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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공 Jun 28. 2022

마이산이 좋아서 다른 산으로 갔다

진안 부귀산 백패킹

마이산이 보고 싶었다. 에펠탑이 보기 싫어 에펠탑에 있는 식당에 자주 갔다는 기 드 모파상의 일화처럼, 마이산에 가면 정작 마이산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마이산에서 가까운 작은 산을 찾았다. 진안 터미널 근처에 들머리가 있는 부귀산에 오르기로 했다.


마이산은 전북 진안에 위치한 산이다. 그 형태가 이름 그대로 말의 귀를 닮아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진안에 들어서면서부터 마이산의 모습이 바로 나타난다. 숫마이봉과 암마이봉, 두 봉우리가 양쪽으로 솟아오른 독특한 모습에 시선을 무한정 빼앗긴다. 차를 타고 지날 때는 금세 그 모습이 사라져 버려 잘 보지 못하고, 걸음을 멈추고 서서 바라보아도 건물에 가려져 일부밖에 보이지 않아 늘 마이산을 보고 싶은 나의 마음은 채워지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계획했다. 마이산을 원 없이 바라보기 위한 여행.


우리는 점심으로 가까운 분식집에서 비빔밥을 먹고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진안은 그의 시골집이 있는 곳이다. 그의 시골집은 진안 읍내에서도 한참을 차로 들어가야 있는 동향면 마을에 있다. 그곳 어르신들은 재미있게도 터미널이 있는 이곳 읍내를 오히려 ‘진안'이라 부르신다. ‘진안에 볼 일이 있다.’, ‘진안에 다녀온다'하는 식이다. 가장 번화한 곳이지만, 이곳 ‘진안'은 한 블록 남짓되는 규모밖에 되지 않는다. 조금 걸어 나오자 금세 가게나 식당의 모습은 사라지고 한적한 거리가 이어졌다.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진안 부귀산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작은 산이라 지도에서는 들머리를 찾기 쉽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군상 저수지를 지나 절골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는 글을 보고 일단 저수지를 향해 더듬더듬 걸었다. 저수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주차장이 나오고 그 너머에 부귀산 들머리 표지판이 보인다. 우리는 그곳을 통해 부귀산 등산로로 들어섰다. 부귀산은 자그마하고 어렵지 않은 산이다. 등산로도 걷기 좋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다만 계단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오르다 보니 다리가 피곤해졌다. 비 예보가 있는 날이라 그런지 산을 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산을 둘이서 걸었다.

바닥에 빵 반쪽이 떨어져 있었다. 누가 등산로에 빵을 버리고 간 줄 알았는데, 주워서 들어보니 빵 모양의 돌이었다. 길섶에 독특한 형태의 바위가 있어 손으로 더듬어 질감을 느껴보았다. 등산은 이렇게 자그마한 것들로도 재미를 찾는 시간이다. 평소에 스쳐 지나던 작은 것들에 시선을 두는 것이 좋다. 저절로 내 눈은 돋보기가 되고 길섶의 작은 생명과 자연을 들여다보느라 걸음을 자꾸 멈춘다.

계단을 오르느라 지쳐갈 때쯤 흙길이 잠시 끊어져 있고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이 길로 차가 다닐 수 있다니 조금 허무한 기분이 되었다. 아마 근처에 절이 있어서 그곳으로 이어진 도로인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건너편 등산로로 들어섰다. 이제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등산길을 조금 더 걷자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평평한 장소에 도착했지만 보이는 풍경이 없었다. 전망이 트여있지 않아 이곳이 정상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표지판에 부귀산 정상 0km라고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부귀산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 마이산을 보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조금 더 나아가야 했다. 우리는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우리가 고대하던 마이산이 나타났다. 말의 귀를 닮은 신비로운 형상의 마이산. 그는 태국의 암벽이 떠오른다고 했고, 나도 흔히 볼 수 없는 마이산의 모습에서 이국적 정취를 느끼고 있었다. 산 아래에서는 늘 어딘가에 가려져 온전한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마이산. 드디어 우리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마이산의 얼굴을 속 시원하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짐도 미처 풀지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마이산만 바라보고 섰더랬다. 진안은 대부분의 지역이 산간지역으로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위치해 진안고원이라 불린다. 그만큼 산세가 아름답고 드넓게 펼쳐져 있다. 마이산은 드리운 진안고원의 주인공이었다. 마이산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기 싫었다.

비 소식이 있고, 해 질 녘이 되어 텐트를 치기로 했다. 이곳은 텐트칠 공간이 넓지는 않았다. 공간이 넉넉지 않아 의자를 펴고 앉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모든 것을 텐트 안에 앉아서 해결해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의자를 괜히 챙겨 왔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늘 산에 올 때마다 챙기는 컵라면을 먹고 잠시 쉬고 나니 어느새 해가 졌다.


깜깜한 텅 빈 산에서 텐트를 밝히자 랜턴 불빛이 유난히 밝게 느껴졌다. 생각지 못했던 야경도 만났다. 잠시 후 예보대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일부터는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해서 진안에 머무는 3일 중 그나마 비가 적게 오는 오늘 부귀산에 오른 것인데 역시나 비를 만나게 되었다. 비를 만나서 싫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뻤다. 오랜만의 우중 캠핑이 좋았다. 텐트 안에서 빗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언제나 포근하고 편안하다.

우중에 무사히 밤을 보내고 아침이 밝았다. 다행히 비는 아침에 잠시 그쳐 우리가 짐을 정리할 시간을 내주었다. 그는 사실 이곳에 하루 종일 있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비가 더 쏟아질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서둘러 하산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텐트가 적당히 마를 정도의 시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날씨가 우리를 배려해주는 것 같았다.


하산을 시작하자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비나 우산을 챙기지 않았던 터라 그저 발걸음을 재촉할 밖에 방법이 없었다. 비 오는 숲 속의 냄새가 좋았다. 비에 젖은 나무와 풀과 흙은 자연의 냄새를 경쟁하듯 뿜어내고 있었다. 비는 우산 없이도 맞으며 걸을 수 있을 만큼, 딱 그 정도의 비만 내렸다. 덕분에 하산길이 덜 힘든 것처럼 느껴졌다. 수분기 머금은 잔잔한 바람이 선선해 걷기 좋았다. 그동안 비 오는 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싫었다. 집에만 머물며 창 밖만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백패킹을 시작하고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며 비가 오는 날도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금 번거롭지만 비 오는 날 옷이 젖어가며 걷고 머무는 것은 또 다른 추억을 남긴다. 뒷정리를 걱정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걷는 동안 빗방울은 조금씩 더 커지고 있었다. 서둘러야 하는데도 우리는 길가에 놓인 자연이 만든 풍경들에 자꾸만 눈길을 빼앗겨버렸다. 번개를 맞았는지 바짝 말라버린 키 큰 고목을 만났다. 푸르른 숲 사이에 하얗게 야윈 나무를 바라보고 섰다. 언제부터 이렇게 말라붙었을까. 잎은 다 말라버려 앙상하지만 나무는 여전히 그 생명의 아우라를 갖고 있었다.

그의 시골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차를 이용해서 가는 수밖에 없어서 진안 읍내에 어머님께서 마중을 나와주셨다.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시골집에 도착했다. 시골집에는 장이 가득 담긴 정겨운 장독대, 볕이 잘 들어 빨래가 금세 마르는,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 아기자기한 시골의 정서들이 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와 나는 집 앞 평상에 앉아 용담호 안개가 드리우는 산세를 바라보며 쉬었다.


300mm - https://youtu.be/XWd9Fj8Nz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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