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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아트 Apr 06. 2020

6개 섬 이은 해상요새…강대국의 거친 풍파 견뎌내다

<40> 핀란드의 수오멘린나 요새

스웨덴·러시아 등 무수한 외세 침입
핀란드 독립 후에도 내전 주요 무대
다양한 건축양식 섞인 군사건축물
성벽·무기 등 군사 시설 남아 있어
매년 10만 명 찾는 관광지로 각광

                                                        

수오멘린나 요새 전경. 사진=www.itinari.com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배로 20분 걸리는 수오멘린나 요새는 스웨덴과 러시아, 핀란드의 군사 건축양식이 섞여 있는 건축물이다. 18세기 핀란드를 지배하던 스웨덴이 러시아의 침공을 막기 위해 6개의 섬을 연결하는 대공사 끝에 완성한 이곳은 스웨덴 함대의 출격 장소 및 연안 경비 기지로 사용되다가 1809년 러시아가 핀란드를 점령하면서 110년 가까이 러시아의 해군기지로 이용됐다.

러시아 점령기에 일어난 크림전쟁(1853~1856) 때 요새는 영국과 프랑스 함대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핀란드가 독립한 후에 요새는 핀란드 내전(1918)의 포로를 가두는 수용소가 됐는데, 1973년 모든 군사 시설 및 부대가 철수했으며 현재 핀란드 해군사관학교만이 남아 있다. 6㎞의 성벽과 190여 채의 건물이 보존돼 있는 이 섬에는 9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요새는 박물관, 공원, 관광 안내소, 레스토랑 등 관광지의 기능을 하고 있다.  


1756년 화가 올로프 아레니우스(Olof Arenius)가 그린 스웨덴 제독 오귀스탱 에렌스베르트의 초상화. 사진=www.the-athenaeum.org


12세기부터 지배받아온 스웨덴에 의해 18세기 건설

북유럽 발트해 연안에 있는 핀란드는 서쪽으로 스웨덴, 동쪽으로 러시아 등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1155년 스웨덴의 십자군에 정복돼 스웨덴의 일부로 병합된 뒤 19세기 초까지 지배를 받았다.

18세기 초 스웨덴은 러시아와의 대 북방전쟁(1700~1721)에서 패배하면서 강대국의 지위를 상실한 후, 1721년 핀란드에서 뉘스타드 조약을 체결해 러시아에 동부 국경 지역인 에스토니아, 리보니아, 잉그리아, 카렐리야의 일부를 할양(땅이나 물건 따위를 한 부분 떼어서 남에게 넘겨줌)했다.

1747년 스웨덴 의회는 러시아의 팽창주의 정책에 맞서 핀란드의 동쪽 국경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헬싱키 외곽의 섬에 요새를 건설하기로 결정했으며 1748년부터 스웨덴 제독 오귀스탱 에렌스베르트(1710~1772)의 감독 아래 건설이 시작됐다.


수오멘린나 요새 전경. 사진=www.visitcastles.eu


포병장교였던 에렌스베르트는 헬싱키의 특수한 지리적 특징에다 당대를 대표하는 요새 축성 기술자 프랑스 군인 보방의 군사 요새 이론을 적용했다. 에렌스베르트는 1772년 사망할 때까지 헬싱키 인근의 쿠스탄미에카 섬, 수시사리 섬, 이소무스타사리 섬, 피쿠무스타사리 섬, 랜시무스타사리 섬, 롱외렌 섬 등 6개의 섬을 연결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요새 건설은 18세기 말에서야 완성됐다.

이 건축물은 말 그대로 요새를 뜻하는 스웨덴어인 ‘스베아보리(Sveaborg)’라고 부른 반면 핀란드 병사들은 ‘비아포리(Viapori)’라고 칭했다.

수오멘린나 요새 군사박물관의 전시 전경. 사진=수오멘린나 요새 공식 홈페이지


러시아가 핀란드 전쟁으로 스웨덴 몰아내고 19세기 초 점령


러시아는 1808년 2월부터 스웨덴과 핀란드 전쟁(1808~1809)을 벌여 핀란드를 정복했다. 전쟁 동안 요새의 핀란드군은 거의 저항하지도 않고 러시아 군대에 항복했다. 1809년 핀란드가 러시아 내 대공국에 속한 자치령이 되면서 요새는 러시아의 군사기지가 됐다.


러시아 점령 이후 헬싱키가 1812년 핀란드 대공국의 수도가 되면서 요새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곳의 주요 임무는 헬싱키에서 러시아의 세력을 유지하고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1908년 수오멘린나 요새에서 촬영된 러시아 군인들. 사진=www.suomenlinnatours.com


크림전쟁 때 영국과 프랑스 연합 함대의 포격받아


러시아가 오스만튀르크를 상대로 크림반도와 흑해를 둘러싸고 벌인 크림전쟁(1853~1856) 때 요새는 또다시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러시아에 적으로 돌아선 영국과 프랑스 연합함대는 1855년 8월 요새를 향해 47시간 동안 2만1000발의 함포 사격을 퍼부었고, 요새는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폭격을 받으며 큰 피해를 입었다.


러시아 점령기에 설치된 대포는 쿠스탄미에카 섬의 언덕 위에 여전히 남아 있다. 사진=www.suomenlinnatours.com.


독립 후 내전 휘말리며 포로수용소로 사용


20세기가 되면서 요새는 핀란드 현대사의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1917년 11월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면서 핀란드는 12월 6일 러시아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하지만 신생 독립국 핀란드 내에서 사회민주당이 이끄는 적군과 반사회주의적 핀란드 원로원이 이끄는 백군으로 나뉘어 1918년 1월 27일부터 5월 15일까지 핀란드 내전이 발발했다. 요새는 내전 때 포로로 잡힌 공산주의자들을 가두는 수용소로 사용됐다. 약 1만 명에 달하는 포로가 수용됐고, 그중 10%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했다. 1918년 5월 12일 쿠스탄미에카 섬에 핀란드 독립을 알리기 위한 핀란드 깃발이 세워진 후 요새의 이름은 핀란드어인 ‘수오멘린나(Suomenlinna·핀란드의 성채)’로 바뀌었다.


1918년 핀란드 내전 때 포로 수용소로 사용된 수오멘린나 요새. 사진=finna.fi


이후 요새는 다양한 핀란드 국방 부대를 수용하는 수비대 역할을 했다. 제1차 러시아-핀란드 전쟁(1939)이 발발하자 이곳에는 대공 및 포병 부대가 주둔했고 제2차 러시아-핀란드 전쟁(1941~1944) 이후 소수의 부대만이 남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요새는 잠수함 함대의 기지와 헬싱키의 공중감시 기지로 사용됐는데 단 한 차례 러시아 공군의 폭격을 받았다.


1960년대 중반 핀란드 국방부는 요새를 완전히 비울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1972년 해안 포병 연대가 이주하자 요새는 행정부로 넘어갔다. 1963년부터 관광지와 휴양지로 이용돼 왔던 수오멘린나 요새는 매년 10만 명이 찾아와 스웨덴, 러시아 점령기부터 핀란드 내전까지의 아픈 역사를 보여준다.


<이상미 이상미술연구소장>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칼럼은 국방일보 2020년 4월 6일 월요일 기획 15면에 게재됐습니다.)


원문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200406/1/BBSMSTR_000000100082/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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