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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요 May 10. 2020

애도를 애도하다 1

슬픔은 좋게 좋게로 퉁칠 수 없는 감정이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지난 토요일인 25일 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 뒤의 일이었다.


언니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건 작년 가을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언니의 뇌에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얘길 들었다.

언니가?


아빤 그 소식을 전했을 적 놀라지 말고 들으라고 먼저 운을 뗐다.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답장은 없었다.


수술을 받는다는 얘길 들었고 수술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걱정은 되었지만 대수롭지는 않게 여겼다.

딱히 기도를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걱정이 되었다. 정말로 죽지는 않길 바랐지만 죽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당연히 예상을 하고 있었다. 언니의 죽음을

모두가 그랬겠지. 모두가 예상을 했을 것이다.

그래도 예상을 했던 상상의 미래와

코앞으로 닥쳐온 현실은 체감이 너무나도 달랐다.

아무리 예상을 했어도

현실은 가혹했고 아팠다.

훨씬 아팠다.

언니의 웃음소리가 계속 떠올랐다.



늘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아프다. 병에 걸린다. 약하다. 자주 다친다. 보호본능을 어필하기 위해 그리고 슬픈 사랑이야기를 쥐어 짜내기 위한 그런 도구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프고 약해지고 병에 걸려 죽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더 많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주 갑작스럽게 죽음이 닥쳐오는 그런 일들도 꽤 많았다.


언니는 죽었다.

그해 언니는 하늘 사이로 사라졌다.

할머니와 가장 친했고 가장 아꼈던 큰 손녀는 그렇게 사라졌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3년째 되는 해였다.

겨우 엄마는 외삼촌과 화해를 할 마음을 먹은 그 해였다.

아빠와 내가 지긋하게 설득한 끝에 다잡은 마음이었다.

오랜만에 할머니 산소를 다녀왔고 아빠는 엄마에게 또 울면 다시는 데려오지 않겠노라고 신신당부를 해뒀었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아빠를 흘겨봤지만 나는 옆에서 작게 다독여줬다.


'아빠는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하는 걸 보는 게 힘들어서 그런 거야.

알잖아.'


엄마는 그 얘길 듣더니 다시금 기분이 풀렸는지 아빠에게로 다가갔다. 둘은 나란히 걸었다.

나란히 걸어 인사를 다녀왔다. 그날은 어색하게 외삼촌과 인사를 나눴고 따로 밥은 먹지 않고 돌아왔다.


나이가 찰수록 사람이 해야 하는 건

상대를 생각하고 염려해주는 마음을 가지는 것과.

내가 할 도리를 해야 하는 것.

그리고 불편하고 귀찮더라도 사실 그건 나를 위한 것이라는 거.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한 나를 위한 일인 거.



'사실 생각해봐. 엄마도 작년 가을 그렇게 우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어.

괜한 아집과 고집 때문에 후에 나를 타인의 마음을 아파할 일을 만들면 안 돼.'

잘했어. 그때 용서하길 잘한 거야 엄마.  

나는 계속해서 그렇게 엄마를 응원했고 언니를 애도했고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하고 싶은 말과 쓰고 싶은 글은 넘치도록 많지만

표현하고 싶은 것들은 넘치도록 많지만 마음이 너무 앞설 땐 미처 표현을 다하지 못하겠다.

혀 따위로 마음을 걸러내는 것이 한참 부족해서 뱉어버리는 순간 공중으로 날아가버려서 하찮은 것들이 되어버려서 감히 할 수가 없다.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뜨겁고도 깊은 속이 한순간 식어버리고 만다.


