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조금만 마셔볼까

by 이수강

요즘에는 이런 말을 하기도 조심스럽지만, 나는 자라면서 남자는 3가지를 조심해야 한다고 들어왔다. 술, 도박, 그리고 여자다. 사실 들어서 배울 것도 없이 아버지라는 사람이 술과 도박 그리고 여자에 빠져 가정을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박살내고 있을 때 느꼈다. 이것들은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조절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를 사랑해야 하는 그가 이렇게 자신과 가족을 망치는 일에 적극적일 수 없겠구나.


나는 다행히도 도박에는 재능이 없다. 스무 살 때 친구들과 놀러 간 제주도에서 텍사스 홀덤을 하면서 깨우쳤다. 고작 2만원을 잃고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친구가 그 2만원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을 때 세상이 다시 밝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규칙도 모르던 친구들에게 처참하게 발리고 나서 분하기도 했지만 안심이 되기도 했다. 무서운 것은 어중간한 재능이다.


그리고 여자는, 여자의 마음은 내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내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을 때 아무 행동도 내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또 대부분의 여자들은 내가 그들에게 어떤 행동을 해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 슬프지만 예쁜 얼굴로 내게 다가오는 그녀는 경계 대상이다.


문제는 술이다. 술에 취한 남자 어른을 보고 좋은 꼴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작년까지만 해도 술을 극도로 피했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단 한순간도 술을 즐기지 않았고 단 한순간도 나를 놓지 않았다. 물론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지만, 술을 마시고 유흥을 즐긴다는 것이 꿈이나 목표를 포기하고 지금 이상태에 정착하겠다는 의사표시라고 생각했다.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술 취한 남자 어른이 되는 것이 싫었고 현실에 안주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보잘것없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술을 즐기기 시작했다. 전역을 해서, 연애가 끝나서, 동아리를 운영하게 돼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술을 마시는 빈도가 매우 잦아졌다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한 말을 그대로 쓰자면 지금까지 살면서 마신 술보다 지난 6개월 간 마신 술이 더 많다. 술을 마시고 아버지처럼 욕을 하거나 과격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제 몸을 못 가누는 상태가 돼서 바닥을 기는 일이 종종 생기고 있다.


나는 내 꿈을 포기한 것인가? 이 정도에 만족하고 평생을 살 것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마음속으로는 '올해까지만'을 되새기고 있다. 남은 삶을 함께할 친구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가장 별 볼 일 없을 때 가장 별 볼 일 없는 시간을 보내주는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하는 것이 즐겁다. 이 생활이 계속되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격언이 들어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모래성 게임을 하는 것처럼 테두리만 야금야금 긁어내고자 한다. 나는 안일하게도 나는 다르겠지, 내 깃발은 땅 깊은 곳에 박혀있겠지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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