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시는 어떤 것이 될까?
갑자기 입천장이 아프다. 벌에 쏘인 것 같기도 하고 치과 치료할 때 마취제를 놓은 것처럼 얼얼하다. 하루가 지나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증상을 검색했다. 구강작열감 증후군. 작열감이라는 표현이 적나라하다. 증상은 분명한데 분명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이 증후군이란다. 보통 중년 여성에게 일어난다는 증상이 왜 가만히 앉아있다가 생겼는지 생각해 보았다. 지난 사흘 간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고 수면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이 정도 스트레스는 항상 있고 부족한 잠은 주말에 몰아 자면 될 테니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렇게 몸이 반응하니 무척 당황스럽다.
1989년에 제작된 ‘죽은 시인의 사회’가 재개봉했었다. 코치 선생님들과 반강제 웍샵을 핑계로 함께 보았다. 30여 년 전과 지금. 동양과 서양. 세대가 다르고 문화도 다른 데,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동일하게 아팠다. 이것은 무슨 증후군인 것일까. 키팅 선생님이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기를 두려워하는 토드를 격려한다. 카메라 앵글이 가장 격정적으로 돌았던 그 장면은 ‘자신에게 진실할 수 없었던’ 학생이 ‘자신에게 진실한’ 날 것의 표현 그대로 뿜어내는 모습을 조명한다. 키팅 선생님은 ‘오늘 수업을 기억하라’라며 한 손으로 토드의 얼굴을 감싸고 두 눈을 보며 말한다. 변하지 않는 현실에 쫓기든 학교를 떠나던 키팅 선생님에게 토드는 가장 먼저 진실하게 소리쳤다. ‘오 캡틴 마이 캡틴’.
카르페 디엠. 키팅 선생님의 속삭임은 자신에게 진실한 모습으로 오늘을 살라는 도전이다. 자신에게 ‘누완다’라는 새 이름을 주고 부르던 찰리. ‘누완다’라 불러 달라 장난스럽게 말하지만, 교장의 강요된 자술서에 끝까지 서명하지 않고 퇴학을 당한 유일한 학생이었다.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 시와 미 낭만과 사랑은 삶의 목적이다. 네가 여기에 있다는 건, 삶이 존재하고 네가 존재하는 것.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너희 시는 어떤 것이 될까?’
삶의 유지에 필요한 의학, 기술, 법률, 경제 활동에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양산되는 것이 삶의 목적일 수는 없다. 우리 집 강아지 ‘보스’는 내가 오라고 하면 온다. 아내가 만들어준 말린 닭발을 맛있게 먹다가도 기다리라 하면 기다린다. 집으로 들어가라 하면 들어간다. 말을 잘 듣는 것이 귀엽지만 보스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학생들은 강아지와 다르지만, 이유를 묻지 않는 보스와 그들이 겹쳐질 때면 마음이 쓸쓸하다. 보스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 학생들은 강아지와 다르다. 그들이 역사라는 멋진 연극 무대에 자신에게 진실했던 한 편의 시로 남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냥 흐르는 대로 목적 없이 살기에는 주어진 한 번의 삶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