사실 그 시점엔 슬픈 소식과 기쁜 소식이 한 번에 몰아닥쳤다. 두 종류의 소식 모두 가족의 일이었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힘들었다. 한쪽에는 축하를 한쪽에는 애도를 표해야 하는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다. 그 애도의 깊이는 너무 안타깝고 깊었기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고 다시 쌓아 올릴 수는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도함에 대한 애도. 너무 깊은 슬픔은 내가 어떻게 애도를 해줘야 하나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더 답이 나오지 않는 그런 일이었다.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들은 살아간다. 잊어간다. 점점 잊혀 간다. 그렇게 밀물 썰물 들어갔다 나가듯 들어왔다 사라진다.


엄마는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말 그대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던 정말 깡시골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외할머니 댁을 생각하면 소 짚 주던 기억들 아랫목에 불을 때던 기억들 개나 닭이 울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외삼촌은 여전히 소를 키우고 농사를 짓고 계신다. 경운기나 트랙터를 그 동네에선 쉽게 볼 수 있다.

소 똥 냄새도 풀 냄새도 무겁게 옷에 들러붙는다.

시골에서는 사람 죽는 일이 흔하다. 술 마시고 오는 밤에 누가 논두렁에 빠져 죽었네. 배가 아파서 단순한 배앓이인 줄 알았더니 맹장이라 죽었네. 밤길에 걸어오다 오토바이에 치여 죽었네. 죽을 자리가 전혀 아니었는데 그 새벽에 갑자기 가버렸네.

이유를 모르고 이유를 알고 죽는 죽음이 흔하다. 알고는 있지만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서 예측도 할 수 없게 그렇게 금방 주변 사람들은 하나씩 사라져 버린다.

슬퍼하지만 어짜겠니 어야겠니 그렇게 넘어간다.

마음이 아프고 찢어지지만 그래 폭우가 쏟아지는구나. 피가 씻겨 내려가겠구나. 비릿하게 지나가겠구나. 하고 넘어간다. 넘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어찌 뭘 더 할 수 있겠어. 제 명이 그까지인걸.

담배를 하나 태운다. 하늘을 바라본다. 더 이상 눈물은 나지 않는다. 차분히 바라보고 조용히 정리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덮는다. 건조해진다.

제가 살던 명까지만 살다 가는 거야. 개안해 개안해



하지만 괜찮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훌쭉하게 빠진 살을 보며 끔뻑하게 들어간 눈을 보면 전혀 괜찮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내색 않는다. 개안해 내 걱정은 하지를 말고 건강이나 조심해. 삼촌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그 주름과 떡두꺼비 같은 손을 보면 가슴이 울린다. 아프다.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리 죽을 힘들 다해 기도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는 자연의 순리라는 것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순응할 수밖에 없다.


아빠는 이 시간을 침묵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했고 나에게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시를 알려주셨다. 슬픔은 슬픔으로 인생은 슬퍼도 흘러가는 것으로 담담하게 받아낼 수 있도록.

믿기지 않는 일들이 순간순간 벌어질 때마다 심장을 부여잡고 숨을 고르는 시간을 벌여야 하는 것.

깊은 밤이 짙어질 땐 잠시 물속으로


그럼에도 슬픔은 가치 있는 감정이다. 눈물이 흐르는 것은 느낄 필요가 있다.

부정의 감정이 아닌 그 감정은 있음의 감정이다.

있음이다. 내가 부재가 아닌 존재함을 증명할 수 있는 감정이다.

내가 무너지는 걸 막는 건 슬픔이다.

기쁨이 행복의 정답은 아니고 깊은 슬픔이 삶에 좌절감을 주는 것도 아니다.

슬플 때는 슬픔을 느껴야 한다. 정직하게.

소중했던 기억들은 추억으로 남기고

좋은 곳으로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한 번 더 생각해주는 마음.

그 마음이 값진 마음.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을 다하는 것.

그게 생명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괜찮을 것이라 되뇌어봐도 아무리 생각해도 언니는 너무 젊었다.

그 날은 더 이상 나에게 평범한 날이 될 수는 없었다. 앞으로 더 많은 날들이 나에게 그런 의미가 되겠지.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행복해야 해.

2020년의 봄 , 언니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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