에 어르신들의 짐을 한가득 들고 배에서 내렸다. 때맞춰 기다리고 있는 마을버스에 짐을 옮겨다 드리고 우리는 청석포 해안까지 걷기로 했다. 마을버스를 타도 되지만 자그마한 섬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어 우리는 걷는 쪽을 택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삼거리가 나와 주춤하는 사이 길가에 개도 주조장이 보였다. 주조장에 들러 유명한 개도 막걸리를 한 병 샀다. 막걸리를 사고 나자 더위에 막걸리의 찬기가 가실까 봐 걸음을 서두르게 되었다.


청석포 해안으로 가는 길은 조용했다. 다음날 아침 도착하는 사람들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개도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백패커들은 아침 일찍 들어오는 배를 타고 오시는 것 같았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속속들이 도착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이미 너무 늦게 청석포 해안에 들어서는 셈이었다. 그래서 박배낭을 메고 걷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늦은 줄도 모르고 다소곳한 섬의 풍경에 시선을 두느라 자꾸만 걸음이 느려졌다.

그렇게 1시간 남짓 걸어 박지가 있는 청석포 해안에 도착했다. 우리가 가장 늦게 도착하여 텐트를 칠 자리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바닥이 판판하고 텐트를 설치하기 좋아 보였는데, 막상 와서 박지를 둘러보니 지면이 울퉁불퉁하고 기울어진 곳이 많아 생각보다 좋은 자리가 많지 않았다. 나는 높은 자리에 텐트를 칠 생각으로 이곳에 왔지만 이미 자리가 없어 옆으로 난 낮은 자리에 집을 지었다. 그래도 이곳은 자리에 관계없이 어디서나 멋진 풍경이 펼쳐져 보이는 곳이었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곳에서도 양쪽으로 굽어진 해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보여 부족함이 없었다.


생각보다 날이 더워 텐트를 펼치자마자 개도 막걸리부터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아직 시원함이 남아 있는 막걸리는 꿀맛이었다. 술을 잘 마시지 않기도 하지만, 마셔도 주로 맥주만 한 캔 마시는 정도였다. 캠핑 와서 막걸리를 마시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 달달한 맛이 피로를 풀어주는 듯 느껴졌다. 막걸리를 사 오길 참 잘했다고 재차 말하며 한 병을 금세 비웠다.

짐을 정리하고 나서 박지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는 바위틈에 자란 거북손을 발견하곤 손으로 콕콕 찔러보았다. 나는 이렇게 빼곡하게 자리 잡은 바다생물이 괜히 무섭고 징그러워 가까이 보지도 못하는데, 그는 어떻게 그렇게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할 수 있는지 나에게는 그가 신기해 보였다.


바다에는 놀거리가 많다. 각 진 바위 사이에 파도치는 바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그곳에 빡빡하게 자리 잡은 바다생물을 들여다보는 것, 돌멩이를 냅다 멀리 던져보는 것. 하나하나가 재미있는 놀이가 된다.

주변을 돌아보느라 해가 지고 나서야 텐트 안을 정리했다. 달빛이 밝혀주는 밤의 해안은 또 다른 인상으로 우리를 마주했다. 해가 져도 날이 따뜻하고 바람이 없어 텐트에 들지 않고 한참을 밖에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모기나 벌레도 많지 않았다. 기분 좋은 바닷바람만 오갈 뿐이었다. 자연으로 나오면 일찍 잠에 드는 우리인데도 파도소리만 가만히 듣다 보니 어느새 밤이 늦어졌다. 평소보다 늦게 잠에 들었다.

개도의 아침에는 요란한 새소리가 우리를 깨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텐트 밖을 내다보는 순간은 항상 새롭다. 내가 이렇게 멋진 곳에서 잠들었지 새삼 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텐트 지퍼를 올리자 너르게 펼쳐진 바다 풍경이 바로 보였다. 날씨는 맑고 하늘은 푸르렀다.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우리는 챙겨 온 비건 냉동 볶음밥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커피를 내려 마셨다. 백패커들 외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 여유로운 아침을 보낼 수 있었다.

아침 배를 타고 벌써부터 속속 도착하는 사람들을 거슬러 화산항으로 걷기 시작했다. 개도는 너무나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섬이었다. 항구로 걷는 길에 이 섬을 떠나야 하는 것이 너무 아쉬워 몇 번을 뒤돌아봤다. 박지도 멋진 곳이었지만 박지에서 항구까지 걸으며 봤던 작은 섬의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자란 식물들, 방목되어 풀을 뜯고 있던 소와 송아지, 잠시 우리에게 날아와 인사 나누던 무당벌레, 자그마한 마을의 아담한 집과 길가에 핀 다양한 꽃들까지. 모두 개도의 다채로운 풍경의 일부가 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시골의 버스정류장에는 항상 출처를 알 수 없는 의자가 놓여있다. 소파나 식탁의자 같은 것들 말이다. 누군가 버스를 기다리는 어르신을 위해 집에서 안 쓰는 가구를 가져다 놓은 것이겠지. 그런 의자들 덕분에 제각기 개성 있는 버스 정류장의 모습이 된다. 우리는 낡은 소파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걷던 길을 마저 걸었다.

항구에 도착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금오도. 개도에서 금오도로 가는 배표는 항구에서 직접 끊어야 한다. 금방 매진되곤 하는 서울의 버스와 기차에 익숙한 우리는, 현장 예매라는 말을 보고 괜히 마음이 불안해졌더랬다. 그런 우리와 달리 마을 사람들은 전혀 걱정 없는 얼굴로 매표소에 행선지를 말씀하셨다. 우리도 아무 문제없이 배표를 예매했다.

섬에서 섬으로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라 같은 배를 타는 것인데도 괜스레 마음이 설렜다. 섬사람이 다 된 기분마저 들었다. 배를 타는 것이 조금씩 익숙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어지는 금오도에서의 섬 여행을 기대하며 우리는 배에 올랐다.

300mm - https://youtu.be/KzBriQrzu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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