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어린이날
지금은 자녀의 어린이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됐다. 직장 따라 분가한 두 녀석을 위해 당일 아침 폰뱅킹으로 ‘오늘 축하금’을 쏜다. ‘아직도 엄마 아빠는 너희가 어릴 적 기억 속의 그대로를 사랑한단다‘는 의미이다.
우리 아이들 어릴 적에는 어린이날에 놀이공원을 찾았었다. 그때는 4호선 사당역이 종점이어서 전철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과천대공원으로 갈 때도 있었고 용인 자연농원도 갔다. 민속촌에도 자주 갔었다. 두타골목의 완구점도 추억 속의 한 지점이 되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점점 커갔고 더는 어린이날에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새벽 성당을 다녀와, 서서히 준비를 시작한다. 점심쯤 도착하는 꼬마 손님을 위해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어릴 적, 나는 어린이날의 의미를 몰랐다.
’어린이날이 뭐야?“
우리 중 누구도 어린이날을 기다리지 않았고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었다.
대신 논두렁 따라 뛰놀던 기억만이 남았다.
그런 어린 시절을 가진 나는,
엄마가 되었을 때 결심했다.
‘내 아이들의 어린이날만큼은 다르게 기억하게 하자.’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면 그걸로 충분했다. 나도 누군가를 부러워하지않게 되었다.
아이들이 다 자라 어른이 된 지금, 아직 손주는 없어 어린이날은 개점 휴업이다.
올해는 반가운 손님들이 온다고 했다.
사촌 동생이 초등학생인 아이 둘과 숙모님을 모시고 올라온다.
아이들과 아빠가 함께 계획한 서울 나들이.
나는 그들의 여행 중간 기착지가 됐다.
포근한 잠자리, 시원하게 마실 식혜 한 들통,
아이들이 좋아할 간식 몇 가지와 맛있고 푸짐한 저녁을 준비하며 내 나름의 어린이날을 준비한다.
긴장해서인지. 밥은 설고 찬은 싱겁다.
일행의 일정으로 미처 들르지 못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당동 떡볶이는 다행이도 우연히도 미리 사뒀음에도 어른의 식사와 맞물려 늦어지고 말았다.
마음먹고 준비한 음식들은 1박 2일이 짧아 들려 보내야 하는 포장 메뉴가 되고 만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위해 마음 써준 날’이라는 기억으로 남는다.
그날 누가 나를 바라봐줬는지,
누가 내 하루를 특별하게 여겨줬는지.
그게 어릴 적 우리에게 얼마나 포근한 기억이였는지
어른이 된 지금은 너무 잘 알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어린이날을 조용히 만들어주는 어른이 된다.
어릴 적 나에게 보내는 위로처럼.
나의 방식으로, 나의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