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서 5월을 산다는 것
바야흐로 5월의 우리는 기념일의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아이들이 커서 이제는 어린이날의 의미가 줄었지만, 아직은 녀석들이 결혼 전이라서 손주가 없는 상태이긴 하지만, 나는 당일 아침 직장 따라 분가한 어른이들에게 축하금을 보낸다. "축하해."라는 메시지와 함께. 동시에 우리 집을 방문한 초등학생 조카들에게도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진심을 전한다.
며칠 후 어버이날, 엄마에게 축하금을 받은 어른이도, 조카 녀석들도 예외 없이 의무감이 되살아나는 날이다. 양가 부모님은 계시지 않는다. 우리 둘이 오롯이 어버이이다. 딸은 며칠 전 저녁을 같이했지만 아들 녀석은 당일 아침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근무라서 정신없긴 할 거다. 나름 이해한다.
점심 무렵 아빠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엄마. 깜박했네. 회사 사람들이 얘기해서 알았네. 축하해요. 며칠 있다 봅시다.“
“그러자~”
“꽃 배달 서비스라는 것도 있단다.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는 어버이날 선물은 현금이란다. 적어도 그 전 주 휴일엔 엄마 밥을 청해도 기분이 좋단다.”를 말할 순 없다. “그래 장가가지 않을 때 데면데면해야 그나마 기대가 제로일 테니 벌써 처세하는구나. 너희와의 저울추가 조금이라도 기운다면 서운한 이런 마음을 내색할 수도 없을 테지? 대기업 과장님은 바쁘실 테니까.” 서운하면 지는거다.
5월 한가운데 결혼기념일이 있다. 많이도 흘러버린 결혼생활로 별 공감이 없는 기념일이지만, 그래도 곁에 함께 하는 이가 최고인 건 분명하다. 며칠 전 약간 서운했던 감정이 추슬러지는 날이다. 오전에 큰시장에서 절임 오이와 마늘종 그리고 열무와 얼갈이를 가져와 노노 출석 전 갈무리하느라 온종일이 다 간다. 그이는 저녁을 사 주겠다며 굳이 고깃집으로 인도한다. 못 이기는 체 따라나서 한 상 잘 챙겨 먹고서 꽃 한 다발도 선물 받는다. 나 또한 올해는 현금 때우기가 아닌 요긴하고 기념될 만한 것을 하나 장만해야겠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선생님이 생각나는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사모님은 전화할 때마다 고향에 오거든 당신의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라고 강권하신다. 선생님의 빈 자리를 애석해하시며 그나마 잘 이겨내시는 모습을 본다. 가장 예민하고 가장 중요한 때, 내게 영향을 주신 분. 여고 때 국어 선생님은 늘 말과 행동이 같으셨고 조용하되 울림이 있으셨다. 서울에 오실 때마다 나에게 연락하셔서 차 한잔같이 하셨다. 수많은 선생님과 같이 한 나의 전 생애. 많은 선생님에게 한없는 호의로 선입견을 품게 하셨던 분이다.
올해 스승의 날 주인공으로 점찍은 이는 사무관 시험 때 도움을 준 선배다. 그에게 스승의 날 당일에 만남을 청한다. 차를 한 잔 사드려야지. 내가 오늘 장만한 반찬을 챙겨 건네드려야지. 당신으로 인해 나의 오늘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얘기해야지. 당신이 올해는 나의 기념일 중에서 참 스승이라고 전해야겠다.
해질 녘. 신록의 바람은 푸르고 석양은 설레게 붉다.
감사하고 소중한 날들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