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자유롭다.
오늘 오전 대체로 떠오른 생각은 이랬다.
보통의 월요일과는 다른, 내가 지금껏 보내온 수많은 월요일과는 다른 월요일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7시에 알람이 울리긴 했지만 더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침대로 돌아가지 않고 곧장 고양이에게 인사를 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딱히 갈 데는 없지만 주말 새 무릎 컨디션이 많이 나아져서 이제 다시 오늘부터 산책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기분이 좋았다.
여름의 숲에서는 진한 풀냄새가 난다. 며칠 동안 비가 온 탓에 땅은 많이 젖어있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한여름에도 시원한 숲 속 바람, 폐에 가득 들어찼다가 나가는 풀냄새, 그 와중에도 그새 이리저리 바쁜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만약 내가 그 분주함에 집중했다면 사라지지 않고 한참을 남아있다가 결국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한다거나, 일 생각에 골똘했겠지. 뭔가를 빨리해야 한다는 그 생각에 밥을 주지 않았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도 괜찮았다. 어차피 그 일은 내가 지금 애써 하려 하지 않아도 하게 되어 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숲을 걸을 때 벌레 하나만 지나가도 벌벌 떨면서 마음을 꽉 조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조여진 마음에는 좋은 것들이 떠오를 틈이 없다는 걸 알고부턴 그냥 뭐든 나오라지, 와서 나한테 붙으면 그냥 떼내면 돼, 뭘 그렇게 미리 사서 걱정이야, 한다. 느긋하게 풀어둔 마음에 그냥 알아서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좋은 것들을 붙잡지만 너무 꽉 쥐진 않는다. 내가 그토록 걱정했던 일들(벌레가 나무에서 떨어진다든지..)은 여태껏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도 뭐, 상관없어.
삶도 마찬가지다. 늘 뭔가 되거나 되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하며 남들이 해야 한다는 것들을 열심히 쫓아갔던 적도 있다. 성공하려면 새벽같이 일어나야 돼, 성공하려면 한 우물만 파야 돼, 돈 벌려면 투잡 쓰리잡 N 잡 정도는 해야지, 남자는 이런 사람을 만나야지, 서른 중반 전엔 결혼해야지, 등등. 돌이켜 보면, 이 중에서 그 무엇도 해내려고 하지 않았을 때부터 삶이 술술 알아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마음 가는 대로 하면서 살아봤더니 삼십 대 중반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알게 됐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하게 됐으며, 아이러니하게 진심 어린 내 안의 북극성을 발견한 이후로는, 조급하지 않아졌다. 오히려 삶 전반에 걸쳐 내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화해 갈지 기대된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다음 달이라도 망해버릴 것만 같았던 내 인생은 그저 강물 흐르듯 흘러간다. 회사를 박차고 나온 지 어느새 만 3년이 되어가는데, 망하기는커녕 돈은 회사 다닐 때보다 많이 번다. 곧 결혼하는 남자친구도 마찬가지다. 어떤 기대도 집착도 바라는 것도 없이 만났는데, 나에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한 건 그저 그 어디에도 힘 주지 않은 것, 그뿐이다.
물론 아무 노력도 없이 이렇게 된 건 아니다. 힘을 빼는 데도 노력이 필요했다. 다만 내가 한 노력은 어릴 때부터 배웠던 노력과는 좀 다른 결의 것이긴 했다.
최선을 다해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노력했다. 마음이 가는 건 따라가려고 노력했고, 마음 가지 않는 것은 놓아 버리려고 노력했다. 성공한 누군가의 이야기보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했고, 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나 에너지를 주는 사람은 아무리 중요했던 사람이어도 피하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내 삶의 기본값을 '달게 받는 사람'으로 세팅하려고 노력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날씨가 좋으면 햇빛을 달게 받았고, 나가서 걸을 수 있는 시간을 달게 받았고, 사랑하는 존재들의 그저 내 곁에 있어줌과 나에게 주는 사랑을 당연하지 않게, 아주아주 달게 받았다.
그렇게 내 안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믿음 하나가 자라났는데, 세상은 나에게 좋은 것만 가져다준다는 믿음이었다. 그것도 가장 알맞은 때에 가장 알맞은 모습으로, 나에게 필요한 것들은 반드시 다가온다는 믿음. 그것들이 비록 나에게 기쁨과 사랑 같은 감정뿐만이 아니라, 아프고 슬프고 화나는 감정을 가져다주는 것들일지언정, 나는 그것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것이고,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그게 어떤 종류의 것들이든 나를 곧 지나쳐 가게 될 거라고.
이 믿음 하나로 나는 앞으로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