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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강 Aug 10. 2022

달리기에 대하여


러닝을 시작한 건 4년 전인 대학교 1학년 때이다. 수능 입시로 급격하게 불어난 살과 반대로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살을 빼면 좋아하는 애한테 말이라도 걸어볼 수 있을까 싶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자취하던 망원 유수지에서 학교 앞 한강인 상수 나들목까지. 거울을 보고 기분이 나빠질 때마다 나가서 달렸다. 왕복 6km는 너무 길었다. 내 심장은 갑자기 두 배 이상 높아지는 분당 박동 수에 익숙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3km를 헐떡이며 뛰고서 나들목 벤치에 누웠다. 끈적한 바람과 함께 작은 벌레들이 나를 괴롭혔지만 내 정신은 오직 숨을 다시 찾는 것에 집중한다. 반환점에서 다시 달리기 시작하면 몸이 풀려서일까 아니면 이제 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일까, 올 때보다 덜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숨이 턱 끝까지 차 걷고 싶어질 때는 그 애를 떠올린다. 조금 더 달릴 힘이 생긴다. 


4년이 지난 후 초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사실 1년도 지나지 않아 달성했다. 75kg에서 65kg으로 감량에 성공하고 3년째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자존감도 많이 올라왔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나를 안 좋게 볼까 두렵지 않다. 대부분 좋게 볼 것을 알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이 나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리고 세상이 나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믿는다. 


달리기가 나에게 준 것은 많다. 건강을 주었고 친구들을 주었다. 긍정적인 마인드셋을 주었고 힘을 주었다. 더 이상 달리기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아 보인다. 물론 지금 달리기를 그만둔다면 달리기의 신이 배은망덕한 나를 괘씸하게 여겨 내게 준 것을 다시 회수할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조금의 예의만 갖추면 될 일이다. 매주 일요일 제멋대로 살다가 신의 집에 찾아가 같은 죄를 수없이 참회하는 사람들처럼 매주 부담되지 않을 정도의 달리기를 해준다면 많은 것을 잃지 않고도 달리기와 거리두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왜 달리기를 열심히 하는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기 위해서, 몸의 유전적 한계에 접근하기 위해서 등의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사실 단순히 Sub 3를 달리고 문신을 새기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목표나 이유는 어찌 됐건 달리기를 열심히 하는 내가 싫지 않기 때문에 당분간은 열심히 달릴 생각이다. 아무래도 이게 내가 FLEX를 하는 방식이지 싶다. 맞다. 나에게 달리기는 FLEX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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