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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Sep 15. 2019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거리 이야기 1

서울 골목길

'도시는 과거의 기억들이 거리 모퉁이에, 창문 창살에, 계단 난간에, 깃발 게양대에, 피뢰침 안테나에, 그리고 모든 부분 부분에 흠집으로 각인되고 무늬로 새겨져 마치 손에 그려진 손금과도 같이 담겨있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묘사된 문장처럼 600여 년 동안 대한민국 수도로 이어진 서울 구석구석에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일상을 살아가며 지나치는 도시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서울, 그 가운데 느리게 변하는 마을이 있다. 서울의 근대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지역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옛 정취가 남아있는 마을에는 서울에서 수십 년을 이어 오며 살아온 사람들의 체취와 일상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하루하루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서울,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서울에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거리를 걸어본다.      


한국의 브루클린 성수동

무채색의 공장지대와 빨간 벽돌집이 촘촘했던 성수동은 최근 서울에서 가장 각광받는 곳이다. 낡은 공장과 주택을 개조해 만든 카페나 스튜디오, 디자이너 숍이 들어서면서 예술의 거리로 새롭게 태어났다. 과거의 것에 현대의 세련된 문화를 덧대어 명소를 만든 성수동 길을 걷는다.

성수동은 피혁·섬유공장, 자동차 정비소 등 공장지대가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 여전히 회색빛을 띄고 있지만 공장은 줄고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여 작업실을 열었다.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나 음식점이 골목 구석구석까지 들어섰다. 낡은 공장 건물을 그대로 살려 골목에서는 옛 감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성수동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울숲 근처의 ‘붉은벽돌마을’이다. 정작 지역주민은 붉은 벽돌 마을이 어딘지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묻지 않아도 서울숲 옆 골목에 들어서면 사방이 붉은 벽돌로 지어진 집, 창고, 공장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이곳이 붉은 벽돌 마을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서울시와 성동구는 붉은 벽돌집이 모여 있는 이 지역을 ‘붉은벽돌마을’ 시범사업 대상지로 지정해 지역 건축자산으로 보전하고 있다. 붉은 벽돌의 분위기를 살린 카페나 디자인 숍이 곳곳에 있어 새로운 것을 찾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붉은 벽돌 골목을 돌아 나오면 성수동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거리가 이어진다. 오래된 낡은 건물에 갈빗집들이 늘어선 ‘성수동 갈비 골목’은 매일 저녁 많은 사람들이 문 앞에 길게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을 정도다. 하루 종일 골목을 걷다 허기가 찬 뱃속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은 더욱 길게 느껴졌다. 길가에 늘어앉아 갈비를 굽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성수동에 또 하나의 명소가 있다.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공씨책방’은 2대가 가업으로 이어온 오래된 헌책방이다. 공씨책방은 1972년 동대문구 이문동 경희대 앞에 처음 문을 열었다. 1980년대, 광화문을 거쳐 신촌에서 23년간 자리를 지켰다. 공씨책방은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려운 희귀한 서적을 10만 권이상 소유하고 있다. 향수를 자극하는 낡은 커버의 LP판도 서가 한켠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책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물창고이자 추억이 깃든 곳이다. 그러나 공씨책방은 안타까운 사연으로 최근 신촌과 성수동으로 나누어 이전했다. 

대규모 상업지구로 변모한 지역에서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소규모 상인들이 떠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공씨책방도 비껴갈 수 없었다. 임대료 문제로 헌책방을 옮기면서 수많은 책을 한 곳에 보관할 수 없어 원래 있던 신촌의 자리에서 500m 정도 자리를 옮기고, 임대료가 낮은 성수동 작은 가게로 나누어 문을 열었다.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있는 헌책은 세대를 넘어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가치가 있는 미래유산인 서점, 공씨책방을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고즈넉한 거리에서 오래도록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공씨책방이 있는 빌딩 뒤편에 변하지 않은 골목이 있다.  산과 언덕이 없는 평지인 성수동에서 유일하게 내리막길이 있는 곳이다. 지대가 낮아 비가 내리면 물이 고인다고 해서 ‘웅덩이마을’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좁은 골목을 들어서면 낮은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와 화단에 핀 꽃이 골목을 밝힌다. 촘촘하게 집이 붙어있는 골목은 옛 모습 그대로이고, 힘겨운 서민의 모습도 그대로다.

