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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Aug 02. 2018

입술을 깨물다

파뤼파티

가벽을 세우고 섹셴을 나누고 좌대를 놓고 조명을 내리고 그런대로 전시 겸 포토월 준비가 되었건만 설치가 덜 끝나 아직도 인스톨에 여념이 없는 작가들과 분위기를 보러온 에이젼시 관계자들과  오프닝 전인데 어디선가 냄새를 맡고 온 고객들로 벌써부터 스튜디오는 어술렁거리지만 정작 채연은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몰라 피곤한 얼굴로 멍하니 구석탱이 코너에 서서 다 떨어진 세탁세제를 사기 위해 장보기 를 했다.


다들 바쁜데, 심지어는 놀라리 상혁마저도 땀 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채연만 할 일이 없다니 한 편으론 좋으면서도 또 한 편으론 괜히 눈치도 보였지만 여전히 일은 하기 싫어서 괜히 뭔가에 몰두하는 척 휴대폰으로 뉴스 피드를 했다. 어쨋든 오늘 밤이  바로 그날이다. 파뤼파티, 검은 어둠이 깔리면 까만 밤하늘에 별빛이 내리듯 할로겐 불빛이 반짝거리고 칵테일과 핑거 푸드, 와인과 치즈를 집어 먹으며 사람들이 몰려 와 즐겁게 마시고 떠드는 시간. 채연은 게스트도 아닌, 작가도 아닌, 그저 주최자의 조수, 아니 어시스턴트로 즐기는 손님의 편의를 봐드려야할 입장이지만,


그때였다.

"여기 음료수는 어디서 마실 수 있죠?"

팽팽 돌아가는 도수의 두껴운 안경을 쓴 정대표가 나타나 채연에게 마실걸 달라고 묻는다. 정대표는 산업디자이너인데 한번에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제품 디자인을 하는 것으로 채연은 알고있다. 그중 잘 된것도 있을지 모르지만 안된것이 훨씬 많은 그가 다음으로 준비하고 있는 프러덕트는 미래형 캡슐이다. 허름한 옷차림, 순수하기가 짝이 없는거처럼 눈이 보이지 않도록 짓는 눈웃음, 게다가 발목까지 올라오는 양말은 어쩔!?!?!? 전혀 디자인 회사의 ceo로 보이지 않는 비주얼이다.

'아니 정 대표의 캡슐 상품 촬영은 아직 멸었는데 오늘 왜 온거지??'

게다가 채연은 대놓고 말을  할 순 없었지만 속으론 정대표의 미래형 캡술을 말도 안되는 상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차에 그래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뭐 드릴까요?? 따뜻한 차? 커피도 있는데요.근데    무슨 일로 오셨어요??"

"오늘 저녁 전시 제가기획한건데...요, 모르셨어요??"


채연은 깜놀 했다. 별볼일 없을 것 같았는데 오늘 전시는 그래도 상품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차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진만 찍는다지만 누울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랬다고 bp점도 못 찍을 기획 의뢰자는 괜시리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요?? 오~~~축하드려요,~~오프닝  꼭 같이 봐요 그럼!"

"으흐, 막상 코디네이터는 행사 당일에 일이 별로 없죠?? 잘 됐네요. 혼자 어슬렁거리면 거시기한데 요."

"몰랐어요~~기획 많이 하시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것도 정대표님 기획이시구나~~~오~~완전 대단하세요!!"

"작가들이랑 스태프들이 다들 열심히 굴렀으니까 머라도 하나 건질만 할런지 모르겠지만요."

"아유~~~ 대단하세요~~~잠깐만요!! 아이스티 타 드릴테니까 여기 좀 만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채연은 몇 시간 후 번개불에 콩 볶아먹듯 바빠지기 전에 거래처 사장님이 화이팅을 할 수있도록 최선을 다해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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