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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아트 Jan 14. 2020

냉전시대 분단의 문 평화의 상징이 되다

<4> 독일의 브란덴부르크 문

동·서독 가르는 베를린 장벽의 중심 

냉전시대 분단의 문 평화의 상징이 되다


1791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때 건립
승전 후 첫 통과한 인물은 나폴레옹

                    

꼭대기에 있는 쿼드리가사진=픽사베이


베를린에는 동·서독으로 갈라져 분단과 냉전을 거쳐온 독일의 현대사가 곳곳에 배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베를린에서 과거 흔적을 찾기 힘든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공습으로 도시가 거의 황폐화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현대 전쟁사가 그대로 함축된 건축물이 있다. 바로 베를린 프리저 광장 앞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이다. 이 문은 거대한 사암으로 지어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개선문이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개선문

독일은 신성로마제국 아래 수백 개의 크고 작은 나라로 천 년을 이어왔다. 프로이센도 독일의 통일을 꿈꾸는 여러 연방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1734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브란덴부르크를 프로이센 왕국으로 승격하고 베를린을 수도로 지정했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선왕이 이룩한 업적을 과시하고 평화를 상징하고자 1788년 축조해 1791년 완공했다.

건축가 칼 고트하르트 랑한스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로의 프로필라이아(Propylea, 열주문)를 참고해 브란덴부르크 문을 건립했다. 이 문의 높이는 26m, 가로 길이는 65.5m, 세로 길이는 11m이다. 12개의 도리아 양식 기둥이 받치고 있다. 1793년 문 꼭대기에 조각가 요한 고트프리트 샤도가 그리스 여신 에이레네와 그녀를 끄는 청동 말 네 마리의 전차 상인 쿼드리가(Quadriga)를 조각했다. 쿼드리가는 전쟁사에 따라 놓이는 방향이 여러 번 바뀌었다. 최초의 쿼드리가는 평화를 기원하며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19세기 후반 서쪽에 있는 프랑스 군대에 승리하겠다는 의미로 서쪽을 향하도록 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평화의 의미로 다시 동쪽으로 돌려놓았다. 동·서독으로 분단 후 동독은 서독을 향해 있다는 이유로 서쪽으로 바꾼다.


나폴레옹, 쿼드리가 약탈…패망 후 반환

브란덴부르크 문을 세운 뒤 전쟁에서 승리하고 처음으로 통과한 인물은 다름 아닌 나폴레옹이었다. 1805년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를 아우스트리츠 전투에서 이긴 후, 10월 14일 프로이센 군대와의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승리했다.

1806년 10월 27일 나폴레옹은 군대를 이끌고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베를린 궁전까지 행군했다. 게다다 쿼드리가를 전리품으로 루브르박물관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1813년에 나폴레옹이 라이프치히에서 프로이센에 패배한 후, 1814년 프로이센의 퓨엘 장군이 쿼드리가를 되찾아왔다.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던 광장의 본래 이름은 사각형이라는 뜻의 피어에크(Viereck)였으나 나폴레옹을 폐위시킨 기념으로 프랑스 파리를 뜻하는 파리저 광장(Pariser Platz)으로 바꾸게 된다. 또한 프로이센은 보불전쟁(1870~1871)에서 프랑스에 승리한 후 베르사유 궁전에 입성해 나폴레옹에게 당한 굴욕에 대한 통쾌한 복수극을 치른다. 이후 브란덴부르크 문은 개선문 역할을 맡아 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이나 독일군이 반드시 지나가는 장소이자 군대의 강인함을 표현하는 상징이 됐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군은 이 문에서 개선식을 열었다. 비록 패망했지만 영토를 한 평도 잃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1933년 집권한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행군하는 군사들로 하여금 이 문을 지나가도록 했다.

                    

독일이 통일된 오늘날 베를린의 상징이 된 브란덴부르크 문. 꼭대기에 있는 쿼드리가(원 안)는 전쟁사에 따라 놓이는 방향이 여러 번 바뀌었다. 사진=픽사베이


전쟁으로 기둥·쿼드리가 등 손상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동안 베를린은 연합국의 공습과 시가전으로 무참히 파괴됐다. 브란덴부르크 문 역시 온통 잿더미로 변했다. 기둥 곳곳이 총알과 포탄 파편으로 손상됐으며 쿼드리가의 사두마차 상 중 한 마리를 제외한 세 마리 말의 머리가 훼손됐다. 무너지지 않았던 브란덴부르크 문의 운명은 종전 후 냉전의 시대를 맞아 크게 요동친다.

독일의 항복을 받아낸 연합국은 1945년 8월 포츠담회담에 따라 베를린을 네 구역으로 나눴다. 베를린이 동서로 분단돼 동베를린은 독일 민주공화국(동독)이 되고 서베를린은 독일 연방공화국(서독)에 편입된다. 이로써 동·서 베를린의 경계에 위치한 브란덴부르크 문은 독일 분단과 냉전을 최전선에서 상징하는 관문이 됐다. 독일 분단 시절에도 일반인들이 동·서 베를린을 왕래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협정했지만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허가받은 사람만이 이 문을 통해서 왕래할 수 있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독이 세운 8개의 검문소 중 하나이자 중심이었다.


                    

1989년 11월 10일 서독의 시민들이 베를린 장벽 위에서 베를린 장벽이 열리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 사진=rarehistoricalphotos.com.

1989년 베를린 장벽 무너지고 통일


‘금단의 문’이었던 28년의 세월을 지나 1989년 11월 9일 약 10만 명의 인파가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운집한 가운데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며 서독과 동독이 하나가 되는 걸 지켜봤다. 1989년 12월 22일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가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동독의 한스 모드로프 총리와 역사적인 악수를 나눴다. 모드로프 총리는 연설을 통해 “전쟁의 불타는 악취는 더 이상 이곳에 없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평화의 문이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었던 이 문은 다시 평화의 상징이 됐다.


올해는 브란덴부르크 문을 둘러싸고 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장벽은 무너졌지만 독일의 기틀이 된 프로이센의 상징이자 독일 분단과 냉전 그리고 통일을 상징하는 브란덴부르크 문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보며 분단된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한반도에는 언제쯤 통일과 평화가 찾아올 것인가.


<이상미 이상미술연구소장>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칼럼은 국방일보 2019년 7월 22일 월요일 기획 15면에 게재됐습니다.)


원문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90722/1/BBSMSTR_000000100082/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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