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표현할 줄 모르는 어린이
어릴 적 나는 슬픔을 표현할 줄 모르는 어린이였다. 어린이의 속에는 울음이 쌓였다. 그 울음들이 쌓여 우울이 되었다. 감정의 다채로움을 몰랐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게 나쁜 건 줄로만 알았다.
지인이는 내가 맡은 반의 여자아이였다. 지금은 거제도에 갔지만, 지인이는 주일 예배시간마다 내 옆에 착 붙어서 앉았다. 내 노트 때문이었다. 말씀을 적기 위해 가져온 나의 노트는 지인이의 그림판이 되었다. 노트 모든 지면엔 슬픔이, 불안이, 기쁨이, 까칠이 등 영화 ‘인사이드 아웃’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었다. 지인이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전에 꼭 몇몇 캐릭터들에 동그라미를 쳤다. 어느 날은 버럭이, 슬픔이, 기쁨이에 동그라미를 친 지인이는 말했다. 오늘은 오빠가 놀리고 장난쳐서 화가 났어요. 그래서 오빠랑 싸워서 슬펐어요. 근데요, 다시 친하게 오빠랑 게임해서 기뻤어요. 지인이의 감정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파동이 일었다. 나는 애써 울컥하는 마음을 삼키고 지인이에게 말했다. 그래, 지인이가 그랬구나.
왜 지인이의 말에 이리도 울컥했을까. 마음 깊은 곳에서 큰 파동이 일어났을까. 어린이가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고 설명함으로 수용하는 모습이 그 순간 나에게 큰 아름다움으로 닿았다. 자신의 감정을 꽁꽁 감추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어린이. 어린이가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드러내도 되는 세상. 나는 어린이들에게 말한다. 울어도 돼. 마음이 아파도 돼. 너의 마음을 솔직하게 꺼내는 것 자체가 나쁜게 아니란다.
나의 어린이는 공허하고 불안하며 혼돈스러운 현실로부터 도망쳤다.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있는 힘껏 질주했다. 만화 속으로,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현실에 없는 이야기 속에서 살았다. 그곳에서는 슬픔을 잊을 수 있었다. 그곳에선 웃을 수 있었다. 즐거웠다. 투니버스에서 방영하는 만화들은 거의 다 보았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받은 권장도서 리스트 속 책들도 거의 섭렵했다. 권장도서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의 즐거움이 선명하다. 친구는 없었지만 만화와 책들이 나의 좋은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