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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아트 Jan 22. 2020

우뚝 선 넬슨 기념탑 영국 자부심도 ‘우뚝’

<10> 영국의 트라팔가르 광장

왕가 정원이었다가 광장으로 개발
트라팔가르 해전 승리 기념해 재조성
높이 52m 돌기둥 위에 5.6m 동상
노획한 프랑스군 대포 녹여 4사자상
제2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행사 열려
국가적 경사 때마다 모여 기쁨 나눠



트라팔가르 광장. 넬슨 기념탑은 광장 중앙에 1843년 세워졌다. 크기가 5.6m인 넬슨 제독 동상은 높이 52m에 달하는 둥근 돌기둥 꼭대기 위에 서 있다. 사진=픽사베이


런던 화이트홀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옆길에서 시작하는 약 1㎞ 길이의 도로다. 도로 양옆에는 재무부와 외교부,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국방부, 해군성이 있다. 그리고 이 거리 끝에 트라팔가르 광장(Trafalgar Square)이 있다. 런던 중심부에 있는 이 광장은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승리한 허레이쇼 넬슨(1758~1805) 제독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곳은 런던에서 사랑받는 명소 중 하나로 영국 내셔널 갤러리와 국립 초상화 박물관이 인근에 있다. 1945년 5월 7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일에 런던 시민들은 이곳에서 승리를 기념했고 이후 런던 시민들은 국가적 경사가 있을 때 트라팔가르 광장에 모인다.


1829년 만들기 시작 1844년부터 공개

트라팔가르 광장이 있는 자리는 에드워드 1세(1239~1307) 왕가의 정원이었다. 이후 1826년 조지 4세(1762~1830)가 건축가 존 내슈에게 광장으로 개발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1830년 즉위한 윌리엄 4세(1765~1837)의 이름으로 불렸지만 1835년 건축가 조지 리드웰 테일러가 트라팔가르 해전과 관련 있는 공간을 제안하면서 트라팔가르 광장으로 불렸다. 광장은 1829년 만들기 시작해 1841년 완성됐고 1844년 문을 열었다.

영국 해군의 영웅

넬슨은 1758년 9월 29일 영국 노퍽에서 11남매 중 6번째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에 형제·자매 중 5명이 유명을 달리했고 어머니마저 9살 때 세상을 떠났다. 어린 넬슨은 아버지 에드먼드의 훈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겨우 12살 되던 1770년 영국 해군 전함 레이저너블 호에 실습사관으로 승선하면서 해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넬슨은 1780년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하고 지중해와 대서양에서 프랑스 혁명정부의 함대와 싸우는 데 앞장섰다. 1794년 프랑스 나폴레옹의 고향인 지중해 북부 코르시카 섬을 점령했으나 이때 오른쪽 눈을 잃었다. 또 1797년 세인트빈센트 해전에서는 오른팔을 잃는 투혼으로 조국에 승리를 안겼다. 그는 부상에 굴하지 않고 군 복무를 이어 나가며 1798년 이집트 나일강 입구의 아부키르만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넬슨 동상은 오른쪽 팔이 가늘고 칼도 왼손으로 잡고 있다. 부상으로 오른팔을 잃은 것을 동상에 표현했다. 사진=픽사베이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 트라팔가르 해전


트라팔가르 해전은 1805년 10월 21일 스페인 남서쪽의 트라팔가르(스페인 지명) 곶에서 영국 해군과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가 벌인 전투다. 이 전투는 살라미스 해전과 칼레 해전, 한산도 대첩과 더불어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로 꼽힌다. 트라팔가르 해전이 발발한 배경에는 나폴레옹의 영국 본토 침공계획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투에서 넬슨 제독이 지휘하는 영국 왕립해군 소속 27척의 함선들은 프랑스의 빌뇌브 제독이 지휘하는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 소속 함선 33척과 전투를 치러 아킬리호 한 척만 침몰하고 연합함대 18척을 나포하는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평생 174회의 해전을 치렀던 넬슨 제독은 이 전투 도중 프랑스 전열함 르두터블에서 날아온 총탄에 맞고 치명상을 입어 47세를 일기로 전사했다. 넬슨의 유해는 본국으로 송환돼 장례식이 확정될 때까지 그리니치 해군병원에 안치돼 있다가 1806년 1월 세인트폴 대성당에 안장됐다.


넬슨 기념탑 아래에는 1867년 건축된 넬슨 기념비를 떠받치고 있는 형상의 4마리의 사자 동상이 있다.  사진=픽사베이

빅토리호 돛대와 같은 57m 높이


넬슨 기념탑은 트라팔가르 광장 중앙에 1843년 세워졌다. 크기가 5.6m인 넬슨 제독 동상은 높이 52m에 달하는 둥근 돌기둥 꼭대기 위에 서 있다. 넬슨 기념탑의 높이는 넬슨 제독 동상까지 포함해 총 57m다. 이유는 트라팔가르 해전 당시 넬슨 제독이 탑승했던 기함 빅토리 호의 돛대(배 위에 세운 기둥으로 돛을 설치하기 위한 시설) 높이와 같게 하기 위함이었다. 죽어서도 프랑스를 감시할 수 있는 높은 곳에 올려달라는 넬슨의 유언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넬슨 제독은 멀리 영불해협을 바라보고 있다.


기념탑 아래에는 넬슨 기념비를 떠받치는 형상의 4마리 사자 동상이 1867년 건축됐다. 사자는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동물로 사자 동상 한 마리 무게는 약 7톤이다. 특히 이 사자 동상은 트라팔가르 해전 승리를 기념하는 뜻으로 노획한 프랑스 대포를 녹여서 만들었다. 넬슨 기념탑의 하단에는 나일강 입구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한 장면을 비롯해 넬슨 제독이 거둔 승리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승전 후 트라팔가르 광장에 나와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런던 시민들의 모습. 사진=standard.co.uk

크리스마스 트리 선물


유럽에서는 제1·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참전으로 전쟁을 끝내는 데 도움을 준 국가의 수도나 관련된 도시에 성탄 트리를 선물하는 풍습이 생겼다. 그 풍습을 따라 노르웨이 오슬로시는 영국에 감사의 뜻으로 1947년부터 매년 크리스마스 트리를 트라팔가르 광장으로 보내고 있다. 독일 나치는 1940년 4월 9일 노르웨이를 공격해 6월 10일 점령하며 노르웨이 전역으로 불리는 전투를 시작한다. 당시 노르웨이 정부의 도움 요청을 받은 영국이 원정군을 파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노르웨이 왕실과 정부는 영국 런던으로 망명했고 노르웨이인들은 레지스탕스를 조직해 나치에 저항했는데 영국은 이들을 지원했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는 그때의 고마움의 표시로 매년 12월 1일 노르웨이 전나무를 하나씩 잘라 영국의 수도 런던으로 전하고 있다. 그 트리는 트라팔가르 광장에 설치돼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트라팔가르 해전이 일어난 지 200년이 넘었지만, 영국인의 마음속에 넬슨 제독은 영원한 영웅으로 살아 숨 쉰다. 트라팔가르 광장이 런던 중심부에 있는 데다 일상의 공간으로서 영국 시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애국심을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중심 광화문 광장에도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지만, 그저 동상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이상미 이상미술연구소장>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칼럼은 국방일보 2019년 8월 26일 월요일 기획 15면에 게재됐습니다.)

원문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90826/1/BBSMSTR_000000100082/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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