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슬로우, 치앙마이
어제부터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시무룩했다. 치앙마이에 오고 너무 들떠서 무리를 한 탓일까. 난 여전히 하고 싶은게 많지만, 컨디션 회복을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푹 쉬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뜨거운 물로 온 몸을 뿌리고 커피를 사러 나섰다. 무척 비싸고 양이 무척 적어서 처음엔 실망했지만 마셔보니까 생각보다 고소하니 입맛에 딱 맞은 치앙마이 더티커피. 호스텔 1층 테이블 위에 더티커피를 두고 책을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침 사색의 시간이다.
책의 주제는 사랑이다. 책을 읽으며 사랑의 실천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봤다. 사랑의 실천은 ‘별 거’라고 여겼지만, 실은 ‘별 거 아닌 것’에서 오는 경우가 많고 그 별 거 아닌 것으로부터 사랑은 흐르고 잔상으로 남는다. 내가 지금 실천할 수 있는 사랑은 무엇일까. 문득 한국에서 갖고 온 엽서 2장이 생각났다. 어여쁜 포르투갈 풍경이 담긴 내가 정말 아끼는 엽서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땡큐카드를 써보리라 결심하고 갖고 온 것이다. 내일 체크아웃하는 날인데 체크아웃을 하면서 호스텔 직원에게 땡큐카드를 전달하고 싶었다. 이들의 정성스러운 서비스와 친절함 덕분에 낯선 타지에서 온 나그네들이 편히 머무르고 나아가 행복한 기억까지 만들고 갈 수 있었다.
- 호스텔 직원들에게.
정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해주신 모든 직원분들께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여러분의 친절함 덕분에 편안하면서 행복하게 있을 수 있었어요.
여기에서의 행복한 순간을 잊지 못할 거예요!
물론 땡큐카드는 나의 서투른 영어로 진심을 꾹꾹 눌러담아 적었다. 내용은 별 거 아니지만 ‘별 거 아닌 것’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호텔리어로 일했을 때 몇 몇 손님들은 땡큐카드를 남기고 체크아웃했다.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손님으로 만났지만 이 손님들은 잊지 못한다. 처음엔 무뚝뚝한 얼굴이었지만 환하게 인사하면 반전의 환한 미소로 화답해준 러시아에서 온 손님, 투숙하는 내내 큰 친절을 모든 직원들에게 베풀며 다음에 또 오겠다고 얘기해준 남미에서 온 러블리한 자매 등 이들의 얼굴, 이들과의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이들의 땡큐카드는 개인 SNS에 기록해두었고 내 마음에 진한 잔상으로 남았다.
또한 이 작은 엽서는 지난 여행에서의 만남을 상기시켰다. 달랏에서 만난 선교사님과의 진지한 대화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인생 얘기는 나에게 무척이나 큰 영감을 주었고 그녀의 응원은 앞으로의 한 걸음에 큰 영향을 미쳤다.
7년 전 달랏 호스텔 도미토리에서 만난 베트남 경찰 보의 친절함 덕분에 그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를 소개받아 잔디 언니를 알게 되었다. 자신의 꿈을 쫓아 포토그래퍼가 된 잔디 언니. 참고로 잔디 언니는 베트남 사람이다. 언니가 찍어준 우리들의 사진은 지금도 내가 가장 아끼는 사진이 되었고 꿈을 이루길 바란다는 언니의 응원은 잊지 못한다. 내가 당시 인스타 계정을 잊어버려서 연락이 끊긴게 정말 너무 아쉽다. 그리고 7년 전에 사이공에서 같이 홈스테이도 해주고 하루 종일 나를 데리고 사이공 투어를 해준 카피라이터 언니, 외국인인 나와 대화하면서 영어를 더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미소가 너무나도 예뻤던 베트남 대학생도 잊지 못한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려고 공항에 갈 때까지 친절을 베풀어준 이들의 따뜻함을 어찌 잊으랴.
기억에 남는 여행에서의 만남은 해외에만 있지 않다. 제주도 숙소에서 알게 된 이제 막 전역한 그와의 담소는 잊지 못한다. 조잘조잘 계속 얘기하는 나의 옆에서 성심성의껏 들어준 그는 다독가답게 나에게 최은영 작가님의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책을 소개해주었다. 직접적인 조언보다 센스 넘치는 책 추천이 너무 고맙고, 그 덕분에 최은영 작가님을 알게 되어 너무 좋았다. 자, 이번 여행에는 어떤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