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니에 공원 한 가운데선 버스킹이 한창이었다.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가수는 마지막으로 신청곡을 받았다. 그는 마이크를 두 번 정도 톡톡 두드린 뒤에 노래를 이어갔다. 부른 노래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였다. 이제 곧 내 나이가 서른 살에 가까워져서일까. 제목만으로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노래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눈을 감고서 귀를 열어 목소리를 감상했다. 낮지만 짙은 목소리가 주변으로 뻗어나가던 중 가사가 귓가에 내려앉자 눈이 뜨였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언제부턴가 내 나이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정쩡한 이십 대 후반. 군대를 전역하고 학교를 졸업하니 벌써 스물여덟.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나온 첫 직장. 당차게 들어갔지만, 10일 만에 관둔 스타트업 회사. 지금의 나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무언가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는 내 이력서를 보면 내 가슴속에도 바람이 드나드는 기분이다. 손으로 구멍을 막아봐도 소용없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계속해 나에게 열심히 살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아직 나이가 어리니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주변 어른의 말은 전혀 울림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고 해도 내 손가락은 멈춰있다. 나는 그저 하고 싶은 것이 없을 뿐인데.
생각이 많던 어느 새벽, 번쩍 눈이 떠졌다. 주변엔 물이 떨어지는 소리나 시침이 움직이는 소리만 자욱하게 퍼져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꿈속에 빠져있는 시간. 제 역할이 오롯이 잠에 드는 것만이라는 듯이. 방 한 칸을 사이에 두고 훌쩍이는 소리가 일정하게 반복해서 들려온다. 울음소리가 시침의 걸음걸이처럼 움직였다. 애써 감정을 죽인 한낮과 달리 새벽엔 있는 힘껏 숨겼던 마음을 드러내도 되니까. 나는 듣고도 모른 척하며 꿈에 깊게 빠져있는 사람인 양 군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위로를 해주고 싶지만, 이는 오히려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눈을 감아도 쉽사리 잠에 들 수 없었다. 새벽만이 조용하고 느리게 흘러갈 뿐이다.
그날 밤엔 누나가 꿈에 나왔다. 막상 누나와 마주하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가 나오려고 할 때쯤 나는 잠에서 밀려났다. 사실 우리는 만난 적이 없다. 행여나 본 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너무 어려서 기억에 자리 한 칸 내어주지 못했다. 나는 그녀를 오로지 이야기를 통해서만 알고 있다. 엄마는 이따금 누나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림과 책을 좋아하는 자신을 쏙 닮았다는 말. 어른에게 예의가 발라 많은 사랑 받았다는 말. 이혼 후 아빠에게 가서 자주 보지 못했다는 말. 그림을 좋아해 미대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끝으로 이야기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줄을 지으면 나는 파편을 주워담아 하나 씩 이어 붙이고는 했다. 누나는 어떤 사람일까. 두고두고 할 말을 쌓아놓은 뒤 누나와 만난다면 들려줘야지.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모아 놓고 물어봐야지. 우리는 서로 얼굴 바라보며 얘기를 나눠 본 적도 없지만, 왠지 특별한 주제가 없어도 잘 통할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할 무렵 누나가 몹시 아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니던 미술 대학을 관두었다고 했다. 세상을 한쪽 눈으로 밖에 담을 수 없다고 했다. 투석을 받기 시작해 일상을 이어가기 힘들다고 했다. 소식이 희미하게 들려오거나 아무런 얘기조차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나직이 말을 꺼냈다. 아니, 정확히는 안간힘을 써서 겨우 얘기를 이어갔다. 누나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우리의 첫 만남은 하늘공원에서 이루어졌다. 누나는 바둑판처럼 층층이 나뉘어 있는 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의 시선은 정확히 위에서 네 번째 칸에 머무른 채 어디에도 가지 못했다.
누나가 떠났던 가을은 누나의 서른 번째 해였다.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았을까. 벌써 5년도 지난 그날의 시간은 무턱대고 흘러 나는 누나의 나이에 가까워졌다. 자꾸만 늙어가는 나와 달리 언젠간 누나는 나보다 어려지겠지. 나보다 어린 누나를 마주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무슨 말을 건네야 할까. 우리는 이제 같은 세상에서는 만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다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기 시작했다. 여러 가사를 지나 다시 한 문장에 눈길이 멈춘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남은 자는 벚꽃처럼 울었다. 금세 눈물을 거두곤 일상을 되찾으려 애썼다. 기약 없는 슬픔을 짊어지고서 앞으로 걸어갔다. 때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고 떠들며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 누나를 잊은 게 아니라 누나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무뎌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새벽에 꿈을 마주하면 하염없이 약해지고 말기 때문에, 다른 세상으로 넘어간 누나를 떠올리며 노래 가사에 밑줄을 긋는다. 해주고 싶은 말을 모아 매일 세상에 잊히는 누나를 어딘가에 새긴다는 마음으로 자그마한 글을 쓰자. 하고 싶은 게 없던 내 손가락이 다시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