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맛, 빠개장
오래전 엄마는 이쁜 치매였다. 성당에 신실해서인지 두 손을 가슴에 나란히 모으고 늘 머리를 숙였었다. 아버지가 지극정성을 다해 구완하는 엄마를 보러 일가친척이 다녀갈 때면 늘 밥을 챙겨야 한다며 안절부절못했다. 종가 맏며느리의 밥에 대한 강박관념은 그때 증세로 발현된 것이다.
막내고모가 다니러 왔을 때 '언니 빠개장 한번 먹어봤으면 좋겠다.' 했다. 고모가 세 살 무렵 엄마는 시집을 왔고 엄마는 오랜 세월 대식구의 끼니를 해결했는데 엄마의 빠개장이 생각난 것이다.
나도 그 음식을 기억한다. 초봄 김장김치가 맛있게 익어가면 엄마는 그 김치를 잘게 썰어 손바닥만한 가운데 구멍이 뚫린 담북메주를 넣어 부뚜막에서 발효시킨 다음 밥상에 올렸다.
그날 나는 빠개장을 잊기로 했다.
세월이 많이 지나 엄마도 돌아가시고 잊혔으나 외숙모가 몇 개 건네준 담북메주로 나는 딱 한번 빠개장을 담아 친정 나눔을 했었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었다.
이번 추석, 친정에 다니러 갔는데 동생 중 한 명이 빠개장 얘기를 꺼냈다.
'초봄 엄마의 그 음식'을 소환한 것이다.
외숙모께 전화를 돌렸다.
'글쎄 그게 무얼 말하는지 모르겠구나’
네이버를 검색했다. 한국의 장 된장을 뒤졌다. 어디에도 내가 찾는 빠개장은 없다. 신문 문화면의 ‘맛있는 여행’에서 빠금장을 발견했으나 내가 찾는 빠개장은 아니다.
맥이 끊긴 음식이라는 글이 뜬다.
메주가루와 고춧가루, 손바닥만 하게... 다만 그 정도의 기억이다.
며칠 후, 외숙모가 전화하셨다. 곰곰 생각해 보니 생각이 나셨단다.
“노란 콩 (메주콩)을 삶아서 3, 참기름집의 깻묵장을 1로 섞어서 주먹만 하게 동그랗게 뭉친 다음, 가운데 구멍을 뚫어 대바구니에 짚을 깔고, 일주일정도 그늘에 말려 띄운다.
김장김치를 쫑쫑 썰어 넣은 김치국물에 메주를 잘게 부숴 넣어 상온에서 사흘쯤 발효해서 먹는다.”
엄마는 시골살이를 할 때,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광 열쇠를 관장했었다. 일곱이나 되는 남편 형제와 할머니의 실세 덕에 아무런 실권이 없는채로 종가살림의 어려운 일은 모두 도맡았다. 친정에서 배워 온 몇 안 되는 음식솜씨로 그 세월을 견뎠다.
그 엄마음식은 고모들에게도 추억의 맛이었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삼삼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기교 없는 음식은 명절 끝자락 개운한 맛을 기억하는 이에게 절실한 맛이었다.
감사했다. 받아 적어둔 방법으로 이번 설에는 빠개장을 담을 셈이다. 친정 나눔 할 때 고모님도 챙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추석에 열무 세단과 한 들통의 육개장은 단연 인기였다. 40인분짜리 잡채도 한 몫했다.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요리를 하는 재미를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더불어 누군가의 기억에 추억으로 남은, 하지만 잊혀가는 엄마의 맛을 찾아 따라 해보고자 한다.
이때 외숙모는 나에게 寶庫이다.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