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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토끼 Nov 21. 2022

3년 만에 돌아온 운동회

백군 이겨라!!

코로나로 사라진 학교 행사가 교장 재량으로 하나 둘 돌아오고 있다. 그야말로 교장 재량이기 때문에 학교마다 다르지만,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은 멋지게 아이들에게 운동회를 선물해주셨다. 캬~ 엄마인 나도 덩달아 반가웠다. 왜 반가웠지? 아마도 아이의 설렘이 너무 반가웠나 보다.


학교 반티를 입고, 운동화를 비장하게 묶고 등교를 한다. 오늘 꼭 학교에 와서 보라고 한 달 전부터 성화를 해서, 나도 오전 반차를 내고 운동회에 쫓아갔다. 요즘 운동회는 뭐 다른가~?


푸른 인조 잔디 깔린 운동장에 만국기 펄럭이고~ 아이들이 운동장에 대열을 갖추고 서있다. 요즘은 운동장 조회가 없기 때문에 매우 보기 힘든 광경이라 그런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금은 3학년이 된 5월의 1학년들은(코로나 때문에 5월에 입학한 1학년 세대를 부르는 말) 이 운동회를 위해서, 그렇게 줄 맞추기 연습을 했단다.


우리 아이 왈, "운동회 하는데 왜 이렇게 줄 서기를 많이 연습해?"

한 번 운동회 경험해 봤던 큰 아이 왈, "원래 그런 거야" ㅋㅋㅋ


라떼와 다르게 전문 레크레이션 강사가 초빙되어, 출발 드림팀에 나올법한 장비들로 운동회를 한다. 오늘은 선생님도 학생이다. 강사의 지시에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3년 만에 하는 운동회에 선생님들 몸살 나겠구만 싶었다. 운동회가 처음인 건 아이뿐만이 아니었다. 짬 있으신 선생님들은 호루라기나 딱 소리가 나는 달리기 출발총(?)을 갖고 오셨고 ㅋㅋ, 젊은 선생님들은 목이 쉬어라 소리 지르고, 몸이 부서져라 깃발을 온몸으로 수없이 들어 올리며 맨 몸으로 헤쳐나가셨다.


게임은 라테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짧아진 50M 장애물 달리기, 바구니 터트리기 대신 게이지에 공 채우기, 2인 3각 대신에 바나나 보트 들고 한 바퀴 돌기, 파도타기 등등... 아쉽게도, 추억의 각시 춤이나 부채춤은 없더라. 이미 미화된 기억이지만, 그거 하느라 엄청 힘들었었는데; 명불허전 고전 게임 '줄다리기'는 하더라. 1학년 선생님이 줄다리기를 처음 하는 아이들이 너무 못할까 봐 걱정이 되셨는지 노하우를 이렇게 전수하셨다.


"여러분, 눕는다는 생각으로 배를 쏘옥 내미세요" ㅋㅋ


그래도 하이라이트는 계주! 눈에 보이는 경쟁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쪼꼬미 1학년이 출발할 때는 트랙 이탈하며 귀여움을 뿜 뿜 했는데,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나는 미친 듯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또 다른 나를 영접했다; 애들 한 판 끝내고, 그 열기를 그대로 이어 잠깐 아드레날린에 취한 부모들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원하여 16명이 계주를 했다. 와우!! 왕년에 좀 달리신 아빠들인지 승부욕에 정말 깜놀했다는... 내일 좀 아프실 듯;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그렇게 참여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나도 잘 뛰면 벌써 나갔을 텐데ㅎㅎ


계주 외에 인상 깊었던 게임은... 6학년들을 두고, 사회자가 조건을 말하면 조건에 맞는 사람이 남아 최후의 1인을 뽑는 게임이었다.

"나이키, 뉴발 신은 사람 아웃!" → 우수수 떨어져 나감

"반판 입은 사람 아웃!"

"안경 쓴 사람 아웃!"

이렇게 가다가, 이제 20명 남짓 남았나, 돌발 질문 하나에 학부모 전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성친구 없는 사람 아웃!" → 자기 아이가 남아있는지 보려는 학부모들로 난리남;

모든 운동회가 끝나고, 돗자리에 김밥, 과자? 이런 거 없다. 모두 급식실로 산뜻하게 출발~ 심지어 승부도 무승부라니, 이건 무효야 무효!라고 엄마인 내가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운동회를 하려고 며칠 설레었던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며 흐뭇했을 선생님들, 그 선생님들께 감사해하는 학부모까지 이 보다 더 완벽한 운동회는 없을 것 같다!




 큰 아이가 고학년이니 무심결에 지나치려고 했던 운동회. 많은 아이들이 엄마가 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고맙게도 우리 아이들은 나를 초대해줬고 나는 잠깐 귀찮았던 마음을 휘리릭 날려버리고 오전 반차를 내고 참석했다. 그 결과, 나를 칭찬해. 아이가 조금이라도 엄마가 와줬으면 하는 마음을 내비친다면 열 일 제쳐두고 갈 만한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다.


 운동회가 끝나고 하교한 아이가 쏟아 놓는, 억울한 점수 이야기에 맞장구칠 수도 있고, 넘어진 어떤 아이의 뒷이야기도 깔깔거리며 나눌 수 있고, 무엇보다 엄마가 학교에 와서 나를 응원해준다는 사실에 아이가 갖게 되는 자신감은 최고니까 말이다.


만약, 아이가 운동회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면? 감사히 여기며 가지 않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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