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니?

by 재희
죽을 때가 되어서, 죽음을 코 앞에 두고서, 죽기 직전에 당황하고 싶지 않다

작년 여름, 고속도로에서 조수석 뒷바퀴가 파열되어 스핀하는 팽이처럼 뱅그르 돌아, 뒤에서 오는 차들을 마주 보는 역방행으로 가드레일 옆에 가까스로 멈췄다. 회전하는 차 안에서 이렇게 죽는 건가 싶었다. 갓길에 멈춰진 차 안에서 손발이 후달거리던 기억이 선명하다.

차사고가 있기 몇 주 전에 서초동 토플학원에서 강사일을 시작하게 도와줬던 박형이 죽었다. 카톡으로 온 본인의 부고안내. 등산 중 실족사. 항상 멋진 수트를 입고 다니던 박형. 누구보다 딸들을 사랑했던 박형. 아젠다없이 만나 고기 사주던 박형. 항상 응원과 격려만 주었던 박형. 몇 해 전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박형이 더 많이 생각난다. 한국을 떠나기 전 해야 할 일을 가득 적어놓았던 to-do 리스트에 박형 만나는 것이 남아있다. 만남을 미뤘던 것이 너무 아쉽다.


박형이 떠난 다다음날, 40대 중반에 아들 셋을 남겨두고 떠난 이형. 항암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건강관리하면서 못다 이룬 정치의 꿈을 꾸었었던 이형은 갑자기 합병증이 악화되어 떠났다. 종종 박형과 이형의 카톡 사진을 본다. 아쉽고 보고 싶다.


박형과 이형이 떠난 후 보았던 '나의 해방일지'. 그중 여주인공의 대사는 써놓고 많이 읽었다. 그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었다. 지금도 나는 이 기도와 같은 말을 읊조린다. 신이 있다면, 고작 먹고사는 것만 바라며 기도하지 않는다. 신이 있다면 나 여기에 왜 있냐고, 물어본다는 그 말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믿음인지, 신앙인지, 신념인지, 고집인지 모르겠다. 나는 믿기로 결정했다. 내가 여기에 이렇게 말짱히 숨 쉬고 사는 이유가 있다. 태어난 김에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부질없고 우울하다. 돈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내가 사는 이유라면 더 우울하고, 지독하게 슬플 것 같다. 내 기준의 부자는 좋아하는 사람들 집에 초대에서 재우고 먹일 수 있는 정도. 그들에게 밥 사줄 때 가격 안 보고 사줄 수 있는 여유. 이 정도가 제일 좋다. 지난 3년간 허덕이며 벌었던 돈을 올해 1/4분기 만에 벌었다. 감사하다. 돈이 많았던 적도 없지만, 아내도 나도 돈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이제 빚도 갚을 수 있다. 그다음엔? 이 돈 모아서 뭐 하지? 부모 잘 만나서 잘 공부했고, 아내 잘 만나서 천조국에서 산다. 친구 잘 만나서 돈도 같이 잘 번다. 그냥 꽁짜로 받은 것들. 누군가의 호의로 누리는 일상. 나는 누구를 돕기 위해 살아야 하나.


먹고살만하니 좋은 일 하겠다는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그렇게 선한 인간도 아니다. 내 즐거움도 중요하다. 스트레스 때문에 이른 나이에 비명횡사하면 조금 슬프지 않은가. 하지만 즐거움만 추구하기엔 짧은 인생이 허무하다. 왜 사는지 이유가 없는 영 앤 리치들이 순간 나락으로 가는 것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처음부터 먹고사는 일 자체가 열심을 내는 동력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비즈니스를 자선사업처럼 하다가 큰코다치고, 개무시당하고, 비명 지르며 버텼다. 사업은 사업답게 해야지. 돈을 버는 이유가 필요하다. 더 많이 벌어야 하는 이유가 필요하다. 몸이 건강해야 하는 이유가 필요하다.


얼마 살지 않은 인생을 돌아보니 내 삶이 내게 성실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내 주변의 죽음은 이따금씩 곧 내가 직면할 마지막을 이따금씩 다시 생각나게 해 준다. 제대로 살고 싶다. 죽을 때가 되어서, 죽음을 코 앞에 두고서, 죽기 직전에 당황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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