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4)
나에게 홍콩은 낭만 그 자체다. 낭만주의자인 나에겐 아주 취향저격인 셈이다. 낮엔 올드 빈티지가 나를 감쌌고 밤엔 기가 막힌 야경이 나를 녹였다. 좋은 걸 볼 때마다 내가 혼자임이 더 절실히 느껴졌다. 나의 옆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절실히 생각나는 것이었다. 아, 같이 와서 이 좋은 걸 봤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이번 여행에 질문 테이프를 가져왔다. 이 테이프는 나에게 물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고 하면, 내 옆을 꼭 가까이서 지켜주었고 지켜주고 있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삶의 많은 시간을 손녀 돌보는 일에 썼다. 할머니는 손녀를 절대 굶기지 않았다. 손녀를 결코 허기지게 하지 않았다. 할머니 손에 자란 나는 결코 허기지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무뚝뚝한 듯 따뜻한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유치원 하원할 때 늘 와주었고 늘 한결같은 우리 할아버지가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나의 부모님은 우리에게 희생하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우리 엄마는 자식들 부족함 없게 키우기 위해 정말 뼈빠지게 일했다. 정말 누구보다도 열심히 산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다. 아빠는 다정한 아내바보이자 딸들에게 다정한 아빠다. 늘 아내가 최고로 예쁘다고, 우리 딸들 정말 예쁘다고 표현해주는 사람이다. 나는 최고의 부모는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라고 생각한다.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부부로써 서로가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 서로를 굉장히 아끼고 애틋하게 바라보는 것이 자식된 입장에서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당신들의 사랑이자 당신들 사랑의 산물이고 당신들은 우리 자매에게 든든한 사랑의 울타리였다. 조금 서글픈 것은 나를 든든하게 지켜준 울타리들은 점점 낡아져가고 있는 것이고 이젠 내가 그 울타리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모들이 너무 좋다. 나의 어린 시절 우린 같이 살았다. 1층은 우리집, 2층엔 할머니, 할아버지와 당시 미혼이었던 7번 이모, 8번 이모, 9번 이모가 살았다. 7번 이모는 깍쟁이인 듯 따뜻했다. 8번 이모는 다정하고 9번 이모는 제일 나이 차이가 적게 나는 이모로 잘 챙겨주었던 기억이 있다. 나의 자라남에는 이모들의 손길이 있었다. 학교 끝나면 늘 8번 이모한테 와다다 달려가서, ‘이모, 나 천원만!’을 외쳤다. 맨날 이모가 준 천원 한 장으로 달달한 와플을 사먹었다. 어릴 적 동네 목욕탕에 자주 갔던 기억이 있는데 막내 이모랑 같이 갔던 기억이 있다. 매우 어릴 때 기억이긴 하지만 한번은 내가 탕에 빠져서 허우적거렸고 나를 발견한 막내 이모는 내 이름을 외치며 나를 구해주었다!
나에겐 두 여동생들이 있다. 분명 여동생들인데 사내 같아서 남동생들 같은 여동생들이다. 이 사내 냄새 나는 녀석들은 ‘츤데레의 정석’이다. 츤데레, 고거 참 매력있다. 말로 따뜻하게 표현하진 않지만 묘하게 행동이 따뜻하고 다정하다. 사랑을 숨은 그림 찾기처럼 표현하지만 그걸 찾아낼 때 나름 감동과 희열이 있다. 내 인생 보물 1호는 동생들이다. 어렸던 나에게 첫 ‘사랑의 대상’이 되어준 사람들이다. 처음이기에 내가 너무 서투르고 실수도 많고 잘못도 해서 그게 참 미안하다. 사랑을 받는 것과 사랑을 주는 것은 다르다. 사랑을 받을 때 행복하다. 희한하게도 사랑을 줄 땐 더 행복하다. 뭐 그렇다고 동생들에게 사랑을 넉넉히 주는 언니는 아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나를 지켰다. 그 안에서 나는 그들의 사랑을 먹고 자랐다. 사랑을 배웠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밖에 나올 수 있었다. 그들에게 이런 말 오글거리지만, 음...
고마워. 사랑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지금 관계다. 현재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람들. 그러나 슬퍼하면서도 나는 안다. 눈물이 나면서도 나는 한 가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는 결국 버스와 같다. 내가 버스, 타이밍이 정류장이라면 각 정류장마다 내리는 사람들,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내릴지, 누가 앉을지 나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내리는 사람들에 마음 아파하기엔 미래의 시점에서 나와 인연이 되고픈 혹은 나와의 인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