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한기를 느끼고 오들오들 떨면서 새벽 전례에서 돌아왔다. 그대로 이불속으로 파고들어 추위를 녹인다. 춥다.
유튜브에서 이호선 교수의 영상을 찾아본다.
‘손절해야 하는 친구’ 다행히 딱 들어맞지 않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동시에 씁쓸한 기억을 되새긴다. 무언가. 어제 오후나절의 기억이 왜 이리 개운치 않은 걸까. 하기야 이 나이에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나씩 떨궈내면 누가 남으리! 허나 힘이 빠지는 건 숨기지 못한다.
친구들과 지난해 송년회와 신년회를 거른터라 모처럼 얼굴을 보기로 했다. 단체 카톡을 통해 날을 잡는 작업이 하루안에 되지 않는다. 확인 즉시 가부간 본인의 사정을 알리면 되련만 열어보고 답이 없다. 그다음 참에는 열어보지도 않고 기다린다. 거기에 장소를 임의로 지정하지 않으면 결론이 나지 않는다. 늘상 같으니 새삼스러울 것 없이 추진하기로 한다.
외국인의 성지라는 광장시장에서 기분을 내보기로 마음을 먹고 남편과 함께 미리 한 번 방문하여 이곳저곳을 둘러본 다음 케이블방송의 영상을 참고로 적당한 밥집과 찻집 그리고 주전부리를 물색했다.
약속의 날. 역시나 넷이서 모두 만난 시간은 약속 시간으로 정한 후 40여 분이 지난 시각이다.
집에서 다짐과 주의사항을 단단히 듣고 온 터라 그나마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밥집에서 그녀는 시작했다. 점심을 위해 들어간 매운탕 집에서 불판에 놓인 4인분의 대구탕이 돌아가신 시어머니와 동서에 얽힌 기억이라며 버럭 화를 냈다. 지각 사유로는 엊그제 다녀온 병원에 들러 의사 선생님과 싸우고 왔다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 대화 전환을 위해 꺼낸 단발머리 스타일에는 대꾸가 예민하다. 4인용 대구탕이 4마리가 아니라며 투덜이다.
그냥 가만있으면 본전인데 만나자고 주선하는 그것부터가 착오였다는 생각이다.
상가에 숨은 4층짜리 패브릭 카페를 찾아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없는 엘리베이터를 탓하며 한껏 불만을 쏟아내며 먼저와 돌아보고 주선한 이를 무색게 하는 재주도 있다.
찻집에 차를 주문하지 않고 음료를 담아가 마시다 주의를 들었다는 얘기도 스스럼없이 하며 그건 곤란한 행동이라는 조언에 누가 그걸 모르냐며 되려 변명을 멈추지 않는다. 무엇보다 끝 간 데 없이 격에 닿지 않는 얘기를 혼자서 단 한 치의 틈도 없이 계속 계속 해나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단 한마디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한 채 우울한 만남을 또 경험한다.
3월부터는 주 3일간 전문봉사단원을 위한 종일반 수업에 참여해야 해서 기존 일정을 변경해야 한다. 가장 먼저 새벽 전례의 요일을 바꾸어야 한다. 만만치 않은 수영장의 요일 변경도 시도해야 한다. 과감히 포기할 것이 늘어난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용기 또한 보여줘야 한다. 자잘한 변화에서, 많은 변동이 있을 예정이다.
나의 새로운 시작에 그 친구는 ‘싫어’'싫어'를 연달아 열 번쯤 외친다. 본인은 싫단다. 혹시 내가 싫다는 말인가? 이러면 자연스레 근황의 주고받고가 되지않는다.
또 한 친구는 이사 예정이고 나는 의욕 상실 예정이고 이호선 교수는 손절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나의 퍼즐을 쥐고 있는 오래된 친구의 소중함이랄까.
다음날 단체 카톡에 글이 올라온다.
‘요즈음 건강이 좋지 않아서 예민한 것 같다고.’
‘말을 할 것이지. 어쩐지 너무 많이 변했더라니까, 감당이 안 될 만큼.’
나이 먹은걸 인지하는 방법중 하나.
만나면 아픈 얘기 하고 헤어지면 병원 간다고…. 우리 우울에 또 한 짐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