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모든 전쟁은 참혹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리기 위해 작성한 것입니다.)
커피나 계피가 아니라 ‘케피’. Le Képi Blanc(르 케피 블랑), 우리말로 군모(軍帽). 일명 전투모. 그중에서도 철모가 아닌 것을, 그리고 베레모나 사관학교 예복 또는 의장대용의 화려한 샤코(shako) 군모가 아닌 것을 케피라고 하는데, 이중에서도 흰색 군모를 케피 블랑이라고 한다. 블랑(blanc)은 프랑스어로 흰색이라는 뜻. 케피 블랑은 장식용의 둥그런 종이상자 같은 원통형인데, 약간 높다고 생각하면 된다. 2차대전 전후로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쓴 군모를 떠올리면 된다.
현재 미군의 위장무늬가 들어간 군모는 패트롤 캡(patrol cap)이라고 하며, 일명 깡통모라고 부른다. 모자 뒤쪽보다는 앞쪽이 약간 낮고 짧은 챙이 달린 것. 이 군모는 한국에서도 625 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이들이 썼으며, 지금도 산책이나 등산할 때 그런 모자를 쓴 이들이 가끔 눈에 띈다.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 분들도.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케피 블랑은 프랑스 외인부대(Légion Étrangère)가 썼던 모자, 그러나 실은 그 모자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모자를 쓴, 18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닌 프랑스 외인부대에 대한 것이다. 흰색 케피모와 빨간 명찰을 착용한 프랑스 외인부대. 이 부대는 지금도 존재하며, 프랑스인이 아닌 외국인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피부색이나 학력, 종교 불문하고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나 모두 들어갈 수 있는데, 단지 북한을 비롯한 시리아와 쿠바 등 3개국 출신만은 거부.
지원 가능한 나이는 남자 17.6~39.6세, 즉 18~40세. 단 장교의 경우 프랑스 국적도 가능. Would you like to apply. . . ?
또한 외인부대의 여권은 푸른색이어서 ‘케피 블랑, 빨간 명찰, 푸른색 여권’이라고 하면 프랑스 외인부대를 뜻한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 조국이 아니라 외인부대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부대 표어는 ‘명예와 헌신(Honneur et Fidélité)’. 그리고 ‘Le courage plutôt que la vie(목숨보다 용기)’의 정신. 즉 ‘전진이 아니면 죽음(Marcher ou Mourir)’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외인부대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3만5천 회나 되는 각종 전투에 참여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셈이다. 현재 본부는 프랑스 남동부의 오바뉴(Aubagne)에 있으며, 병력의 수는 대략 7,700명.
참고로 전 세계 외인부대 중에서 세 곳이 좀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물론 프랑스 외인부대. 또 하나는 바티칸 시티에서 경비를 맡고 있는 스위스 용병 근위대. 그리고 네팔의 구르카 지역 출신으로 구성된 구르카 용병. 이들은 19세기에 영국에서 처음 고용된 뒤 2차대전 중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활약했으며, 그 이후 시리아나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이밖에 인도도 구르카 용병부대를 운영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경찰에서도 이들을 고용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 당시 싱가포르의 구르카 용병이 경비를 맡아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밖에 러시아의 바그너(Wagner) 그룹 용병도 최근에 언론에서 종종 언급되고 있다. 규모는 5만 명 정도로 꽤 크다고 한다. 그러나 바그너 용병은 국가가 아닌 개인기업이 운영한다는 면에서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밖에 미국의 민간군사기업인 블랙워터(Black Water)도 있다. 이들은 주로 요인들을 경호하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이들은 보수가 특히 많아서 미국의 특수부대원들이 많이 지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 때 악명을 떨쳐서 이미지는 그리 좋지는 않지만, 현존하는 민간 용병기업으로서는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민간 용병기업들은 보스니아 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콜롬비아 마약단체 소탕작전, 콩고 내전 등에도 참여했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는 자국민 군인들의 희생도 막고 국가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점점 더 이러한 민간 용병기업을 활용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미래에는 국가 간 전쟁 대신 민간 용병들의 대리전쟁이 빈번해질 것 같은 느낌.
