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의 기쁨에 취하고, 둘의 슬픔에 젖는다. 그만큼 일희일비가 심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감정의 용수철은 펄떡하고 하늘로 치솟다가도 그만큼 빠른 속도로 낙하한다. 스스로 감정 편차가 심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내 일주일 중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곳인 직장에서는 유독 감정 소모가 심하다. 지금의 회사는 다닌 지 딱 1년이 되었다. 중간에 부서를 옮겼고, 새로운 일을 맡은 지는 4개월에 접어들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만큼 빨리 지나갔다. 계절이 바뀌어야 시간의 온도를 체감할 수 있다니. 그러나 여전히 알듯 말듯한 업무는 내게 자꾸 혼란을 안겨준다. 안다고 생각한 것이 틀리고, 모른다고 느낀 것은 찜찜한 뒤끝으로 남아있다. 팀장님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가 오히려 해야 할 일을 했냐는 물음에 말줄임표로 답했다. 여러 번 만들었던 보고서에서도 계속 딱 하나씩 오류가 숨어있었다. 제출하기 전 두세 번씩 보라는 말이 유난히 거슬렸다. 분명 봤는데, 내가 검토할 땐 없었는데 참 이상하다.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다.
어제는 보고 자료를 잘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하루종일 미소를 입가에 걸쳤던 나를 떠올렸다. 인정은 다이어트 중 마주한 초콜릿보다 달콤해서 자꾸만 바라게 된다.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다. 갑자기 허탈한 마음이 나를 감쌌다.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와 정말 맞는 일인 건가?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잘하는 일 둘 중 하나를 해야 오래 할 수 있다고 자부하며 회사를 떠난 동료의 말이 떠올랐다. 현재 내가 하는 일은 잘하는 건 아니고 좋아하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뒤, 책상에 조용히 앉아 진심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쓰기 시작했다. 막상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에겐 언제나 기댈 곳이 필요했다. 불안정한 감정 속에서 조용한 평화를 원했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삶처럼 감정도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 인정을 갈구하면 갈구할수록 갈증이 났다. 괜찮다는 말, 잘했다는 말을 무한정 바라는 것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순간의 슬픔을 모면할 수 있는 것일 뿐이었다. 나는 마치 솜 같아서 비난에 쉽게 젖어들고 만다. 살짝만 쥐여도 눈물을 쏟아낸다. 타인의 시선과 비평은 나에게 큰 바늘이다.
생각을 털어놓은 글을 마치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나가서 산책을 하는 30분. 동료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듣는 고맙다는 말. 내가 생각한 프로젝트가 잘 풀려 성과에 도달했을 때. 나의 말에 귀 기울어주는 상사의 표정. 역할에 맞춰 하루를 충실히 이행하고 난 뒤에 내 모습. 그리고 퇴근길의 신명 나는 발걸음. 타인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얻어낼 수 있는 기쁨도 있었다. 취할 만큼 강렬하지도, 젖을 만큼 축축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퇴근 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축복이다. 하루를 회고할 수 있다는 건 내가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