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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Sep 15. 2019

삶의 힐링이 되는 숲 이야기

도심 속 산책길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서울 한복판에 ‘여기가 도심인가’라고 말하기 무색할 정도로 숲이 우거지고 흙냄새 가득한 곳이 있다.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고 가벼운 등산을 하는 서울 곳곳의 숲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오늘도 수고한 나를 위로해 줄 도심 속 오아시스를 산책한다.     


하늘과 맞닿은 초원하늘공원

상암동 월드컵공원은 한강변에 있는 난지도라는 섬이었다. 난지도는 난초와 지초가 만발하는 꽃섬이었다. 철새가 날아드는 생태의 보고였다. 그러나 1978년부터 15년 동안 서울시의 쓰레기 매립지가 되면서 먼지가 날리고 악취가 풍기는 불모의 땅이 되었다. 환경파괴를 묵인하면서 고도성장한 서울시는 1996년 난지도에 생태복원과 환경재생사업을 시작했다. 난지도는 2002년 5월 월드컵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월드컵공원은 평화의 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하늘공원, 네 개의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그중 하늘과 가장 가까운 하늘공원은 가을이 무르익으면 가장 아름다운 빛을 낸다. 은빛 억새의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하늘공원의 은빛 물결을 보려면 291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요금을 내고 맹꽁이 전기차를 타면 공원까지 쉽게 오를 수 있지만 진정한 풍경을 보려면 계단을 올라야 한다. 가파른 계단을 하나씩 뒤로 할 때마다 장막이 걷히고 서서히 무대가 드러난다. 고층 빌딩과 어우러진 한강, 높이 솟은 남산 서울타워, 거대한 바위를 품은 북한산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서울이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였던가. 두근대는 심장은 가쁜 숨인지 벅찬 가슴인지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하늘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정원 한가득 피어있는 코스모스가 반갑게 맞이한다. 그 너머로 바람을 따라 억새의 물결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요즘 한창 인기가 올라 몸살을 앓는 핑크뮬리와 댑싸리도 붉게 물들었다. 억새밭 사이를 걷는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척박했던 땅에서 힐링의 땅으로 변모한 아름다운 공원은 하늘 아래에서 빛난다.     


도심 속 산책길 서울숲

“뉴욕에 센트럴 파크, 런던에 하이드파크가 있다면 서울에는 서울숲이 있다.” 성동구에 있는 서울숲은 문화예술공원, 자연체험학습원, 생태숲, 습지생태원, 한강수변공원을 테마로 조성된 공원이다. 옛날에는 임금이 사냥하고 무예를 검열하던 곳이었다. 뚝섬 나루터에서 충청도와 경상도를 오가며 물자를 나르고, 강변에서 수영을 즐기기도 했다. 1950년대 이후에 들어선 경마장, 체육공원, 골프장을 이전시키고 2005년 도심 속 녹지로 재탄생했다. 

서울숲에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어린이 놀이시설도 있어 가족끼리 도심 속 나들이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산책로를 따라 연인들이 나란히 걷고, 아이들이 탄 자전거가 달린다. 책 한 권을 들고 나와 커피 한잔을 마시며 숲이 주는 여유로움을 만끽한다. 


화려한 꽃이 피는 봄이나 나무들이 붉게 물든 가을에는 모든 숲이 아름답지만 서울숲에서는 사계절이 즐겁다. 추운 겨울에도 곤충식물원에서 나비와 신기한 곤충들,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생태숲으로 거듭난 서울숲에는 꽃사슴, 고라니, 다람쥐, 원앙, 청둥오리 같은 야생동물들이 서식한다. 사슴 우리가 있어 사료를 사서 사슴에게 직접 먹이를 주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예술의 향기가 흐르는 인왕산 숲길수성동 계곡

인왕산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다 하여 서산(西山)이라고 불리다가 세종 때 인왕산(仁王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인왕산 자락에서 태어난 세종대왕은 어진 마음으로 조선을 다스렸다. 인왕산의 이름처럼, 인왕산 자락에는 어진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치를 직접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은 인왕산 아래 청운동의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국보로 지정된 <인왕제색도>는 효자동에서 인왕산의 동쪽을 바라보며 그린 작품이다. 

