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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원쌤 Sep 25. 2018

법과 제도

교사의 탄생 - 법과 제도를 넘어 아이들과 함께 한다


학교라는 조직에 속해있는 사람으로 법과 제도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법과 제도 속에서만 움직이려는 태도는 결국 우리 모두를 지치게 만들 뿐이다!


이런 생각의 바탕위에 쓰여진 글입니다.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때:  2015년 어느 날

곳:  6학년 교실 


쉬는 시간 평소 아이들과 뒤엉켜 놀던 선생님이 웬일로 책상 앞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잠시 후 컴퓨터 옆의 프린터에서 종이 한 장이 출력된다. 그 종이를 집어 들고 무엇인가 고민에 빠진 선생님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 (선생님 주변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선생님?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선생님: 아! (외마디 후 다시 손에 든 종이를 바라본다.) 너희도 알다시피 선생님은 공무원이잖아? 그래서 그래.

아이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네, 우리도 선생님이 공무원인 건 알아요. 그런데 무슨 문제가 생긴 거예요? 왜 그러세요?

선생님: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다가 아이들을 바라보고 이야기한다.) 공무원은 공문이라는 것을 처리해야 한단다. 특히 선생님은 부장교사라 이런 공문들을 처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어.

아이들:  (걱정스런 표정으로) 아니 어떤 공문인데 그렇게 걱정이세요?

선생님: 이 공문 내용이 뭐냐면 (아이들 쪽으로 공문을 보여주며) 학교폭력예방교육을 몇 월 며칠 무슨 교과 시간에 몇 시간 했는지 보고하라는 내용이야.

아이들: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동시에 여럿이 대답한다. ) 아니 그런 게 어딨어요? 우리는 매일 매시간 어떤 교과를 공부하든 항상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배우고 있잖아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그렇구요. 특정한 시간에 그런 것을 따로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선생님: 당연하지.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어쩌겠니? 선생님은 공무원이라 이런 문서를 처리해야 하는 거야. (풀죽은 모습이다.)

아이들: (선생님을 바라보는 눈빛이 빛나고 있다. 확신에 찬 모습으로) 선생님, 뭘 그리 걱정하세요. 그냥 대충 아무 날이나 써서 보내세요. 혹시 누가 그날 진짜로 했는지 물어보면 우리가 다 했다고 이야기할게요.

선생님: (당황하며) 아, 그래. 


免而無恥(면이무치) 


논어에 나오는 말로 ‘법과 제도를 이용해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면 법과 제도를 피하는 것만 배우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다. 즉 내가 법과 제도를 어겨도 형벌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생각인 것이다. 이런 생각의 이면엔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흔히 우리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을 법과 제도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혹시 이런 태도 속에서 나의 잘못을 아니 우리의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고 있는 건 아닐까? 여기서의 ‘남’은 사람으로만 한정지어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제외한 모든 존재 즉 사람, 제도, 법, 관습, 전통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내 문제를 내가 책임지려는 태도가 아니라 남에게 미루고 도망가는 것이다. 혹시 이런 태도가 만연한 곳 중 하나가 학교인 것은 아닐까? 


학교폭력예방교육을 언제 어떻게 했는지 보고하라는 공문은 그 목적이 진정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혹시라도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우리(교육청이나 학교)가 할 수 있는 모든 행정적 제도적 노력을 다 했으니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미인가? 만약 전자의 의미였다면 바보인 것이고 후자의 의미였다면 비겁한 것이다. 학교폭력이라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현상을 단 몇 시간의 계기교육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바보스럽다. 학교폭력이라는 현상을 마주하고 그것을 예방하고 치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많은 부분들은 제쳐두고 그저 몇 장의 계획서와 결과물로 책임을 피하려는 태도가 비겁이 아니면 뭔가? 그렇다면 법과 제도가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이 물음을 해보자. 


“법과 제도를 넘어 아이들이 진정 원하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보았는가?” 


만약 우리의 삶에 법과 제도만 존재하고 그것을 통해서만 살아간다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란 이러한 법과 제도를 넘어 인간의 가치를 찾아가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그것이 바로 교사의 삶이고 학교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일 테니까. 하지만 학교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표준화운동과 교육 


켄 로빈슨이 쓴 《학교혁명》에는 표준화운동에 대한 비판이 많이 제시되어 있다.  


“표준화운동은 창의성, 자기표현, 발견과 상상놀이를 통한 비언어적이고 비수학적인 공부와 학습 방법에 대해 회의적이며, 심지어 미취학 아동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한다. (중략) 정량화가 그다지 쉽지 않은 방식에 대해서는 당연히 회의적이다.” 


어쩌면 공교육이 가진 한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지 모른다. 모두를 위한 교육은 결국 이러한 표준화를 추구할 수밖엔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관리되지 않는다면 공교육으로서의 의미나 질 관리에 실패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표준화되고 제도와 법으로 규정된 것으로만 살아가고 싶진 않다. 이러한 표준화를 대표하는 법과 제도 뒤에서만 살아가는 교사는 결국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서 쉽게 포기하고 법과 제도 탓으로만 돌릴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교사로 살아가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법과 제도를 기반으로 하되 그것을 디딤돌로 삼아 넘어서는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교사여야 한다.



법과 제도를 넘어간 두 사람 


2018년 4월 27일. 우리나라의 역사에 남을 한 장면을 전 국민이 마주했다. 남과 북의 정상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서로의 선을 넘는 장면이다. 두 정상은 예정에 없던 파격을 보였고 그 파격은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법을 어긴 행동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법을 어겼으니 무효가 되거나 파기되어야 한다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그저 그 순간의 감동을 온 몸으로 느꼈을 뿐이다. 그 상황에 대해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의 만남의 과정에 갖가지 상징의 코드가 동원됐지만 사실 가장 명징한 상징의 코드는 계획된 것이 아닌 파격에서 나왔습니다. 군사분계선을 말 그대로 하나의 선으로 만들어버린 두 사람의 전혀 예정돼 있지 않았던 월북, 월남이었습니다. 언제 넘어가보냐, 지금 그냥 넘어가보자. 그렇게 해서 65년을 그어져 온 분계선이라는 것이 서로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나 무의미하고 보잘 것 없는 선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겠지요. 오늘 하루 남북은 말 그대로 지난 11년을 극복하는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보여줬습니다.” 


65년을 그어져온 저 붉은 분계선, 누구도 감히 넘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철옹성 같던 법과 제도를 두 사람의 마음만으로 훌쩍 넘어버린 일. 어쩌면 교사로 살아가며 꿈꾸는 교사의 모습을 난 이 장면에서 보았다. 교사라는 직업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각종 제도와 법,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다시 보여준 장면이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법과 제도가 진정 우리를 지켜줄 수 있다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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