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소 Jan 20. 2016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주노, 2007>

저의 집에서는 매 주 작은 영화관이 오픈합니다.

저와 제 가족의 은밀한 곳이죠.

상영시간은 '마음이 내킬 때'이고 팝콘과 콜라 대신 커다란 B사의 아이스크림이 대신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상영 영화도 항상 달라지는군요.

오늘은 이 오래되고 은밀한 영화관에서 독특한 이름을 가진 사랑스러운 소녀의 이야기, 주노가 상영되었습니다.




keyword #1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주노의 오프닝, 팝아트로 재미있게 묘사해 놓았다.


우리 사회에도 은근히 많습니다. 중, 고등학생 때 사고를 쳐 아이를 낳고 키우거나 입양 보내는 아이들.

요즘에는 고등학생이 아이를 가지면 아이가 아이를 낳는다고 하지만 사실 100년 전만 해도 이건 굉장히 당연한 일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어린 나이에 시집,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고 하는 것은 집안의 경사로 받아들였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조금씩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는 나이도 미루어졌고,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애는 물론이거니) 결혼을 포기한다는 얘기까지 나왔으니, 이 시대에 고등학생이 임신을 한 다는 것은 모두에게 조금 잔인할 수 있는 일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는 여 주인공 '주노'가 큰 오렌지 주스를 들고 다니며 마시고 편의점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테스트해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안타깝게도(?) 몇 번의 테스트 모두 선명한 두줄, 임신이 확실하군요.


이제 한 생명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든 것은 만 열여섯 주노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keyword #2 <최고로 좋은 것은,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거란다*>


주노에게 말실수 하는 초음파 테크니션.


1년 전 스페인어 수업에서 그 아이와 첫날밤을  가져야겠다 생각한 후 정말 그렇게 실행에 옮긴 주노. 화려한 첫날밤은 막을 내렸지만, 그녀의 정상적인 생활도 그날로 끝나버렸는데요.


일단 주노는 첫날밤 대상인 블리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또 아이를 지울 거라고도 합니다. 그러자 블리커는 그녀에게 "네가 옳다고 생각되는 대로 해"라고 말하죠.


블리커에게 말한 데로 주노는 일단 여성단체가 운영하는 동네 클리닉으로 가서 낙태를 하려고 시도합니다. 하지만 클리닉 바로 앞에 서있는 그녀의 학교 친구가 이렇게 말하네요.


"너의 아기도 심장이 뛰고 고통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도 손톱이 있어!"


그 말을 듣고도 클리닉 안으로 들어간 주노는, 클리닉 특유의 분위기와 냄새 때문인지 그곳을 뛰쳐나오는데요. 클리닉에서 나온 후 주노는 제일 친한 친구 리아를 찾아가고 리아는 주노에게 아이가 필요한 불임부부를 찾아보라고 말합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주노의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끝까지 같이 주노 곁에 머물러있는 그녀의 친구, 리아. 찌질하지만 마음만은 태평양인 주노의 첫 남자, 블리커. 그리고 딸이 임신했다는 소리를 듣고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주노를 서포트해주는 부모님까지.


제일 인상적인 사람은 주노의 새어머니 브렌다인데요. 그녀는 주노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우선순위로 해야 할 것을 적으며 주노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그녀와 함께 병원에 다니며 주노를 살뜰이 보살핍니다. 또 주노가 초음파를 찍으러 갔을 때 학생인 주노가 임신을 했다고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초음파 의사에게 이런 따끔한 일침을 날리기도 하는데요.


"아, 당신은 저런 사진들 찍고 노니까 당신이 특별한 줄 아는가 보죠? 근데 이건 내 다섯 살 먹은 딸도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리고 뭐 하나 말해 줄까요? 내 딸은 그렇게 똑똑한 아이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어디 한번 다시 학교에 다니며 진짜 중요한 게 뭔지 배우는 게 어때요?"


어쩌면 어린 나이에 때 이른 결정을 내리는 아이들이 문제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법에 어긋난 일도 아니고 또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건 더더욱 아니니까요. 이 어린 엄마 아빠들을 차별하고 손가락질하는 우리 사회가 진짜 문제점인 것은 아닐지. 또 혹시나 아이를 낳고 귀중한 생명을 버리는 일이 없도록 (어른들을 포함한)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줄 수 있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올바른 시작의 의미로 이 영화는 그 수많은 성교육 프로그램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이제는 예방만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자신의 선택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 지 가르쳐야 될 때니까요.


(* 극 중 주노 아버지의 대사)



keyword #3 <경험의 무역>


누구 앞에서든 당당한 주노와 그녀가 고른 아이의 양부모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노는 동네 일간지를 통해 자신의 아이를 입양해줄 아름답고 지적인 로링부부를 찾게 되고. 그 부부에게 아이를 주기로 약속합니다. 주노는 아이와의 교감을 위해서 종종 로링부부의 집에 들르고 부부와 친해지게 되는데요. 주노는 자신의 아이가 이런 행복한 집에서 좋은 부모 밑에서 자라게 될 것에 대해 굉장히 뿌듯하고 행복해합니다. 하지만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아이의 양아버지가 될 마크가 주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죠. 그는 주노에게 말합니다.


"아내를 떠날 생각이야."


주노는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먹고 차 안에서 펑펑 웁니다.

(학교 사람들의 시선과 아이 아빠랑 싸움이 원인으로) 막달에 다다른 자신의 신세도 한탄스러운데, 이 아이가 자라날 가정도 파탄에 이르기 전이니까요.


마크는 아직 자신은 아버지가 될 준비가 안되어있고 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며 집을 나가버립니다. 어쩌면 자신이 벌린 일에 할 수 있는 데까지 책임을 지는 주노보다 일을 벌여놓고 마음을 바꾸었다고 갑자기 아내를 떠나버리는 그가 더 무책임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아이의 양아버지가 될 사람이 없어 저 버렸으니 이 집에 아이를 입양 보낼 건지 말 건지는 다시 주노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차 안에서 펑펑 울고 난 후 주노가 로링부부의 집을 다시 찾아와 이런 쪽지를 남겨 두고 가는데요. 바네사는 마크의 아내입니다.


"바네사, 아줌마가 그래도 원하시면, 저도 그래요."






소소한 영화관에 올려지는 영화들은 모두 작가가 추천하고 싶은 영화들이며 모든 글은 작가의 극히 주관적인 소견임을 말씀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해하기 벅찬 수많은 세월의 무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