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
슬픔이 펜을 잃어버렸다. 진짜 슬펐다. 제일 아끼는 펜인데 이건 순전히 나의 부주의 탓이었다. 슬픔이를 잃어버린 것을 눈치챈 것은 쿤밍공항에서 입국신고서를 작성할 때였다. 이번 중국 여행에서 펜 한 자루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덜렁 홀로 가지고 왔는데 가방을 아무리 뒤져도 없는 것이었다. 덜렁덜렁 가지고 다니다가 아무래도 비행기 안에 놓고 온 모양이었다. 슬픔이를 애타게 찾는 내 모습을 보며 문득 내가 진짜 잃어버린 것은 슬픔이 펜이 아니라 나를 강하게 잡고 뒤흔드는 슬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웃고 싶어하고 행복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거기 가기까지의 과정에 울음의 골짜기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었다. 베트남 달랏에서 시작한 이 여정은 울음의 골짜기에서 시작해서 행복의 언덕을 넘어 평안함의 지대로 가는 ‘천국의 그림자’이자 삶의 작은 여정이다. 여정 중 쓴 기록들이 천국의 그림자를 밟는 기록이 되어 침대 위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 될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여정을 기록하며 늘 그런 소망을 품는다. 마른 체구에 약하디 약한 몸뚱아리에 여리디 여린 마음을 가졌으며 막 실직한 대한민국 30대 여자도 침대 위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시간을 건너 몸채만한 배낭을 이고 적지 않은 시간 먼 땅을 이곳저곳 누볐으니까 진짜 못할 거 없다. 진짜로, 진짜로!
- 아프면 다시 와야 해, 꼭. 심심하면 중간에 와.
뒤엔 배낭, 앞엔 백팩을 메고 현관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가족들은 내 뒤에서 자꾸만 빠꾸를 외쳤다. 왜 저러나 몰라. 뭘 다시 와! 그러나 쿤밍공항에서 환승하면서 새벽에 시간이 붕 떠서 찬바닥에 누워 소위 공항노숙이라는 것을 하려는데 강하게 가족 생각이 났다. 원랜 의자 위에 누우려고 했는데 이미 그곳을 점령한 사람들로 꽉 찼다. 그냥 맨바닥에 누운 사람들이 더러 있기에 나도 맨바닥에 배낭을 내려놓고 그냥 누워보았다. 그러나 바닥이 너무 차서 오래 누워있진 못했다. 따뜻한 집, 내 방, 침대와 장판이 무진장 그리워졌다. 찬바닥이 이리도 냉정한지 몰랐다. 난 늘 따뜻한 곳에 누워서 지냈으니까. 참 귀하게도 자랐다. 내 자리의 소중함을 알겠더라. 그리고 따뜻한 내 자리를 주기 위해 각자 삶의 자리에서 희생한 나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피어올랐다. 내가 말로는 표현 못하지만 실은 많이 고맙고 무진장 사랑해.
태국 가기 직전 항공 참사가 있었다. 중국으로 떠날 시기 산불 재난이 닥쳤다. 산불은 우리의 땅을 삼켰다. 땅과 터전은 순식간에 불살라지고 많은 이들의 삶과 소망이 망가졌다. 왜 매번 불편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떠날까. 새처럼 가볍게 훨훨 날아 떠나고 싶은데 마음에 돌덩이를 두고 날아가는 것 같다. 늘 기회가 된다면 엉덩이를 밖에 아주 꼭 붙일 생각이었는데. 내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는 마음이 나를 다시 그 땅으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