프랑스 외인부대라고 하면 어딘지 낭만적인 느낌이 드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좀 우울한 느낌이 드는데. 가난이나 범죄 등 여러 이유로 인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외국의 군대에 들어간 사람들 같은 느낌. 사실 외인부대에는 그러한 사람들도 많이 지원한다. 범죄자나 도피자 등등. 그리고 현재는 동유럽 사람들이 많이 지원한다고 한다. 한국인도 아주 가끔 있고. 대우도 좋으며, 제대 후 프랑스 시민권을 받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생존확률이 가장 낮다. 게다가 이들은 심지어 자기 모국하고도 전투를 벌일 수 있다. 그리고 물론 훈련도 심하고 명령체계도 아주 엄하다. 세계 각국에서 온 병사들이기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러나 프랑스 외인부대는 특히 동남아시아, 그중에서도 1954년 베트남의 디엔 비엔푸 전투에서 피해가 막심했다. 북베트남군(월맹군)에게 아주 심각한 타격을 받았으니까. 프랑스는 베트남을 포함한 인도차이나 지역을 식민지로 삼고서 끔찍할 정도로 억압했기에 그에 대한 보복 역시 극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전쟁 말고 외인부대의 지휘관을 포함해서 병사들이 완전 전멸한 전투가 있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가 아니라 멕시코에서.
1860년 프랑스 외인부대가 멕시코로 원정을 떠났다. 그리고 1863년 4월 30일 외인부대는 병력 65명으로 금화 수송임무를 맡고 행군하던 중 (이들의 행군을 사전에 알아차리고 매복해 있던) 멕시코 정규군의 습격을 받았다. 멕시코 군은 800명이 넘는 기병이 포함된 3,300여 명. 이때 외인부대의 인솔자는 복무 10년차 장 당주(Jean Danjou, 당시 35세) 대위. 장소는 멕시코의 카마롱(Camarón, 프랑스어로는 카메론(Camerone)). 아프리카 카메룬 국가가 아니라 멕시코 동부 내륙의 한 지역인 카메론. 아침부터 하루 종일 진행된 전투 중에 오전 11시경 당주 대위가 사망하자 외인부대 9년차 장 발랑(Jean Vilain, 당시 27세) 소위가 지휘했고, 또 발랑이 사망하자 15년차 클레망 모데(Clément Maudet, 당시 34세) 소위가 이끌었다.
이렇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외인부대의 최후가 다가왔다. 오전 9시 45분에 시작된 이 전투는 오후 6시까지 이어졌는데, 이때 마지막 남은 하사관 1명과 병사 4명은 모두 착검을 한 뒤 곧바로 ‘비바 라 레종(viva la legion, 부대 만세)’을 외치고 최후의 돌격을 감행하여 모두 전사했다. 이 전투에서 외인부대 총 65명 중 45명 전사, 나머지는 포로가 되거나 부상당했으며, 멕시코 정부군은 전사 190명 이상, 부상 300여 명이었다. 외인부대 입장에서 볼 때 교환비 대략 1:9. (이날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당시 멕시코의 부대장 밀랑(Milan) 대령은 외인부대를 사람이 아니라 악마라고 했을 정도였다.)
이 당시 외인부대의 지휘관이었던 당주 대위는 팔 하나가 없어서 의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의수가 지금도 남아 있어서 외인부대의 최고 보물로 지정하여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그 전투가 벌어진 4월 30일을 ‘카메론 데이’로 정한 뒤 매년 성대한 기념식을 열고 행진한다. 또한 이날은 간부들이 사병들의 아침식사를 날라다주며, 외인부대 출신들은 세계 어디에 있든, 현역이든 퇴역이든 간에 모두 외인부대 배지를 달고 추념한다고 한다.
(이 글에서 프랑스가 외인부대를 통해 수많은 침략과 약탈을 자행한 사실은 생략했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그 부분도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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