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의 역습은 여러 차례 있었다. 가장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중세의 흑사병이나 1차 세계대전의 스페인 독감이다. 불행하게도 숱한 희생을 치르고 바이러스의 동굴을 겨우 빠져나왔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백신이 만들어지긴 했으나 ‘바이러스의 동굴을 겨우 빠져나왔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당시의 우왕좌왕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성(性)의 탄생이 기생충(바이러스 포함) 때문이었다는 가설(parasite hypothesis)은 윌리엄 해밀턴(William D Hamilton)의 주장이지만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무성생식보다 유성생식에서 다양성이 풍부하기에 거칠고 예측할 수 없는 대자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진화적 선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바이러스의 역습과 성의 탄생을 놓고 보면 인간의 진화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어설픈 믿음이 생긴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의 돌연변이(Mutant)나 좀비 역시 진화의 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도 든다. 각국의 집단면역이 조금씩 성공의 기미가 보인다는 소식이 더해지면 아주 엉뚱한 발상은 아닐 듯싶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호모 사피엔스에서 진화가 멈추었다는 판단은 있을 수 없으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돌연변이의 탄생이겠지만, 인류는 코로나19의 어두운 동굴을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을 듯하다. 언제쯤이 될지 확신할 수 없지만.
진화론에 대한 착각 중의 하나가 유원인(類猿人)에서 호모 사피엔스까지 일직선의 진화라는 인식이다. 사실 유원인에서 출발하여 수많은 돌연변이가 나타났고 이윽고 사람과(Hominidae)가 나타났으며 여기에서 사람속(Homo)이 갈려져 나왔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사람속이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빌리스나 호모 사피엔스뿐이었겠나. 자연 적응과 서로에 대한 경쟁과 갈등 속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유일하게 남았으니 그 과정 중에서 얼마나 쿵쾅쿵쾅 왁자지껄 시끄러웠겠나.
예의 시끄러움은 호모 사피엔스에 와서도 민족이나 인종 혹은 종교의 갈림으로 또 얼마나 엄청났던가. 대표적인 사건들이 셀 수 없는 수많은 전쟁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가 전쟁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엄청난 피흘림이 우리 발밑에서 꿈틀거리고 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시끄러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문제는 그러한 시끄러움이 생존보다는 탐욕에서 비롯한다는 점에서 매우 걱정스럽다.
‘내가 국회의원을 세 번 했어!’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동행을 요구했을 때 어떤 정치꾼이 경찰을 꾸짖은 말이니,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목숨은 고사하고 오로지 탐욕을 앞세우는 말임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돌아보면 광풍처럼 온 동네를 휩쓸던 제국주의 야욕만이 조선을 망국으로 내몰지 않았다. 민족 배신의 정치가 있었다. 물론 국가는 없어졌으나 민족은 사라지지 않았다. 유대인의 시오니즘(Zionism)처럼, 물론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는 토착 왜구 자손들의 뿌리를 제외하면, 민족 독립에 대한 열망은 뚜렷했다.
당시 토착 왜구로의 사상적‧정치적 전향은 생존보다 탐욕에서 비롯하였고 무덤까지 세속적 탐욕을 가져갈 수 없었으나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비단 물질적인 탐욕뿐만 아니라 사상적‧정치적 탐욕까지도 유전자처럼 물려주었으니 토착 왜구의 화려하고 현란한 처세술에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전광용의 <꺼삐딴 리>의 이인국으로 대표되는 토착 왜구의 전형성이 소설로 발표되던 1962년에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2020년대에도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있으니 우리는 58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가히 세계 8대 불가사의(不可思議)로 꼽을 수 있을 듯하다.
1962년 노년(老年)의 이인국을 2020년대 불사(不死)의 이인국으로 여전히 숨 쉬게 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언론이다. 기자가 정보유통업자의 머슴이라는 현실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언론의 탈을 쓴 정보유통업자의 탐욕은 정치꾼의 탐욕보다 끈적끈적해서 자정(自淨)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검찰이 견제받는 권력으로 이동하고 정보유통업자의 카르텔 역시 견제받는 권력으로 탈바꿈해야 하는데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하여 자신만만하게 절대 죽지 않는 이인국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하여 우리는 저마다의 판단을 망각하고 불사(不死) 이인국에 환호하고 손뼉 치고 급기야 미쳐 날뛰는 셈이다.
‘우리 동네에 걸핏하면 출몰하는 메시아가 문제’라는 표현을 어떤 수필에서 써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강점기의 백백교(白白敎)를 떠올려 보면 많은 사이비 종교가, 혹은 교회 사장님들이 탐욕에 골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죽음을 초월하는 종교가 세속적 탐욕에 집중하는 아이러니를 만날 때마다 전지전능한 일신교(一神敎)보다는 차라리 분권형(分權型) 힌두교처럼 다신교(多神敎)에 흥미를 갖게 되는 게 오히려 인간적이지 않을까. 종교와 정치는 원래 한 몸이 아니었던가.
죽으면 모두 신이라는 우리의 관습적 인식을 제례 의식에서 확인할 수 있고 조상의 음덕이라는 용어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일본의 신도(信道)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본질적으로 종교는 과학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로 인해 사람의 평균적인 인식의 확장에도 발맞추지 못하는데, 대표적인 근거로 루터의 종교개혁을 꼽을 수 있다.
올바른 미국 교회의 주된 기능을 살펴보면 지역사회의 구심점이나 의사소통 공간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지, 현실을 부정하고 영생을 획득하기 위한 역할은 확실히 줄었다는 걸 참작하면 요즘 종교는 죽음 이전(現世)을 중시하지, 죽음 이후(來世)를 앞세우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종교는 죽음 이후의 보험으로서 자리한다. 씁쓸한 현상이다. 혹자는 현실의 힘겨움을 유력한 근거로 들고 있으니 아예 틀린 말도 아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바이러스의 역습은 여러 차례 있었다. 광화문에 모여드는 백백교의 후예들에게서 엿볼 수 있는 종교의 광기나, 국가를 매물로 내놓는 정치꾼의 민족 배신은 지금도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 왜냐하면 정치꾼에게 본능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지, 민족이나 공공의 이익은 아니다. 그것이 하잖은 정치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런 정치꾼 이인국에게 열광한다. 집회가 끝나고 방문이 대문인 집으로 돌아가는 좁은 골목에서 정보유통업자에게 결코 물음표를 던지지 않는다. 바이러스의 역습이다.
일본강점기 – 국사학계의 뿌리는 친일사학파(식민사관/뉴라이트)이다. 일제강점기란 용어는, 과거사에 용서를 구하지 않는 일본이 팽창주의(제국주의)와 결별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