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지 않은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의 단상
부캐 인스타그램 계정이 본캐의 팔로워 수를 앞지른지도 2주 정도가 됐다. 그런데 두 달 정도 제로웨이스트를 주제로 인스타를 운영하면서 느낀 건 첫째는 죄책감이고 둘째는 지루함이다. 스스로 이런 일상을 올리면서 지루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진정성이 없다고 해야 하나. 소비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대한 소비를 지양하고 쓰레기 생산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피드를 다채롭게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내가 만들어낸 쓰레기를 찍어 올리는 플라스틱 일기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채식을 요리해 먹는 장면을 올리는 거였는데 나는 소비도 꽤 좋아하고 요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래서 결국 ‘귀찮은 비건 레시피’라는 태그를 개발해 이것저것 올려보았으나 이런 나 자신에게 지속가능한 테마가 아니라는 걸 느끼고 말았다. 그래도 나름 일상에서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 중인 게 맞고, 고기를 먹지 않은지는 꽤 됐으며 되도록 채식을 하려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느라 나를 웬만큼 아는 사람들이라면 고기를 권하지 않는 단계까지 온 것도 맞다. 그럼에도 나 스스로가 제로웨이스트나 비거니즘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계정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늘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않았다. 적어도 제로웨이스트나 비거니즘이라는 단어를 대문에 내걸었으면 남들보다 뭔가는 더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늘 존재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서 이런 압박감을 느끼면서까지 계속해나가고 싶지 않다. 그리고 제로웨이스트나 비건을 조금 마음먹은 누군가도 이런 압박감과 지루함을 느끼고 중간에 그만둬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더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 볼까? 친환경만을 주제로 하는 건 진짜 재미없다. 제로웨이스트 자체에 집중하는 게, 그렇게 운영 중인 내 계정이 지루하고 따분하다.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소비한 물건을 자원으로 또는 물건 자체로 어디로든 되살려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일상들 자체가 따분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장면을 찍어서 기록해서 콘텐츠로 올리는 게 따분하고 이런 콘텐츠로 가득 차있는 내 피드가 따분하다. 이건 올릴만한, 즉 인스타그래머블한 일상이 아니라 그냥 일상 아닌가? 이걸 여기서 어떻게 더 재밌게 표현하지? 이쯤 되면 내 부족함이 재미없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제로웨이스트나 비거니즘이 나와 맞지 않다고 단정 짓고 싶지 않은 이유는 나는 실제로 최선을 다하고 있고 내 노력 자체는 즐겁기 때문이다. 다만 이걸 가지고 스스로 콘텐츠 같은 것들을 만들어내서 이게 나라고 매일매일 피드를 업데이트하는 거, 이거 진짜 이제는 재미없고 스스로가 불편함을 느껴서 못하겠다. 내 피드를 내가 내려보면서 그닥 즐겁지가 않다.
일본에서 유명한 건축가 이토 도요는 그저 건축가로 우선 유명하며 그 다음의 수식어가 ‘자연 친화적인 건축을 하는 건축가’다. 그는 ‘사람이 있고, 거기서 뒹굴고 먹고 자고 하는 활동이 있고, 그걸 바탕으로 생태가 있는 것’이니 소재를 바꾸고 단열성을 올려 에너지를 아낀다고 해도 재미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자연의 체계와 조금씩 가까워지는 건축을 하고 싶다며 누구보다도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을 하는 사람이지만, 생태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사는 세상이고 내가 사람이다. 사피엔스를 읽으며 나란 존재 자체가 지구에 해롭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쩌겠나 내가 그 당사자인 사람인걸. 이왕 태어났으니 생에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들의 의미와 재미를 느끼며 생동감 있게 살아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걸고 인생이라는 다채로운 피드를 꾸미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건 철학과 진정성을 가진 브랜드다. 그런 브랜드를 찾고, 좋아하고, 소비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꾸 내 안에서 환경과 자본주의가 부딪힌다. ‘환경보다’라고 썼다가 지운 이유는 비교급이 어울리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은 그야말로 디폴트, 일상 아닌가.
한편으론 내 일상에서 환경이 최우선이었으면 했다. 노력하고 싶었고, 노력하기로 했고, 그래서 노력해온 순간들을 기록한 것들이 스스로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체가 조금 속상하기도 하다. 하지만 스스로가 환경운동가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아닌 이상 환경을 테마로 내건 피드를 계속해서 운영하는 것에 대한 회의는 분명 있다. 나는 너무나도 지금 내가 선택한 일상의 규칙들을 앞으로도 지속해나가고 싶다. 부러지고 싶지 않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 지구와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물들이 걱정된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너무나도 계속해나가고 싶지만 이 자체가 내 삶은 아니다.
환경 자체가 삶의 목적인 사람들을 존경한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건 제로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을 테마로 하는, 내가 이 계정을 운영하며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피드가 지루하다는 게 아니다. 열정적으로 실천하는 그들을 보며 늘 자극받는다. 선한 영향력은 그들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이 글은 원래 운영하던 본 계정을 두고 굳이 ‘제로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을 내건 부캐를 따로 파서 운영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단상이다. 내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에 대한 회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나다워지기로 했다. 솔직히 가끔 카페 가서 일회용 종이컵도 쓰고, 급할 땐 비닐도 쓴다. 어려운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굳이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이런 일상을 가진 보통사람이다. 나 스스로의 삶이 온전히 환경만을 향하는 사람이 아님을 인정하는 중이다. 다시 한번, 부러지고 싶지 않다. 나 스스로를 조금 풀어내어 내가 결심한 것들을 지켜가는 내 삶을 살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