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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아트 Jan 17. 2020

붉지 않은 ‘붉은’ 광장, ‘승전의 영광 함께하다’

<7> 러시아의 붉은 광장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중심부에 위치
1493년 크렘린 성벽 주위 철거해 조성
성 바실리 대성당·주코프 장군 동상 눈길
나폴레옹·히틀러 이기고 승전 행사 열려

                    

붉은 광장은 단순히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색이나 크렘린의 붉은 벽돌 때문에 붙여진 이름은 아니다. ‘붉은’을 뜻하는 러시아어에는 ‘아름다운’이라는 의미도 있다. 사진=픽사베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는 붉은 광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러시아 역사의 중대한 사건이 많이 벌어졌다. ‘조국전쟁’이라 불리는 1812년 나폴레옹과의 전쟁, ‘대조국전쟁’이라 불리는 1941~1943년 나치 독일과의 제2차 세계대전 등을 붉은 광장은 모두 함축하고 있다. 성 바실리 대성당을 비롯해 붉은 광장에 있는 여러 건축물도 전쟁을 통해 지어졌다.


‘붉은’은 ‘아름다운’이라는 의미


붉은 광장은 1493년 모스크바 크렘린 성벽의 주위 건물을 철거하면서 만들어졌다. 붉은 광장은 단순히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색이나 크렘린의 붉은 벽돌 때문에 붙여진 이름은 아니다. ‘붉은’을 뜻하는 러시아어는 ‘아름다운’이라는 의미도 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의 의미로 쓰였지만 추후 붉은 광장으로 불리며 ‘붉은’의 의미가 짙어졌다. 붉은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661~1662년경이다.

붉은 광장의 가장 넓은 부분의 너비는 100m, 길이는 500m가량이다. 붉은 광장은 크렘린 궁전을 도시와 분리하는 경계 역할을 한다. 모스크바의 주요 도로와 거리가 대부분 이 광장에서 뻗어 나간다.

                   

빅토르 바스네초프가 그린 이반 4세의 초상화. 사진=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갤러리 소장


1560년 전승 기념으로 성 바실리 대성당 세워

붉은 광장의 건축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성 바실리 대성당이다. 하지만 이 성당이 전쟁 승리를 기념해 지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1480년 이반 3세(1440~1505)가 몽골 타타르족인 킵차크 칸국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후 모스크바 공국(公國·군주가 아닌 공이 통치하는 소국)은 이반 4세(1530~1584) 시대에 대변혁을 이루게 된다. 이반 4세는 카잔 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성 바실리 대성당을 1560년에 세웠다. 성 바실리 대성당은 9개의 교회로 구성되는데 8개가 나머지 1개를 둘러싸고 있다. 정면에서 보면 8개의 탑으로 보이고 하늘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을 띤다. 독특한 지붕들의 모양은 하늘로 치솟는 불꽃을 의미한다.


나폴레옹의 침공 막아낸 이후 재건 추진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공통점은 영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상대하느라 전선을 지나치게 넓혔고 러시아를 침공해 모두 실패했고 결국 패망했다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1806년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영국과의 교역을 중지하는 대륙봉쇄령을 단행한다. 러시아가 영국과의 교역을 재개하자 1812년 6월 나폴레옹은 60만 명의 대병력을 투입해 러시아 원정을 시작한다. 러시아군이 퇴각 전략으로 프랑스 군의 병참선을 연장시키자 프랑스 군은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철수했다.


러시아는 나폴레옹 군대를 퇴각시킨 후인 1813년부터 주위 건물들을 철거하면서 붉은 광장의 재건을 추진한다. 알렉산드르 1세의 명으로 재건 작업을 설계한 건축가 오시프 보베는 알렉산드로프 정원을 비롯해 붉은 광장의 맞은편 건물도 제국 양식으로 신축했다.

                    

붉은 광장 입구에는 있는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의 기마상.사진=픽사베이


독일의 침공 막아낸 주코프 장군의 동상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전 소련과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경험했던 동서 양쪽에 걸친 정면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치 정권의 전쟁 목적은 독일 민족의 ‘생존권’을 동방으로 확대하는 것이었고 히틀러는 훨씬 전부터 소련 정복을 꿈꿔왔다. 독일의 큰 번영을 위해 소련의 풍부한 자원을 이용하고 정치적으로 공산주의를 격멸하는 것이 목표였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은 독소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한다. 독일군은 단기간에 승리할 것을 확신하고 10월 모스크바에 다다르지만 겨울철에 접어든 후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지며 결국 패하게 된다.

당시 독소전쟁에서 소련군을 승리로 이끈 인물은 바로 게오르기 주코프(1896~1974) 장군이다. 1915년 러시아 제국 육군의 기병대에서 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소련 내에서 큰 존경을 받았다. 후에 소련의 원수라는 최고직까지 오른다.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 그리고 마침내 베를린 점령까지 해낸 빛나는 승리의 주역으로 평가받으며 유일하게 소련 국가 영웅 칭호를 네 차례나 받았다.

                    

1945년 6월 24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린 대대적인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식의 승리 퍼레이드의 모습. 사진=kykyryzo.ru


1945년 6월 24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린 대대적인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식은 소련군 장병이 도열하고 독일군으로부터 빼앗은 군기를 헌정하는 자리였다. 스탈린은 소련군 최고 사령관으로서 열병하기 위해 사열대 계단을 내려와 백마를 타고자 했는데 이때 백마가 앞발을 들고 일어나 스탈린의 승마를 두 차례에 걸쳐 거부했다. 이에 스탈린은 사열관 임무를 주코프에게 양보했다. 이때 주코프가 사열하던 모습은 붉은 광장 입구에 설치된 주코프 장군의 기마상에 그대로 담겨 있다.


붉은 광장에서 군사 퍼레이드 거행

붉은 광장에서는 러시아의 조국전쟁과 대조국전쟁 승전 기념 군사 퍼레이드를 비롯해 많은 행사가 개최된다. 2007년부터 매년 국제 군악대 축제가 열린다.

우리나라 공군 군악대도 지난 2013년 붉은 광장을 찾아 자리를 빛냈다. 2010년에는 독일 패전 65주년을 기념하는 행진이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이 참가한 가운데 열리기도 했다. 올해 5월 9일에도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4주년을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가 성대하게 진행됐다.

붉은 광장은 러시아 전쟁사의 승리를 보여주며 오늘도 영광을 나타내고 있다. 다음 시간에는 붉은 광장과 맞닿아 있는 러시아의 중요 건축물, 크렘린 궁전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상미 이상미술연구소장>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칼럼은 국방일보 2019년 8월 12일 월요일 기획 15면에 게재됐습니다.)


원문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90812/1/BBSMSTR_000000100082/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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