좁은 골목길을 나와 성수역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성수동 수제화 거리’를 만난다. 성수역으로 이어지는 ‘성수동 수제화 거리 희망플랫폼’에서는 구두의 역사, 제작과정을 볼 수 있다. 장인과 함께 수제화를 만드는 체험공방이 열리기도 한다. 

성수동에는 1920년대부터 구두점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해방 후에는 미군 워커를 만들면서 번성했다. 1970년대에는 성수역과 화양역 사이에 봉제 공장이 많았다. 봉제 산업은 제화산업으로 이어져 많은 제화업체가 성수동으로 모여들었다. 대형 브랜드의 제화업체들이 이곳에 세워졌다. 지금은 성수동을 떠났지만 하청 업체들이 남아 수제화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서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만든 세련되고 질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한국의 브루클린이라고 불리는 성수동 골목은 빈티지한 멋이 풍긴다. 수제화 거리에 젊은 디자이너들이 모여들면서 이들이 건물에 직접 벽화를 그렸다. 벽화마을처럼 벽화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게 아니라 골목 곳곳에 흩어져 있다. 실력도 수준급이다. 골목을 지나면서 발걸음이 더디어지는 이유다.  벽화골목, 연무장길은 섬세하게 그린 동양화와 모카책방의 노란색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노란 벽화는 얼마 전 큰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모카책방은 문을 닫고 섬유공장이 되었지만 벽화 앞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모여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제화 거리에서 이어지는 카페거리는 성수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공장지대였던 성수동에 독특한 카페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문화가 생겨났다. 1970년대 정미소였다가 이후 창고로 사용되었던 ‘대림창고’는 빨간 벽돌을 그대로 살린 멋스러운 카페로 거듭났다. 상호가 그대로 카페 이름이 되었다.

개성 넘치는 인테리어와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 같은 분위기 덕분에 해외 유명 브랜드의 패션쇼가 열리고 전시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낡은 공장 건물에 세련된 실내장식이 어우러진 카페거리는 시대를 거슬러가는 젊은이의 성지가 된 것 같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새로운 것, 변화된 성수동의 매력이 아닐까.      


추억의 놀이공원으로 시간여행서울 용마랜드 

산 아래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던 회전목마는 멈추었다. 알록달록한 놀이기구들은 세월의 더께를 입은 듯 녹슬었다. 중랑구 면목동 용마산 기슭에 자리한 용마랜드는 1983년 놀이공원으로 개장했다가 2011년 문을 닫았다. 시간이 멈춘 용마랜드에 최근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고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는 놀이동산은 변한 것도, 쓸 수 있는 것도 없지만 새로운 관광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어린 시절의 감성과  놀이기구가 주는 알록달록한 색감 때문에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알려지면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낡았지만 아날로그 감성이 그대로 묻어있어 웨딩 사진을 찍거나 패션 화보를 찍기도 한다.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도 인기 있다. 백지영, 아이유, 엑소 등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하면서 한류문화를 사랑하는 외국인들도 종종 눈에 띈다. 

멈춰버린 놀이기구, 성처럼 예쁜 스튜디오, 간단한 음료와 컵라면을 파는 매점, 고장 나서 한쪽에 버려진 놀이기구들이 제멋대로 놓인 작은 공간에서 다양한 풍경이 담긴다. 산기슭에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가을날, 추억을 저장하러 나들이를 나온 친구들과 데이트를 하는 커플의 모습은 파란 가을 하늘처럼 싱그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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