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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토끼 Nov 18. 2022

학교에서 애벌레를 받아왔어요.

여러분이라면 키우실 건가요?

1학년 늦가을쯤이었나 보다. 아이가 학교에서부터 어떤 상자를 신줏단지 모시듯 들고 왔다. 그것은 바로, 장수풍뎅이 유충 3령짜리! 蟲(충)... 충이라 하면, 벌레? 아니 곤충! 알아보니 3령이면 성충 직전이라고... 다리 6개 이상 달린 생물은 해충이든 익충이든 끔찍해하는 내가, 장수풍뎅이라니! 정말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못 키운다고 딱 잘랐지만, 아이는 늠름한 뿔을 가진 장수풍뎅이를 상상하며 벌써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깜깜해야 하니까 상자를 자꾸 열면 안 된다고, 자꾸 움직이며 안된다고, 분무기로 물만 살짝 뿌려두면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더라. 엄마는 절대 만질 생각이 없는데...


이 날 이후 친한 엄마들 카톡방에 난리가 났다.

'애벌레 몸에 진딧물이 붙은 거 같아, 이러면 죽는다는데, 우리 애가 엄청 기대하는데 어떡하지? 혹시 물에 씻어주면 괜찮나?' ➡ 이 분 결국 고무장갑 끼고 애벌레 샤워시켜 줌.

'우리 애벌레는 죽었나 봐, 꼼짝을 안 해... 하루 이틀 더 보고 안 움직이면 이걸 어떡하지?' ➡ 죽어서 뒷산에 묻었다고 함.

'귀엽지, 우리 벌써 번데기야' '언니! 사진 올리지 말라고!!! 아 진짜!!!!(징그럽다고 진짜 화나신 분)' ➡ 끝까지 잘 키우심

'난 애 잘 때, 처리했어' ➡ 무서우신 분

'난 애들에게 보고 받고 있어' ➡ 나 (얘들아, 많이 컸니? 봐봐~)


나는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기다림에 지친 아이들의 관심에서도 애벌레의 존재가 서서히 사라질 즈음에, 그러니까 이듬해 3월쯤 애벌레는 조용히 번데기가 되어 있었다. 점점 토실토실해지더니 동시에 흙 양도 많이 줄더니, 흙 위에 번데기가 되어 있었다. 검색한 바에 의하면 학교에서 받으면 곧 성충이 된다는데, 온도가 안 맞았는지 겨울을 조용히 방에서 났나 보다. 우리 아이들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그리고 드디어 예쁜 장수풍뎅이가 되었다. 그렇다, 우리 장풍이는 암컷이었다. 우리 아이가 상상한 멋진 뿔이 없어서 쪼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자기가 키워서 그런지 엄청 애지중지했다. 지인이 햄스터함(?)을 줘서, 톱밥을 깔고(원래는 흙이 좋은데, 그냥 있는 거 깔아줌), 장풍이가 좋아한다는 참나무 가지를 깔아줬다. 아 그리고 중요한 밥! 이미 아이가 다 커버려 곤충젤리가 필요 없는 집에서 받아왔다. 무작정 사지 말고, 주변에 꼭 물어보시라. 어쩌지 못한 곤충젤리가 은근히 많이 굴러다닌다.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우리 장풍이는 몸에 윤기가 흐르고, 젤리도 주는 대로 다 받아먹는 건강미인이었다. 하루에 두통도 거뜬! 그렇게 3달 정도 지났나. 아이가 하교하면 늘 장풍이를 살피고, 놀고 했는데, 장풍이 수명이 얼마 안 남아서 아이랑 어렵게 방생(?)하기로 결정했다.


세상에 태어났는데, 짝짓기 해서 알을 낳아야 하지 않겠냐고... 의미심장한 얘기를 나누며, 뒷산으로 햄스터함을 들고나갔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눈이 시뻘게서 톱밥만 남은 통을 들고 들어왔다. 나무 타기는 처음일 텐데 그렇게 쑥쑥 잘 올라가더라고. 금방 눈에 보이지 않더라고. 먹이는 놓고 왔는데, 우리 장풍이 꺼 누가 뺏어먹을까 봐 걱정이라고... 나는 장풍이가 멋진 남친 만나서 행복한 여생을 잘 살 꺼라고 위로해주었다. 장풍이와 교감을 나눈 것도 아니었지만, 매일 보고 키워서 그런지, 우리 아이 마음이 잠시 힘들었다.


 창체 시간에 식물과 곤충을 배울 때, 성충이 되는 과정을 관찰하라고 1학년 전체에 애벌레를 나눠주는 것 같은데, 희망자만 주던지(그렇다고 안 받을 것 같진 않지만) 무튼 하나의 생명인데 너무 일괄로 나눠준 거 같아서 내 마음도 좋지는 않았다. 나는 수컷까지 입양하여 2세까지 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선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아이가 달갑지 않은 애벌레를, 때로는 금붕어를(방과 후 수업에서 줍디다), 토마토를, 직접 캔 감자나 가지를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너무 싫어도 거부는 하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금붕어는 어항이 보통일이 아니기에 절대 가져오지 말라고 했었다. 옆집은 병아리를 받았는데, 그게 청소년 닭이 되어, 급기야 베란다를 점령했고, 급히 박스에 넣어 시골로 데려갔다고... 시골에 내려가는 중에도 곧 나올 기세로 박스를 그렇게 콕콕콕 찍어댔다는 공포스러운 이야기도 들었다. 아무리 애완동식물을 피하려고 해도, 초등학생 때 요 정도는 어쩔 수 없이 키우게 되는 것 같다. 강아지 조르는 아이가 있다면, 학교에서 데려오는 친구들로 잘 버텨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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