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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공 Sep 07. 2022

울릉도, 두 번째

비가 그치고 해가 비춘다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 내린다. 우리는 우중에 물놀이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휴대폰과 작은 우산 하나만 들고 털레털레 식당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이대로 나리분지로 향하게 될 줄은 몰랐다.

현포에 맛있는 중국집이 있다고 하여 그곳으로 갔다. 하지만 식당은 문을 닫는 날이었다. 그렇다면 울릉도 음식인 따개비밥을 먹어보자며 바로 옆에 있는 식당의 문을 열었지만 옆집의 문도 닫혀있었다. 우리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서 딱 한 군데 문 열린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이번 여행은 식당까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식사를 하며 오후에는 뭘 할지 이야기 나누었다. 내일부터는 비가 오지 않으니 가보고 싶었던 곳들은 내일로 미루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우리는 가까운 천부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나리분지에 가보기로 했다. 버스 배차간격 때문에 지도 어플에서 왕복 5시간이 나왔다. 우리는 고민하다 일단 버스를 환승할 수 있는 천부로 가보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천부에 가면 나리분지로 가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도착해서 확인해보니 마침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과 맞아떨어졌다. 왕복 5시간이라던 정보가 무색하게 버스는 바로 출발했다. 버스 기사님은 익숙한 듯 굽이굽이 꺾어진 길을 유려하게 운전하여 올라가신다. 나리분지에 도착하자 승객들이 모두 내렸다. 잠시 휴식하시려던 기사님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어오셨다. 계획 없이 나리분지까지 올라온 우리는 대답을 못하고 주춤주춤 했다. 기사님은 마을보다는 성인봉 원시림 쪽으로 산책해보라고 하셨다. 우리는 버스 기사님 말씀대로 숲을 향해 걸어보았다. 

비가 다시 거세졌다. 울릉도의 유일한 평야지대 나리분지를 둘러싼 산에는 구름이 멋지게 내려앉았다. 날이 흐렸지만 그 모습이 운치 있더라. 

우리는 잠시 근처 정자에 앉아 비를 피하고 있다가 식당으로 가 전과 막걸리를 먹기로 했다. 나리분지 마을 안에는 몇 개의 식당이 비슷한 메뉴를 팔고 있다. 그중 한 곳에서 산채전과 나리분지에서만 판다는 막걸리를 한 병 시켰다.

계속 비가 내려 나리분지를 더 둘러보기는 어려웠다. 식당 사장님께서 알려주신 버스시간에 맞춰 작은 마을을 조금 걷다가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왔다. 나리분지를 오가는 버스는 한 대 뿐인 것 같았다. 우리는 올라올 때 짧게 말씀 나눴던 같은 기사님의 버스를 다시 타고 천부에서 내려 현포로 돌아왔다. 


백패킹을 하면 노을을 바라보는 시간이 있어 좋다. 노을은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도시에 있는 동안은 언제 해가 졌는지 알아챌 겨를도 없이 밤이 찾아온다. 노을을 바라보는 일은 내 마음의 여유를 확인하는 일이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멀리 오징어배들이 나왔다. 그들의 일상은 이제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았다. 오징어배의 밝은 불빛이 곁에 보이는 거대한 대풍감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우리는 한참 해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가 잠에 들었다.

드디어 날이 개었다. 맑은 울릉도를 볼 생각에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이 설레었다. 우리는 밝은 바닷속을 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물속으로 들어갔다. 햇빛이 물결치는 바닷속은 한 껏 더 투명하고 아름다웠다. 4 ~ 5미터쯤 되는 깊이인데도 물 밖에서 바닥이 투명하게 비쳐 보여 아주 얕은 바다처럼 보였다. 우리가 눈뜨자마자 바다에 들어갈 생각부터 하게 된 이유였다.

물놀이를 마치고 짐을 싸기 전에 이틀 동안 비에 젖은 텐트와 물건들을 햇볕에 널어 말렸다. 강렬한 태양빛에 바짝 마르는 물건들을 보고 있으니 내 기분도 뽀송뽀송해졌다.

같은 풍경인데도 맑게 개인 하늘 아래 바라보는 풍경은 또 다른 인상이 느껴졌다. 비가 오는 것도 해가 뜨는 것도 모두 여행의 일부라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날씨는 여행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 여행의 색깔을 정하는 날씨. 어제까지의 울릉도가 짙은 잿빛이었다면 오늘의 울릉도는 맑은 하늘색으로 보였다. 

우리는 관음도로 왔다. 투명한 울릉도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섬. 입장료를 내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절벽 위로 올랐다. 파도를 온몸으로 받고 있는 해식애가 마주 보고 있었다. 바다 위로 두 절벽을 연결하는 파란 다리가 놓여 있다. 우리는 다리를 건너 관음도로 들어섰다. 관음도에는 적당히 산책하기 좋은 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걸음마다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풍경에 맞춰 시선을 돌렸다.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걷는 시간이 좋았다. 지난 이틀 동안 계속해서 비가 내렸더랬다. 빗 속에서 고생했던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햇빛 아래에서 비로소 선명한 울릉도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작은 섬 관음도는 조금씩 각도를 틀 때마다 서로 다른 풍경을 선물했다. 우리는 느린 걸음으로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모자도 깜빡하고 두고 왔는데, 생각보다 더 뜨거운 햇볕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밝게 비추는 강렬한 햇빛에 빠져 온몸을 태양볕에 맡겼다. 햇빛을 만끽했다. 비가 그친 후 만나는 태양이 그렇게 고맙고 반가울 수 없었다. 맑게 비추는 햇빛 아래에서 울릉도의 해식애는 더 선명해지고, 그 바다는 더 투명해졌다.

햇빛을 너무 좋아한 탓일까. 한참을 걷고 나자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비 오는 울릉도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아침엔 스노클링, 오후엔 뙤약볕에서 트레킹을 마치고 나자 몸이 무거워졌다. 오늘 저녁엔 저동에 숙소를 잡고 쉬기로 했다. 처음 울릉도에 도착해 배에서 내렸던 저동항에 오자 비로소 우리는 울릉도를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본 셈이 되었다.


숙소에 짐을 놔두고 바로 나와 걸었다. 저동에는 행남해안산책로가 있다. 깎아지른 울릉도의 해안절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산책로였다. 태풍 피해로 공사 중이라 중간까지 밖에 걷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웅장하게 솟은 암벽 틈새로 파도가 들이쳤다 빠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걸었다.

저동은 항구가 있는 곳이라 도착하자마자 떠나기 급급했다. 하지만 다시 만난 작은 항구마을 저동의 모습은 이곳에 머물고 바라보기 충분하더라. 이곳에 숙소를 잡으러 오지 않았더라면 놓칠 뻔했던 풍경이었다. 저렴한 숙소를 잡았는데도 창문에서 촛대바위가 바라보이는 이곳 저동. 작은 마을을 둘러싼 산에는 구름이 멋들어지게 걸려 있고, 마을 주민들은 마주치는 사람마다 서로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다. 작은 마을에 사는 것은 어떤 삶일까 한 번 머리에 그려 본다. 


행남해안산책로에서 돌아 나오면 바로 촛대바위가 시선을 빼앗는다. 울릉도의 바위들은 계속해서 바라보게 된다. 버스를 탈 때도, 해안가를 걸을 때도 계속해서 마주치는 바위들인데도 매번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빼앗긴다. 울릉도 해변에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은 저마다의 분위기가 있다. 우리는 불이 밝혀진 촛대바위를 실컷 바라보며 맥주를 한 잔 하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다.


300mm - https://youtu.be/TWkAFK0S3h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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