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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 Jan 14. 2022

출근하는 삶 밖에서 더 풍요롭게 산다


아무리 퇴사가 흔해졌다지만, 퇴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을 때마다 스스로가 한 결정에 대해 그리고 그런 결정을 또다시 내린 자신에 대해 많은 고민과 의심을 했던 건 사실이다.


내가 끈기도 참을성도 부족한가?

이렇게 '버티는 것'을 잘 못해서야 성공할 수 있을까?


이직과 퇴사, 창업, 그리고 다시 입사를 하고 두 번의 퇴사를 더해오면서 이제서야 더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내가 버티기도 못하고 끈기도 참을성도 부족해서 내 인생은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 앞으로의 삶은 훨씬 더 다채롭고 즐거울 거라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많이 흔들리고 기쁘고 가라앉고 즐겁고 의심하고 다시 신나겠지만.



프로 이직러에서 출발한 프로 퇴사러


2014년 처음 정규직으로 일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이직을 제외하고 총 네 번의 퇴사를 했다. 그중 두 번의 퇴사가 2021년 한 해 동안 이루어졌다. 이직은 세 번 정도 했다. 그저 주어진대로 대학 졸업했으니 취업하는 건 당연한 거였고, 취업은 전공을 살려서 하는 게 학비가 아깝지 않은 권장사항이었고. 그렇게 길지 않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내 인생에 다른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은 채 회사만 옮겨 다녔다.


최선을 다해 용기 내어 그 상태를 벗어났음에도 원래 나에게 주어진 곳으로 곧 다시 돌아가고 말았다. 분명했던 건 당시 내가 하고 있던 일이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는 것과, 그런 상태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는 것, 하지만 그게 뭔지 정확히 몰랐다는 것.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하던 일이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점점 능숙해지다 보니 쉬워지고 재미도 있었다. 그럼 회사가 문제였을까? 그것도 아니었다. 내가 만족하지 못했을지언정 객관적으로는 오히려 정말 괜찮은 회사들을 다녔다. 주변엔 좋은 동료들이 있었고, 괜찮은 대우를 받았다. 일이 고민이면서도 직무를 바꾼 적은 없으니 그렇게 이직과 퇴사를 반복하면서 연봉만 높아져갔다. 정작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졸업하는 줄 알았지만


문제없이 회사를 다니는 삶에 익숙해져 갈 때 즈음 결국 해결되지 않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침에 눈뜨면 가장 먼저 하는 생각 앞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엄청나게 만족스러운 상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내가 원하는 삶이 뭔지도 정확히 모르겠는 그런 상태. 소위 말하는 경제적 자유가 목표였다면 회사를 다니면서 얼마든지 그것만을 위해 노력해볼 수 있는 상태였다. 실제로 부동산 경매 수업을 들으며 투자처를 알아보는 것까지도 했으니까. 그런데 분명 그게 아니었다.


결국 내가 엄청나게 목말라했던 건 스스로에 대한 존재 이유였다. 존재의 이유라.. 너무 깊게 파고 들어가면 정말 끝도 없는 생각의 시작이지만 당시 이것에 대한 나의 생각은 스스로의 효용성에 대한 고민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주어진 노동하면서 주어진 월급 받는 것 말고 내가 하고 있는 게 뭐지?


노동이 아니고 내 일이 하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회사를 졸업하고 창업을 하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환경에 놓여있었고, 나는 처음으로 퇴사가 아닌 졸업을 했다. 늘 브랜딩과 언론 대응을 위한 자료를 만들고 기사를 쓰고 기자들을 만나러 다니던 내가, 좋은 동업자와 함께 브랜드를 만들며 제품을 만들고 직접 웹사이트를 만들고 펀딩을 했다. 브랜드를 통해 어떤 가치를 만들고 싶은지 이야기하자 팬들이 모였다. 세상에 만들어 내놓은 물건이 팔리기 시작했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내 것'을 만들어본 경험이었다. 세상엔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는 걸 알았고 얼마 가지 않아 많은 것들을 몰랐기 때문에 넘어졌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는데, 아직 닥치지 않은 현실적 문제에 대한 걱정이 두려움이 되고, 나는 다시 내가 그렇게 벗어나려고 했던 길로 '일단'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스스로와 타협을 했다.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은데 훗날을 도모한들 무슨 소용이었을까. 스스로가 만족할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가 뭐였는지 이미 알고 난 후여서였을까. 다시 회사를 들어가니 이전에는 충분히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문제들을 오히려 더 견디지 못하게 됐다. 그렇게 단 4개월 동안 이미 기록적이었던 퇴사 경험에 두 번을 더 얹었다. 프로 이직러는 프로 퇴사러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직과 퇴사, 창업과 재취업을 거치며 알게 된 것


그렇게 나는 완전히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누군가 그럼 개쫄리지 않냐고 물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얻은 건 많지만 잃은 건 딱히 없었다. 안정감이 좋은 건 맞지만 그게 목표랍시고 추구한 적은 없었기에.


대학교 때부터 최선을 다해 하고 싶은 건 별생각 없이 해왔다.

대학교 4학년에 광고 동아리 신입생이 된다거나, 취준생 시절 자소서 수십 개 쓰면서 이게 뭐 하는 건지 모르겠길래 다 때려치우고 독일 가서 왠 작은 무역회사에 취직을 한다거나, 1년 차 신입시절부터 창업 교육을 듣는다거나, 대리였던 이직 1년 차에는 퇴사학교 강연을 들으러 다닌다거나, 등등.


해야 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반항을 소심하게나마 최선을 다해 해왔던 것과, 직장인이 되고 난 후부터는 프로 퇴사러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 참 잘 살아온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많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얻은 가장 좋은 건 지금의 내 마음 상태 그 자체다. 정말 꽤 걱정과 두려움 없이 산다. 무엇보다, '누구보다'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 나 자신의 최선이 되어가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걱정과 두려운 마음이 있으면 걱정하고 두려워할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걸 알았다. 그냥 잘 해왔던 대로 하고 싶은 것, 내가 충분히 의미 있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만들면서 좋은 마음을 가지면 좋은 것들이 다가온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누가 옆에서 백날 천날 말해도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야 마음에 와닿지 않는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은 개쫄려서 못하겠다고 이야기한다면, 그냥 일단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대답하고 싶다. 생각보다 세상은 믿으면 믿는 대로 된다는 걸 너무 늦게 아는 것보다는 이왕 에너지 넘칠 때 아는 게 나머지 인생 더 신나게 살아가기에도 좋을 테니. 최선을 다해 내가 나 자신이라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내놓는 날들이 쌓이면, 내가 바라는 것들이 알아서 다가와 줄 거라는 걸, 그래서 뭔가 참고 버티기보다는 내가 지금 당장 즐거운 것들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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