인왕산 골짜기에 흐르는 수성동 계곡은 정선의 <장동팔경첩>에 ‘수성동’ 그림으로 등장할 만큼 아름답다.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수성동 계곡에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비해당(匪懈堂)’이라는 별장을 짓고 살면서 아름다운 경관에 심취해 당대의 문인들과 ‘비해당사십팔영시’를 남겼다. 수성동 계곡은 1971년 옥인 시범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수려한 경관이 가려졌다가 2011년 아파트를 철거하고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았다. 

인왕산 숲길을 걷다 보면 쉼터에서 ‘황소 화가’ 이중섭의 그림을 만난다. 이중섭은 가족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지만 가난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 처가로 보낸 후 인왕산 근처 누상동에서 하숙하며 개인전을 준비했다. 개인전이 성공하면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기에 매일 아침 수성동 계곡에서 목욕하고 온종일 그림을 그렸다. 

또 다른 쉼터에서는 천재 시인 이상과 화가 구본웅의 작품도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인왕산 자락에서 태어나 같은 학교를 졸업하며 각별한 우정을 나눴다. 구본웅은 이상의 초상화를 그렸고, 이상은 구본웅을 위해 시를 썼다. 

파란 하늘 아래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숲길을 걷다 보면 별처럼 빛나는 민족시인 윤동주의 흔적을 만난다.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종로구 누상동에서 하숙하며 종종 인왕산에 올랐던 윤동주는 인왕산 자락 언덕을 오르내리며 시를 지었다. 이 시기에 <별헤는 밤>, <자화상> 등 지금도 사랑받는 작품을 썼다. 윤동주시인의 언덕에 서서 도심 한복판을 바라보니 그의 시처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다.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아름다운 숲길은 예술가들의 풍성한 이야기가 운치를 더한다.      


아이들의 꿈의 자라는 북서울꿈의숲

강북구 번동에 있는 북서울꿈의숲은 예전에 드림랜드가 있던 자리에 조성된 공원이다. 월드컵공원과 올림픽공원, 서울숲에 이어 서울에서 네 번째로 크다. 북서울꿈의숲에서는 숲의 아름다움과 한국의 전통미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벽오산과 오패산의 울창한 숲에서 맑은 공기가 흘러나온다. 공원 가장 높은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산과 도봉산, 수락산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남산과 한강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공원에 들어서면 노랗게 색이 깊어진 은행나무 아래로 전통 한옥이 있다. 순조 임금의 둘째 딸 복온공주와 부마 창녕위의 재사인 ‘창녕위궁재사’인데, 사랑채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공원 한가운데에는 월영지라는 커다란 연못과 정자, 애월정이 있다. 산수화처럼 늘어진 소나무 아래에는 월광폭포가 흐르고 있어 고즈넉한 정취가 느껴진다. 

월영지 너머에는 서울광장의 두 배에 달하는 넓은 잔디광장이 펼쳐진다. 상상톡톡미술관을 배경으로 펼쳐진 잔디밭, 청운답원에는 유치원에서 소풍 나온 어린이들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마음껏 뛰놀고 있다. 

꿈의숲 아트센터의 아름다운 건물이 투영되는 거울 연못과 점핑분수, 상상어린이놀이터, 시민들의 소망을 담은 희망의 숲에서는 다양한 문화체험과 이벤트가 열린다. 수생식물이 사는 생태 연못과 사슴 방사장에서 자연 체험도 할 수 있는 북서울꿈의숲에서 어린이들이 꿈이 자란다.  

    

도심 속에서 만나는 세계유산 선릉과 정릉

강남구 빌딩 숲에 있는 조선왕릉 선릉은 조선 제9대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이다. 선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했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이 성종, 오른쪽 언덕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선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조선 제11대 중종의 단릉, 정릉이 있다. 중종은 성종과 정현왕후의 아들로 태어나 1494년 진성대군에 봉해졌다. 이후 1506년 박원종 등이 연산군을 폐위하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한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

선정릉은 왕과 왕비의 봉분이 있는 능침 공간, 제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인 정자각, 왕릉의 관리와 제례를 준비하기 위한 재실이 있다.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600여 년 전의 제례를 볼 수 있다. 가을색이 깊어진 수령이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할 수도 있다. 전통문화를 담은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선릉과 정릉은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이해하며 산책할 수 있는 울창한 숲길이 이어져 있다. 담장 너머는 번잡한 도심이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을 품고 있는 숲길은 고요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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