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하버에서 그린 순간들

홍콩 (2)

by 이수하

그때 그 순간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란 것을 알았더라면.



텅 빈 집을 홀로 쓸쓸히 지켜준 당신. 정말 어쩌다 시골집에 놀러가면 손녀들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문에서부터 기쁘게 반겨준 당신. 밥 안 먹는다고 신경질을 내도 꼭 손녀의 끼니를 챙겨준 당신. 배고프다고 말만 하면 난리법석 밥을 채려준 당신. 할머니. 천국에서 우리 만나면 있잖아. 그땐 내가 할머니 밥 채려줄게.

일을 하는 딸을 위해, 갓 세상에 나온 손녀를 위해 자기의 일과 삶을 포기한 당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손녀들을 육아해준 당신. 이런 사랑으로 당신은 나를 키웠다. 나는 당신의 사랑을 먹고 자랐다. 당신이 포기한 당신의 시간과 삶을 먹고 쑥쑥 컸다.

전쟁통을 지나 궂은 일들을 다 겪고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니 손녀들을 키운다. 손녀들 다 크고 나니 이번엔 남편이 치매다. 아픈 남편 곁을 힘겹게 힘겹게 지키다 그를 눈물로 보내고 몇 년 뒤 당신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너무 보고 싶은 나의 할머니, 최남순. 나를 사랑해준 당신. 나에게 사랑을 부어주고 사랑을 알려준 당신. 너무 아까운 당신. 너무 고마워. 고마워, 할머니.



그때 그 시절, 우린 참 프론트에서 재밌게 일했었지. 지나가는 청춘의 순간 속 나의 곁을 지켜준 고마운 이들이 있다. 일이 힘들어도, 때론 사람들이 못되게 해도 청춘의 동료애가 그 쓰디 쓴 것들을 다 덮었다.

활기찬 토리. 영특한 얀. 따뜻한 에이미. 차분한 엘레나. 그리고, 우리들의 굿리더 루나. 이렇게 서로 다른 우리는 하나를 이루었다. 누군가 했던 말처럼 우린 파워레인저 같은 팀이었다. 함께해서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을 겨우 이 정도의 단어로, 겨우 이 정도의 표현으로 정리해본다. 만나는 이는 줄더라도 그리운 이들은 어쩜 이리도 늘어가는지. 덕분에 고마운 마음만 진해진다.

홍콩 하버를 뒤로 하고 끄적끄적 글을 쓰며 회고하는 지금 이 순간도 그리운 그때, 돌아가고픈 순간이 되겠지.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참 소중하다. 너무 소중하다.

당신의 지금 이 순간도 부디 소중한 순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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