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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Sep 15. 2019

맛과 멋, 재미까지 갖춘 시장 이야기 1

시장은 더 이상 물건을 사고파는 곳만이 아니다. 그 안에는 삶의 온기가 녹아있다. 좋은 상품을  가져다 팔기 위해 이른 새벽 경매시장에 나가 눈을 반짝이는 상인들,  팍팍한 일상에서 쉽게 만나지 못하는 넉넉한 인심, 손을 꼭 잡고 나온 가족과 연인의 사랑이 왁자지껄한 풍경 속에 뒤섞여 있다.

도시가 발달하고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재래시장이 위축되었지만 시장에는 여전히 서민적인 맛과 멋이 있다. 최근에는 시장을 깨끗하게 정비하고 편의시설도 마련되어 이용하기 편해졌다. 구경만 해도 재미가 가득한 시장에 가자.  


 창신동 골목 시장

낙산 자락에 자리한 창신동 주변에는 동대문 일대 상권이 발전하면서 시장이 많이 들어섰다. 1970년대 말부터 청계천 주변의 봉제 공장들이 평화시장과 가까운 창신동에 많이 옮겨왔다. '드르륵'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와 원단이나 의류를 옮기는 오토바이 모터 소리가 끊이지 않는 창신동 골목에는 3000개가 넘는 봉제 공장이 모여있다. 창신동 647번지 일대는 동대문 의류 시장의 생산기지이자 거리의 봉제 박물관이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에서는 봉제 산업의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역사관 옥상에서 내다보이는 산 중턱에 촘촘히 박혀있는 집들의 풍경이 소박하다.


봉제 골목에서 내려오면 창신 시장 맛 골목으로 이어진다. 창신 시장에는 봉제 일로 바쁜 사람들을 위해 바로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 재료나 반찬을 주로 판다. 뭐니 뭐니 해도 창신 시장의 명물은 매운 족발이다. 골목에는 숯불 위에서 굽는 족발 냄새가 가득하다. 시장 골목 사이사이로 보이는 오래된 한옥과 목욕탕도 정취를 더한다.


시장을 나와 옆 골목으로 이어진 언덕길을 오르면 창신동 197번지에 ‘백남준기념관’이 있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여섯 살 때부터 일본 동경으로 떠나기 전까지 살았던 집이다. 조선의 마지막 외무대신이 살았다는 그의 집은 대문이 어찌나 컸던지 ‘큰 대문 집’으로 불렸다.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나 창신동에서 성장기를 보낸 백남준은 세계 여러 곳에서 활동했지만 창신동의 유년 생활을 그리워했다. 그는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창신동에 가고 싶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창신 시장 앞에서 큰 대로를 건너면 동대문 문구·완구 거리가 나온다. 있다. 부모님의 손을 꼭 잡고 나온 아이들에게 보물섬 같은 곳이다. 100여 개의 완구점이 늘어선 거리의 상점 앞에서 하나같이 눈을 떼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바라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완구 골목을 지나 동묘역 쪽으로 나오면, 대로변에 작은 국밥집이 있다. 원래 서민 화가 박수근 창신동집 터였다. 박수근은 6.25 전쟁 동안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 모은 돈으로 산 집에서 골목과 장터에 앉아있는 서민들을 그렸다. <우물가>, <빨래터>, <길가에서> 등 그의 대표작들이 이 터에서 탄생했다. 아이들과 쪼그려 앉은 노인, 행상 나온 여인의 소박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그대로 화폭에 담았다. 현재는 그의 집터에 음식점이 들어서 있고 흰 담벼락에 ‘박수근 화백 사시던 집 10년간’이라고 적혀 있을 뿐이다. 누가 썼는지 모를 필체를 바라보며 '이 시대의 문화의 근거지 보존할 방법을  하루빨리 찾을 수 있기를', 그런 생각을 했다.


동묘 벼룩시장

장터 한가운데 <삼국지>의 영웅 관우를 모시는 동묘가 자리한 동묘 벼룩시장에서는 의류, 골동품, LP판, 카메라, 헌책 등 오래된 물건들을 판다. 독특하고 희귀한 아이템들이 넘쳐나 주말이면 가족과 연인,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와 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동묘 벼룩시장은 물건만 진귀한 게 아니다. 길거리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구제 옷가지에서 보물찾기 하듯 옷을 고르고 입어보는 사람들도 진풍경이다. 신발, 가방 같은 패션 소품까지 잘 고르면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패션 리더가 될 수 있다. 구제 옷가게는 인기스타가 즐겨 찾은 곳으로 알려지면서 빈티지 명소가 되었다.

낡은 오디오, 시계, 도자기, 그릇, 헌책 등이 수북이 쌓여 있는 동묘 벼룩시장은 골동품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화가 박수근의 그림 속 수수한 장터의 모습을 떠올리며 찾았지만 수많은 인파에 몰려다니다 보면 그런 풍경은 느낄 새가 없다. 그래도 여전히 어린 시절 추억의 스며 있는 동묘 벼룩시장에서는 30년 전통의 멸치국수를 맛볼 수 있고, 천 원짜리 한 장이면 따뜻한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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