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 2015>
저의 집에서는 매 주 작은 영화관이 오픈합니다.
저와 제 가족의 은밀한 곳이죠.
상영시간은 '마음이 내킬 때'이고 팝콘과 콜라 대신 커다란 B사의 아이스크림이 대신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상영 영화도 항상 달라지는군요.
오늘은 이 오래되고 은밀한 영화관에서 마이클 케인 주연의 영화, 유스가 상영되었습니다.
스위스에 위치한 최고급 호텔에 휴가 차 머무르는 프레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은퇴했지만 한 평생을 음악만 해온 아주 명망 있는 지휘자이자 작곡가이며 슬하에 아름답고 지적인 딸을 두고 있습니다.
프레드에 옆에는 그의 오랜 친구 믹이 있습니다. 믹은 수 많은 세월 동안 수 없이 많은 여배우들을 배출해 낸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입니다. 그는 엄마를 빼닮은 아들의 아버지이며 많은 열정 있는 스탭들(이자 보조작가)들의 꿈이자 희망입니다.
레나는 프레드의 딸입니다. 은퇴 후에도 계속되는 전 세계적인 러브콜들을 대신 받아주고 해결해주는 프레드의 개인비서입니다. 바람난 남편에게 버림받은 직후라 그런지 예민해져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지금까지 쌓아왔던 울분을 토해냅니다.
지미는 유명한 영화배우입니다. 차기작에 들어가기 전 캐릭터 분석차 이 호텔에 왔습니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자신의 대표작, '미스터 큐'의 흥행 덕분이지만, 수많은 작품에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미스터 큐로밖에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호텔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공중부양에 시도하는 스님, 대회 부상으로 호텔에 잠시 머물러 온 미스 유니버스, 전설의 축구선수 (a.k.a. 마라도나), 서로에게 절대 말 안 하는 커플 등등 많은 사람들이 호텔에 묵으며 자신의 삶 속에 가장 평온하고 한적한 시간을 보내는 듯합니다.
다들 호텔에서 평온하기만 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가 젊든, 많든 모두가 다 무언의 고통과 고민을 가지고 있지요.
그 대표적인 인물이 프레드입니다.
호텔에 머물고 있는 꼬마 아이가 무심코 바이올린으로 연습하고 있는 곡이 알고 보니 프레드의 곡인 것처럼 세계적으로 정말 유명한 예술가인 프레드에게 영국의 여왕으로부터 특사가 왔습니다. 은퇴한 그에게 여왕을 위해 그의 곡 '심플 송'을 연주해달라고 부탁하네요. 하지만 프레드는 단칼에 안된다고 거절합니다. 얼마 뒤, 똑같은 특사가 또 와서는, 연주 한번 하는 것이 뭐 어려운 것이냐는 투로 물으며 끝까지 생떼를 부립니다. 그는 프레드에게서 프레드가 연주를 못하는 개인적인 이유를 듣고 그제야 돌아갑니다.
바람난 남편에게 이혼당하기 직전인 딸에게 "난 너의 아픔을 이해한단다"라는 한마디 했다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호되게 욕먹습니다. 딸이 그에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뭘 알아요."
영화는 인간에 대해, 그리고 관계에 대해 너무 솔직하게 담고 있습니다. 그냥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진솔하게 담은 듯한데, 말로만 솔직한 것이 아닌, 영상으로서도 여자와 남자의 몸을 아무렇지도 않게 스스럼없이 나체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왜인지 보는 사람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냥 정말, 우리가 생긴 그대로 보여주니까요.
사람이란 원래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듯이.
늙는다는 것은 문제도 아니고 잘 못된 것은 더더욱 아니지요. 다만 세월과 함께 무력해지는 옛 시절의 열정과 후회로 가득한 그들의 기억만이 그들을 정말로 나이 들게 만드는 것이 아닐지 또한 시간이 흘러도 상처 주고 상처받는 것은 똑같은데, 생을 꼭 유년과 노년으로 나누어야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가는 이 시간이 빼앗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열정입니다.
자신은 이제 관심 없다고는 말하지만 프레드에게는 젊은 날 그렇게 열망했던 음악이라는 열정이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믹에게는 자신이 죽기 전 마지막 유작을 남기고 싶은 꿈이 있지요. 호텔에 있는 사람 모두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니, 있었습니다. 이것을 이루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 자신에게는 어쩌면 그 무엇보다 큰 극복일 수도 있겠네요.
호텔에 머무르려 온 미스 유니버스 조차 자신을 미스터 큐로 바라보는 지미는 그 사실에 대해 분노와 회의감을 느끼는데요. 어느 날 그런 그에게 한 소녀가 찾아와 아무도 보지 않은 그의 한 작품을 인상적으로 보았다 말하며 이러한 말을 합니다.
"그때 전 깨달았어요. 이 세상에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요."
소소한 영화관에 올려지는 영화들은 모두 작가가 추천하고 싶은 영화들이며 모든 글은 작가의 극히 주관적인 소견임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