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진로상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기 Mar 05. 2017

"우리 성기가 이렇게 백발이 됬구나"

한국 방문기

90세가 되신 큰 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아이고 우리 성기가 이렇게 백발이 됬구나"


분당 사는 큰 어머니는 나를 제대로 알아보실까. 하지만, 그분은 나를 여전히 10살짜리 꼬마처럼 손을 꼭 잡고, 볼을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그분 기억 속에 나는 보살펴주어야 하는 아이였다. 나의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서부터 5살 때까지 키우셨고, 이런저런 왕래를 하면서 11살 때까지 만났던 분이다. 큰 어머니는 40대 중반에 미망인이 되어서 4남매를 혼자 힘으로 키우셨다. 나에게 사촌들은 큰 어머님 댁 식구 들이였다. 


유독 큰 어머님은 나를 귀여워하셨다. 너무 오래돼서 잊어버리고 있던 손길을 오십 중 반에 갑자기 만난 것이다. 큰어머니는 한 시간 이상 내 손을 잡고 말씀을 하셨다. 오래전 이야기들을. 


사랑을 받는 거, 어른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산 세월이 길었다. 누군가 내 손과 얼굴을 만지면서 이뻐해 주는 것은 어린 시절 충분히 겪어야 한다. 내가 이런 것을 얼마나 어색해하는지, 나 스스로 놀랄 적이 많다. 


비 오는 날, 그러니까 한국을 떠나기 하루 전에 한 어머님이 구운 김과, 커피빈과 직접 만든 수제 반지를 포장해서 나를 만났다. 그 어머님은 지난번 만나고 나서 나에게 소감을 말했다. 

"선생님, 가시는 뒷모습이 제 오빠 같았어요"


사랑을 체험하고 성장한 사람들은 티가 난다. 부모 양쪽의 사랑을 못 받았다면,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어느 한편의 부모라도 자신을 사랑해주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 사람은 남에게도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된다.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은 가질 수 있지만, 그 결과, 남의 아픔을 이해 못하는 둔감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나에게 결핍된 것은 사랑을 못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러나오는 사랑을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 오는 날 구운 김을 커다란 박스에 잔뜩 담아서 날 찾아온 그 어머님과 같은 정이 내게 부족하다. 백발이 된 조카를 어루만져주는 할머니처럼, 귀여운 사람은 손을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 할머니의 눈은 내 늙은 얼굴 속에 가려진 소년을 바라보고 있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나서 내면 아이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내 앞에 계신 큰 어머님은 내면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 직접 부둥켜안아주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미쳐 준비도 못한 상태에서 쑤욱 손이 들어와서 안아주셨다. 지금 일본 하네다 공항서 캐나다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여전히 큰 어머님의 손길과 눈이 바로 30센티 앞에 있었다. 


옛날 사람들을 만나면 옛날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큰 어머님의 기억 속에 나는 10살 이전의 꼬마였고, 그 연장선에서 나를 만지고 있었다. 70세가 된 막내 삼촌 눈에 나는 여전히 5살짜리 꼬마였다. 신당동 할머니 집에 가기만 하면 좋아서 날뛰던 나를 기억해냈다. 캐나다 이민 간 지 21년 만에 긴 공백 기간 동안 자주 왕래하지 못하다가 만난 친척들은 나를 오래된 도서관에서 먼지 속에 묻혀있던 일기장을 만들어버렸다. 


"막걸리 한잔하고 갈래? 내일이면 떠나는데"

삼촌에게는 나는 그렇게 아쉬운 존재였다. 술에 취하고 싶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삼촌 말을 따라서 재래시장 안에 있는 막걸릿집에서 순대를 안주로 했다. 

사람을 안아주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스킨십도 있고, 정성 들여 만든 밑반찬에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장시간 운전하고 부르튼 입술로 이런저런 선물을 사들고 오는 것도, 집에 가기 전에 막걸리 권하는 것도 있다. 


내가 호주유학 갈 때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터뜨리던 작은 고모나, 다음 날 출국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나와 만났다가, 무언가 싸주어야 하는데 아쉬워하던 사촌누나나 모두 내가 어린 시절 어떤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알게 해 주었다. 어린 시절, 내 마음이 냉동되기 시작한 그 시절, 나는 나를 잘못 알고 있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믿었고, 실제로 에피소드에서 친척들의 존재는 미미했다. 어떻게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지 어린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을 제대로 해석해주고 내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내 상황을 추측만 할 뿐, 디테일 Detail이 약했다. 이 약한 공감 속에 아이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편견의 성을 쌓게 된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서 그 아이가 중년이 된 다음, 그것이 편견이었음을, 나 자신이 남들에게 무정했음을 깨닫게 된다. 타인에게 불만을 가지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그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왜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지를 깨닫는 것은 어렵다. 사람들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내제적인 이유가 있다. 손을 쓰윽 내밀어 내면 아이를 안아주듯이 남의 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 속에 숨겨있는 아이를 안아줄 수 있다. 나를 보고 애틋해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돌아왔다. 부친 위독으로 급거 귀국한 일이 체류기간 동안 내 생애에서 만났던 모든 친척들을 revival 해서 만나게 만들었다. 새삼스레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고립시켜놓고 살았는지도 깨닫게 만든 여행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음에 민감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