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읽기의 날들, 고통과 의미
책으로 마음이 진짜로 움직이는 경험은 드물다. 나를 바꾸고, 내 삶의 결을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틀어놓는 독서는 흔치 않다. 하지만 수잰 스캔런의 『의미들: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은 그 드문 순간을 겪은 그녀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녀는 정신병동이라는 제도적 공간에서의 시간을 회상하며, 자신의 고통을 문학의 언어로 다시 쓴다. 그 과정에서 읽기와 쓰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회복의 행위가 된다.
현대 사회에서 정신적 고통은 점점 더 압도적인 형태로 다가오고, 그에 대한 사회적 해법은 여전히 부재하다. 그 공백 속에서 문학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읽기의 날들’은 단순한 문학적 실험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을 되찾기 위해 수행한 치열한 정신의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스캔런의 글쓰기는 자신이 겪은 병원 생활을 재현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곧 그것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그녀는 단지 ‘정신질환 환자’로 머물기를 거부한다. 대신 그 경험을 언어로, 이야기로, 문학으로 옮긴다. 이는 고통을 치료하거나 지워버리는 일이 아니라, 고통을 이해 가능한 형태로 번역하는 일이다. 그녀는 의사들이 요구했던 “되찾은 기억”의 서사에 맞추어 자신을 진단받는 대신, 자신이 직접 그 기억의 주체가 되기로 선택한다. 그렇게 그녀의 문장은 병리학적 언어를 벗어나, 자기 서사의 언어로 확장된다.
그녀가 실비아 플라스, 버지니아 울프,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의 문장을 끌어들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작가들은 각자 고통을 견디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언어를 빚어낸 여성들이었다. 스캔런은 그들의 글을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 하나의 생존 기술로 받아들였다는 점이 신선했다. 문학이 그녀에게는 약물보다 더 실제적인 치료의 도구가 된다. 플라스가 글을 통해 자기 파괴를 넘어선 순간, 울프가 강물에 몸을 던지기 전 써내려간 문장들, 뒤라스가 욕망과 광기를 오가는 인물들을 통해 드러낸 인간의 진실한 이야기가 스캔런의 회복 언어가 된다. 단순히 감동하거나 공감하는 차원을 넘어서, 타인의 문장을 자신의 생존을 위한 영양분으로 흡수하는 행위였던 것이 처절하지만 살 길을 찾기 위한 한 인간의 마지막 노력임을 알고 나니 문학의 의미가 조금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스캔런이 주목한 ‘미친 여자들’은 오랫동안 문학 속에서 불안과 광기의 은유로 소비되어왔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을 불운한 여성의 상징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고통과 광기를 저항의 언어, 진실에 다가가는 힘으로 재해석한다. 플라스의 자살, 뒤라스의 중독, 울프의 침묵은 실패가 아니라, 기존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열어젖히기 위한 시도였다. 스캔런은 바로 그 지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쓴다. 정신질환의 이름으로, 혹은 사회의 낙인으로 타인이 그녀의 이야기를 대신 써버리기 전에, 자신이 직접 자신의 서사를 써야 했다. 그것은 단순한 자전적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문학적 실천이었다. 그녀는 ‘미친 여자들’의 계보 속에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더 이상 환자나 피해자가 아닌 ‘서술자’로 서게 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문학이 얼마나 근본적인 윤리적 행위인가를 생각했다. 문학은 타인의 고통을 흡수하면서도, 그것을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고통이 살아남을 수 있는 언어의 형태를 마련해준다. 스캔런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문학의 기능은 바로 그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고통을 대리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언어로 번역해 다시 세상 속으로 돌려보내는 일이다.
『의미들』의 후반부는 서서히 병동을 벗어나 현실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스캔런은 여전히 불안과 우울, 상실의 그림자를 짊어진 채 살아간다. 그럼에도 그녀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읽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읽기는 회피가 아닌 움직임의 시작이었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일, 즉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행위였다.
책을 읽는 나 역시 그 감각에 깊이 공명했다. 읽기는 단지 타인의 이야기를 소비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정적을 깨뜨리고, 내 삶을 미세하게 흔들어놓는 행위다. “읽기가 돌봄이 된다”는 문장은 결국 이런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문장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새롭게 바라보고, 그 시선을 통해 조금씩 나아간다. 읽기는 내면의 고요한 치료이며, 동시에 다시 세상 속으로 걸어나가게 하는 힘이다.
스캔런의 문학은 고통을 치유한다기보다,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그녀의 글을 읽는 동안 나는 ‘회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삼 다시 생각했다. 그것은 완치나 구원이 아니라, 여전히 흔들리면서도 살아내는 힘이었다.
『의미들: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은 고통을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그 고통을 언어화하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의미의 세계로 옮겨놓는다. 스캔런은 자신의 병력을 통해 사회 제도의 한계를 드러내면서도, 그 너머에서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을 증명해 보인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이야기를 되찾는 일, 읽기를 통해 다시 자신을 돌보는 일이다. “네가 네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그들이 이길 거야.” 문학은 그 이야기를 되찾게 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다. 스캔런의 읽기와 쓰기처럼, 우리 모두의 독서도 누군가의 고통에 닿아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때 읽기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한 언어가 된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8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