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천 개의 파랑’으로 유명한 천선란 작가는 자신의 에세이 ‘아무튼, 디지몬’에서 스스로를 고독을 타고난 아이라고 말한다. 나는 무얼 타고난 아이일까.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나는 우울을 타고난 아이인 것 같다. 이건 어떤 환경이나 상황 탓이 아니라 기질적으로 타고난 감각이다.
나는 빛과 그림자 둘 다 강한 사람이다. 나는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진해진다고 믿는다. 빛처럼 마냥 밝기만 한 사람도 없고, 그림자처럼 마냥 어둡기만 한 사람도 없다. 빛만 있을 수도 없고 그림자만 있을 수도 없으며, 둘은 함께 간다. 나는 사람을 매우 좋아하고 사람에 대한 정이 많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 빛이 되기도, 그림자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주기도 하니까.
한 번 우울감에 빠지면 좀처럼 거기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우울을 비롯한 부정적인 감정들은 나에게 불청객이었다. 그들이 찾아오면 고문을 당하는 듯 고통스러웠다. 내 마음을 괴롭고 아프게 만들었다. 그래서 철저히 부정하고 외면했다. 덮어두면 없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외면했던 부정적인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고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를 덮쳤다. 외면하는 마음은 점점 불건강해지는 마음이 되었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음을 깨달은 나는 직면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직면하고 인정하면서 받아들이는 과정이 처음엔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덜 고통스러워졌다.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우울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더 이상 불청객 취급하지 않게 됐다.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으니 인생에서 함께 걸어갈 친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린 자연스럽게 만나고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과정을 마치 계절처럼 반복하게 됐다.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 나는 무르익어갈 거라고, 그렇게 믿으며 걸어간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한 번 우울감에 빠지면 꼼짝도 못하고 괴롭지만 우울이 나쁜 건 아니다. 우울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외부로 뻗은 시선과 관심을 내부로 돌리게 만든다. 나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마음에서 보내는 신호들을 관찰하게 한다. 자신의 내면을 깊게 돌아보고 고찰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울에 탁월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얻게 된다.
우울을 받아들이며, 어쩌면 우울과 친구가 되면서 혼자 있는 것을 즐기게 됐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잘 못했다. 늘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사람이었고 사람과 부대껴야 에너지가 생겼다. 나의 스케줄러엔 늘 사람 만날 약속들로 가득 차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혼자 있는 시간이 어색했고, 그 시간은 온통 외로움 덩어리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혼자인 것에 익숙해지며 외로움도 점점 옅어졌다. 그리고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의 맛을 알게 됐다. 배낭여행만큼 신기하고 신비한 여행이었다. 나는 늘 나와 함께 살았는데도 나에 대해 너무 몰랐고, 그래서 새롭고 신기했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 나의 몸과 마음을 감싸는 고즈넉함이 좋았다. 몸과 마음이 이완되면서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혼자 있는 것을 즐기게 되면서 나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간다고 믿는다. 내 옆에 사람이 없어도 나는 이제 나의 두 발로 땅 위에 설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