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은 아이 2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

by 이수하

어린 나에게 외로움은 ‘아무도 없음’으로 설명할 수 있다. 깊은 내면의 방에 나의 어린이는 늘 혼자 있었다. 외로움이란 낯선 이방인은 어린 나에게 공포적인 존재에 가까웠다. 단 한 명이라도 따뜻한 존재가 나의 곁에 늘 머물러 주기를, 그렇게 지켜주기를 바랐다.


할머니 금방 나갔다 올게. 할머니 금방 올 거야. 어렸을 적 할머니 집을 아주 잠시 혼자 지킨 기억이 있다. 할머니는 어린 나를 두고 잠깐 외출을 갔고 나는 할머니 집에 혼자 있었다. 나는 할머니 방에서 하염없이 창문만 바라봤다. 혼자 있는게 너무 무서워서 할머니가 빨리 다시 돌아오길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할머니 언제 올까, 빨리 왔으면 좋겠다. 창문에 할머니의 모습이 비치길 간절히 바랐다.


일상적이고 단편적인 기억이지만 강하게 남은 어린 기억이 하나 더 있다. 어린 나는 낮잠을 잤고 눈을 떴을 때 집에 혼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을 뜨고 엄마가 없다는 것을 자각한 나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엄마! 엄마! 그 순간 나는 공포의 그늘 아래 혼자 있었다. 문이 열리고 잠깐 슈퍼에 갔다가 온 엄마는 놀라며 나를 안아주었고 공포는 자취를 감췄다.


나의 부모님은 바쁜 맞벌이 부모였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 9시까지 거의 맨날 일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다른 부모인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 맡겨졌다. 엄마가 밤 9시가 되면 온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매일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언제 와? 다 알면서 물어봤다. 그리고 나의 어린이는 늘 엄마가 오는 시간인 밤 9시를 기다렸다.




나는 정서적으로 예민한 아이였고, 지금도 그런 기질은 여전하다. 그리고 그 아이는 시간이 흘러 지금은 여자가 되었다. 여자가 되자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이 생겼고 그중에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남자들과 만났다. 그렇게 사랑이 찾아올 때 기대하고 설렜지만 동시에 나는 비참해졌다. 이 사랑은 나를 온전히 채워주고 지켜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들도 사람이기에 나를 온전히 채워주진 못했고 기대감은 즉시 서운함과 상처, 분노로 변했다. 어떤 사랑은 전쟁이었고 그 전쟁의 끝은 상처와 이별이었다. 나를 향한 남자의 사랑이 느껴질 땐 행복했지만, 그가 멀게 느껴질 땐 불안하고 불행했으며 마침내 비참했다. 버려질 것만 같고 혼자 남겨질 것만 같은 뿌리 깊은 외로움, 고독감, 공허함 그리고 불안이 침전되었다가 불쑥 내 온 마음을 덮어버렸다. 이걸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지옥. 다가온 사랑에 설렜던 마음은 순식간에 지옥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알기 전에 사랑을 두려워하게 됐다.


나에게 잘해주며 나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은 실은 나의 사랑을 구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지금보다 어렸던 그땐 몰랐다. 나는 나의 사랑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구걸하고 매달렸다. 스스로를 구질구질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천천히 깨달았다. 그들은 나의 존재를 채워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건 타인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이 서려있는 그 고독한 방으로 스스로 다시 들어간다.


아이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있다. 여전히 창문만 바라보며 할머니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 작은 방에서 홀로 쓸쓸하게. 그리고 가끔 아무도 없다는 공포감에 비명을 지른다. 어린 시절 말하지 못했던 말들을 뱉어본다. 할머니 나를 혼자 두지 마. 어디 갈 거면 나도 데려가. 엄마 나를 혼자 두지 마. 나를 안심시켜줘. 꼭 다시 돌아올 거라고, 그렇게 나를 안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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