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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발 Jul 15. 2019

나에게 꿈을 심어준 캐나다 가정집

그이도와 올리브의 집/ Guido and Olive's House

나는 2009년 우연히 캐나다의 작은 소도시 구엘프(guelph)를 알게 되어 이곳으로 어학연수를 왔다. 표면적으로는 어학연수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저 입시를 위해서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그런 쉼의 시간이었다.      


 홈스테이의 주인으로 만난 올리브(Olive)와 그이도(Guido)는 아일랜드와 이탈리아출신의 이민자들의 2세였다. 이미 은퇴 후 삶을 즐기고 있던 이들은, 정신적으로 아팠던 아들이 슬프게도 자살을 한 1년 후 나를 만나게 되었다. 할아버지인 ‘그이도’가 너무 힘들어하던 할머니 ‘올리브’를 위해서 구엘프 대학에 홈스테이를 신청한 것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이 마음이 따뜻한 노부부를 만나 늦둥이 딸 같은 사랑을 받으며 지냈다. 

그리고 10년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인터넷으로 연락하고, 2년마다 그들의 집에 머물면서 함께 일상을 보내는 가족이 되었다.      


10년 전, 처음 이곳에 와서 내가 놀란 건 그들의 따뜻한 마음과 함께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집이었다. 중산층인 그들이 사는 집은, 2층의 타운 하우스였는데 집의 벽 색깔과 가구까지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고르고 매치한 것이 표가 났다. 집은 군더더기 없이 아름다웠다. 


 많은 것을 사는 것보다 있는 물건들을 지키는 것을 좋아하는 올리브와 미적 감각으로 가구 사업을 했었던 그이 도는 집을 어떻게 꾸미고 사는지 아는 분들이었다.     



하늘색 빛으로 이루어진 편안한 부엌, 





녹색의 벽과 원목식탁이 잘 어울리는 다이닝 룸, 




희색의 편안한 소파와 회색 타일의 벽난로, 




그리고 나무 바닥이 전체적으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거실, 


투톤의 녹색 벽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소파들이 매치되어있는 지하 방 같지 않은 지하실,




살짝 보라색이 석인 연 분홍색의 벽과 연녹색의 침구, 남색의 스탠드가 어울리는 궁전 같은 올리브& 그이도의 방,





그리고 톤다운된 분홍색(인디핑크색)의 벽으로 이루어진 나의 포근한 방까지! 

아름답지 않은 구석이 없는, 그런 집이었다.          

 사실 비단 그이도와 올리브의 집뿐만이 아니라, 내가 방문한 캐나다의 가정집들은 대부분 아기자기한 벽 색깔과 따뜻한 느낌이 드는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아름다웠다. 눈이 편한 포근하고 아름다운 느낌이랄까.  



가정집들을 살펴보면서 부러웠던 것은 이들의 주거환경, 즉 생활환경이 잘 조성되어있다는 것이다. 집을 이루고 있는 뼈대 같은 것들이 잘 이루어진 느낌이랄까. 작지만 머물 수 있는 정원, 자연의 경관과 어울리는 건물 등이 그저 돈의 논리에서만 지어진 아파트에 익숙한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기억하는 주거환경은 높은 빌딩과 차도와 인도가 몇몇은 섞여 있고, 주택가의 풀들은 잡초 취급을 받으며 관리되지 않고, 건물의 색들은 대부분 회색이며, 집은 관리하는 것이 아닌 그저 몸을 누이고 사는 곳이었기에 더 충격이 컸다.      



 

특히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나의 집은 인테리어에 상관없이, 색이 어울리지 않는 가구들이 줄지어져 있고, 색이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소품들을 나열되어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물론 엄마는 삼 남매를 키우고, 직장도 다니는 슈퍼우먼이었기에 집의 인테리어에 신경 쓰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아빠는 내가 어릴 적에 강원도 직장을 다니셨기에 엄마가 대부분 집을 꾸몄다.) 엄마가 되어보니.. 이해한다. 아마 집의 색을 볼 시간도 없었겠지...


 나는 그런 엄마의 상황과 취향을 존중했지만, 늘  소파에 누워서 집안의 색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이 집의 색들이 조화롭게 어울리게 될까를 혼자 상상하곤 했다. “어떻게든 바꾸면 조금만 신경 쓰면 변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인테리어에 무지했기에 색이 어울리지 않는 집에서 그렇게 저렇게 지내며 컸다.      

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 배운 집은 나에게는 생존의 목적인 집이었다. 그게 충족되었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었는데, 그때는 방법을 몰랐다. 아마 이때부터 색이 어울리는 집, 아름다운 집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하튼 이런 성장환경을 가지고 내가 그들의 아름다운 집들을 보고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구 밀도가 높은 대도시의 아파트는 우리와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기본 주거환경이 나무와 풀과 함께하는 그런 건물들이 많았고, 아름다운 하우스(개별 주택)에서 집을 관리하고 책임을 지며 가꾸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놀라웠다. 

물론 땅이 아주 넓은 캐나다와 땅도 좁고 인구밀도가 세계 2위인 우리나라의 주거환경을 비교하는 것은 전제부터 틀렸다는 것을 안다건설회사로부터 제공된이미 만들어진 주거환경을 바꿀 수 있는 힘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안다

 바꿀 수 없는 주거 환경 이외에도 이들의 아름다운 집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것은 기본적으로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산다는 점이었다.” 요즘은 셀프 인테리어의 열풍과 집을 꾸미는 것에 대한 개념이 많아졌지만

이렇게 집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꾸미고 사는 삶이라니.. “10년 전 그때는 그렇지 않았기에 나의 충격은 컸다


그 충격은 곧 관심으로 바뀌었다. 아름다운 그들의 주거문화(집 문화)와 인테리어 된 집을 보면서 나는 그곳의 다양한 인테리어 서적과 집에 관한 프로그램만 방송하는 HGTV를 거의 매일 자기 전에 시청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공간을 매운 가구들과 패브릭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공간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아는 공간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의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공간에서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     

사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그림을 그렸지만, 딱히 어떤 분야에 대해 관심은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곳에 온 후 나의 관심사는 ‘아름다운 주거환경’ 즉 ‘아름다운 집’이 되었다. 


 머무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편안한 집, 물건을 쌓아 놓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위치를 고민하고 배열하는 집. 가구의 느낌들을 통일하여 내 눈이,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집들을 보면서 나는 ‘나만의 집’에 대하여 꿈을 꾸게 되었다. 


그렇게 가지게 된 꿈을 마음에 품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나만의 공간을 꾸미고, 공간을 그리고, 공간을 이야기하고, 다른 이들의 공간을 고치면서, 

내가 가졌던 꿈들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나씩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집에서 지냈던 그 순간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집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의 무궁무진함을 알았을까. 그래. 운이 좋았다. 이렇게 정말 감사했던 기억을 지금도 꺼내보며 지낸다. 

그리고 계속 집에 대한 꿈을 꾸며, 나와 같이 집에 대한 관심과 꾸미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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